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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르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공사현장서 만난 순천시 공무원들④"나무가 미안해서 죽지 못하게 하라!" 는 노관규 전 시장의 명령 편
박종덕 본부장 | 승인 2012.02.25 15:02

[4편 오늘날의 순천만과 정원박람회를 있게 한  순천시 최덕림 국장의 살아있는 증언]

식당에서 최 국장과 옆자리에 앉은 이기정 계장과 대화를 나누면서 순천만 얘기가 자연스레 흘러 나왔다.

"일부에선 순천만과 정원박람회가 무슨 관계가 있냐는 식으로 얘기한 분들도 계신데, 어떻게 보시나요?"

내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순천만에 대해선 대다수의 시민들이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반면, 정원박람회에 대해선 일부 사람들이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여론을 감안한 질문이었다.

"정원박람회는 사실 순천만을 도심으로 끌여들인 것입니다"

"인체에 비유하자면 순천만이 머리다면, 정원박람회는 허리에 해당합니다."

" 그 허리를 통해 근골격계가 형성되듯이 정원박람회장을 통해 순천원도심과 신도심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즉 정원박람회는 박람회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정원박람회로 통하는 도로가  도심으로 연결돼 도심을 새롭게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허리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논란이 됐던 순천시 중앙동의 언더패스 사업도 순천만과 정원박람회와의 연결선상에서 이뤄진 사업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는 손으로 허공에 그려가며 정원박람회와 순천만, 그리고 순천도심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형상화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탁자위에 그림을 그려가며 이런 상관관계를 일일히 설명했다.

순천만과 정원박람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순천시 도심 활성화정책과 연계된 전략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정원박람회는 어떻게 해서 탄생된 건가요?"  갑자기 정원박람회가 어떻게 탄생하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최 국장은 옆자리에 있던 이기정 계정에게 "그때가 아마 2007년도가 맞지" 하며, 옛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2007년경 같이 근무하는 나옥현씨가 어느날 <독일정원이야기> 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는데, 그 내용중에 정원박람회 얘기가 실려있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나옥현씨를 통해 조경전문가에게 의뢰해 순천만을 살리는 50페이지 정책보고서를 받았고 그 교수에게 노 시장을 상대로 직접 브리핑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그 내용 중에 정원박람회가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최 국장은 지나간 기억을 더듬으며 정원박람회가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는지를 천천히 말해주었다.

직원들이 제안한 순천만 활성화 대책을 노 시장이 보고받고,  그 중에서 정원박람회가 포함돼 있었는데,  노 시장이 이 부분에 대해 직접적인 관심을 갖고 시작했던 게 정원박람회 시초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간 추진했던 정원박람회에 대해 정부가 사업승인을 하자  2009년 3월 기자회견을 통해 정원박람회 개최를 선언한 것이다.

   
▲ 빅토리아섬의 부차드 가든

나는 개인적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원을 방문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 당시 노 시장의 이런 획기적인 발상에 너무나 반가웠다.

1999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캐나다 밴쿠버 앞에 있는 빅토리아 섬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당시 나는 시애틀 출장 때문에 시애틀 바로 위에 붙어 있는 벤쿠버와 그 맞은 편에 있는 빅토리아 섬을 잠깐 들른 적이 있었다.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빅토리아 섬은 영국의 과거 식민지였던 곳으로 캐나다와 미국의 은퇴한 부호들이 살기에 너무나 좋은 자연환경을 갖춘 곳이었다. 부차드 가든외에 여러 다른 환상적인 관광자원이 많아 섬 자체가 휼륭한 관광지였던 셈이다.

당시 나는  <부차드 가든> 이란 정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섬의 여러 관광자원과 더불어 그곳에서의 환상적인 경험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노관규 시장이 정원박람회 추진을 선포할 당시 빅토리아섬 부차드가든이 바로 떠올랐던 이유도 바로 이런 기억 때문이었다.  다음은 당시 기억을 회상하며 썼던 기사다.

