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보면, 세계사 혹은 한국사이든 간에, 개혁(改革, Reformation)의 성공 사례는 손가락에 꼽힌다. 따라서 개혁(改革)이 혁명(革命)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우선, 세계사(世界史)의 경우,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95개조 논제),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서기장/대통령(1985~1991)의 개방 및 체제 개혁, 독일연방공화국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Fritz Kurt Schröder) 연방총리(1998~2005)의 하르츠(Hartz) 개혁(2003~2005) : 노동시장정책, 산업정책, 조세정책, 환경정책 등 광범위한 개혁정책을 담은 국가개혁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한국사(韓國史)의 경우,  1356년(공민왕 5년) 공민왕(恭愍王, 1351∼1374)의 배원정책(排元政策)/개혁(전민변정도감 설치, 성균관 중흥과 신진 사대부 등용), 조선(朝鮮) 중기 중종(中宗) 때 조광조(趙光祖, 1482~1520)의 개혁(왕도정치, 훈구파의 僞勳削除, 賢良科 실시, 昭格署 폐지, 鄕約 보급 등), 만 100년 동안의 토지개혁(大同法: 1608년 광해군 즉위년→1708년,숙종 34년), 갑오개혁(甲午改革,1894년 7월 27일~1895년 7월 6일),  1차 갑오개혁(김홍집+대원군) → 2차 동학농민운동 실패→군국기무처의 2차 갑오개혁(박영효+김홍집)→청·일전쟁(1894년 7월 25일~1895년 4월)→1895년 3월 20일 시모노세키 조약→삼국(러·프·독) 간섭→박영효 제거, 김홍집 내각(친 러시아)→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乙未事變)→제3차 갑오개혁인 을미개혁(乙未改革,1895.10.08.~1896.02.11.), 대한제국 고종(高宗, 재위 : 1863~1907)의 광무개혁(光武改革,1897~1904), 대한민국 박근혜(朴謹惠) 대통령(2013~2017)의‘4대 구조개혁’(공공, 노동, 금융, 교육), 북한의  2002년 7월 <7·1 경제관리개선조치> 등을 들 수 있다. 상기 개혁사에 관한 논술은 실로 대작 2~3권의 분량이므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필자(林陽澤)는 다음과 같은 화두(話頭)를 던진다

 왜(Why) 상기한 개혁들이 실패했을까?

금년 3월 이후 봇물처럼 개혁안이 붓물처럼 터져나올 것인데, 무엇이(What) 현재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개혁인가? 그것을 어떻게(How) 합리적으로 추진할 것인가? 그러한 평소 고민과 향후 포부를 밝히고 유권자의 호응을 호소하는 것이 대선(大選) 주자들의 행보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지구촌 어느 골짜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태(樣態)를 보면, 울화가 치밀고 나라 걱정이 태산(泰山) 바위처럼 가슴을 짖누른다. 

  예로서, 필자(林陽澤)는 언젠가 공식적 장소에서 어느 현재 대선(大選)주자에게 “가계부채 문제를 어떻게 할 것입니까?”라고 질문했더니만, 그가 답변하기를“... 당시 최경환 부총리가 매우 잘못 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가계부채 문제 해결방안을 모릅니다. .....제게 대안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그 직후 현장에서 배석한 어느 경제참모가 필자(林陽澤)의 테이블로 달려왔다. 참으로, 건방지고 ‘싸가지’가 없는 사람이구나하고 필자(林陽澤)는 그 대선(大選)주자와의 인연을 끊어버렸다. 여기서‘싸가지’란 ‘4가지’란 뜻인데, 그것은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의하면 유교(儒敎)에서 말하는‘인의