단박에 성공한 ´정원박람회´ 영원히 남겨질 관광유산
박종덕 본부장 (2009.09.22 09:54:06)

 

지난 3월 순천시청 2층 소회의실에서 언론인 간담회가 개최됐다.

이날은 순천시가 오랜 검토끝에 정원박람회 개최하기로 확정짓고 지역의 기자들에게 순천정원박람회 추진의사를 밝힌 자리였다.

그로부터 6개월후 다시 그 자리에서 언론인 간담회가 그대로 열렸다.

이번에는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유치를 확정짓고 언론인들에게 그 성과를 보고하는 자리였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추진의사를 밝힌지 불과 6개월만에 유치를 확정짓고 바로 그 자리에서 유치소감을 밝힌 것이다.

말 그대로 전광석화와 같이 단박에 해치운 초스피드 박람회 유치였다.

대회성격이나 관람객수, 예산등 여러 문제에 대해 우려섞인 말들이 오가지만 일단 지역내에선 이번 박람회 유치가 지역사회 발전은 물론 노 시장의 정치적 입지를 세우는 데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번 유치가 노 시장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키기 위한 도구였다는 주장도 불거지기도 하지만 지역발전과 생태수도 순천에 걸맞는 행사를 유치했다는 점에 대해선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이다.

박람회 유치기간 동안 관람객수에 따른 당장의 수지타당성에 대한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도 있었지만, 노 시장의 주장처럼 정원박람회를 통해 정원시설이 순천시에 영원한 관광유산으로 남겨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도 시민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실제로 장기적으로 보면 정원박람회가 여수엑스포의 박람회 시설보다도 관람객 유치나 관광자원 보전면에선 훨씬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지하다시피 대회규모를 떠나 여수엑스포는 박람회 자체시설 확충에 앞서 박람회 개최준비를 통해 여수시로의 접근성 강화를 위한 SOC 확충에 큰 의의가 있다.

반면 순천정원박람회는 여수엑스포 개최준비를 통해 확충된 SOC 위에 ´생태수도 순천´를 각인시키는, 그 자체가 휼륭한 콘텐츠 라는 것에 대해 그 의미를 둘 수 있다.

캐나다 빅토리아 섬은 과거 영국의 식민지로서 아직도 대영제국의 여러 유물들이 휼륭한 관광자원으로 남겨져 있다.

유물로 남겨진 이런 관광자원외에 아마도 외지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영국식 정원 ´부차드 가든´일 것이다.

필자가 10년전 방문한 이 정원은 지금도 한국인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가장 많은 찾은 관광지로 빅토리아섬의 주위 경관과 어울려 세계적 명소로 우뚝섰다

100년전 부차드 여사가 남편이 운영하던 석탄광산이 폐광되면서 개발한 이 정원은 이제 전 세계에서 이 정원을 보기위해 이 섬을 찾아온 관광객이 해마다 100만명에 이를 정도로 관광명소가 된 것이다.

최근 일부 시민단체에서 순천정원박람회의 성격부터 규모, 관람객수, 재원조달 문제까지 박람회의 성공적 개최여부에 대해 여러 흠집섞인 말들이 나온다.

시민단체의 지적처럼 순천정원박람회은 6개월 동안의 한시적 행사에 불과하다. 박람회 기간동안 예상했던 관람객보다 더 많이 올 수도 있고 적게 올 수도 있다. 그에따라 수지도 흑자도 될 수도 있고 적자도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박람회기간 동안의 관광객 수 보다, 또 당장의 수지타당성보다 중요한 것은 박람회를 통해 그 정원시설이 영원히 순천시민의 품속으로 안겨진다는 사실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이 ´부차드가든´처럼 순천만과 어울린 정원을 찾게 된다는 사실이고 그 경제적가치와 생태적 보존가치는 헤아릴 수가 없다.

몇개월간의 정원박람회보다 중요한 것은 영원히 남겨질 정원이다.

6개월간의 박람회 행사는 행사기간이 지나면 끝난다. 그러나 그 정원은 앞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영원히 남겨줄 관광유산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그가 22일 밤, 털어 놓은 순천만에 쏟은 얘기들을 들어보면 최덕림 국장은 순천만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증인이었다.

오늘날 순천만이 있기까지 고생과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그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나 역시  행운이었다.

2006년 당시만해도 순천만의 방문객수는 20여만명에 불과했다.갈대숲이 우거진 전남 순천의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다.

그런 어촌마을이 불과 몇 년만에 세계적인 생태관광명소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엔 아마 방문객수가 25만명이나 됐을 겁니다”

“그런데 작년에 유료관광객수만 200만명입니다”

최 국장의 얼굴표정에 자랑스러운 듯 하면서도 본인 스스로도 놀란 듯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순천만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최근 정원박람회와 관련해 여러 말들이 오가는 데, 순천만이 이렇게 잘되다보니 시기해서 이런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 매사를 반대하는 분들에게 뭐라 얘기하겠습니까? 이제는 그런 분들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그런 이상한 소문에 대응할 가치조차 없다는 얘기였다.

   
 순천만 선착장
“초창기 때 고생이 많았겠어요”라고 되물었다.

“허가내 준 낙지배들 폐선시키느라 엄청 고생했습니다.”

“그 분 입장에선 하루 잘하면 낙지배 타는 관광객들 때문에 잘 하면 200만원 수입도 보장되는데, 순천시가 관두라하면 관두겠습니까?”

"폐선선주 한 분이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에 찾아와 버티고 있었습니다.아예 출근도 못하게 가로막은 적도 있었지요. 밤 늦게 집안에서 기다라며 항의하고 따지며 난리친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적절히 합의해 보상해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참으로 눈물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때론 내가 왜 순천만 업무를 맡아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하는 생각도 든 적이 많았습니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당시 순천만 업무는 공무원들의 기피부서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누가 이런 민원이 발생하는 부서에서 근무하고 싶겠습니까?"

그러면서 그는 순천만 보존을 위해 순천만으로 진입하는 지역 전부를 생태지구로 지정했던 과정을 꺼냈다.

“그 가운데, 순천만 보존을 위해 순천만으로 들어가는 지역을 모조리 생태지구로 묶어야겠는데, 과연 노관규 시장이 이것을 허락해 줄지 관심이었습니다.”

일단 생태지구로 묶이면 그곳에서의 모든 경제적 활동은 할 수 없게 되고, 재산적가치도 그 만큼 하락할 수밖에 없어 땅주인 입장에선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노 시장님 결심을 과연 받아낼 수 있을지 관건이었다.

“아무래도 정치인 입장에선 표와 연결되어 있는데, 쉽지 않은 결정이지 않겠어요?” 

솔직히 반문하며 나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땅주인들도가만히 있겠어요? 나도 최 국장의 말에 보조를 맞추며 거들었다.

"그런데 어느날 생태지구로 지정해야 겠다는 보고를 하자, 노 시장이 “순천의 미래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해야겠지요”라고 수용을 합디다. 당시 나도 그런 보고를 하면서 솔직히 의아했고 놀랐습니다."

"누가봐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표 계산을 했더라면 이런 결정은 나오기 힘든 결정이었습니다"

“그 뒤로부터 땅주인들로부터 엄청난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감사원이고 어디고 진정서를 넣고 조사받고 그런 과정에서 설득하고 오해가 풀리고 이런 일이 수없이 되풀이 됐습니다.”

“항의도 많이 받고 했지만 한편으론 그 분들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

“결국 이 분들이 순천만 보존과 발전을 위해 대승적으로 양보해 줘서 오늘날의 순천만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어느덧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박종덕 본부장  jdp8064@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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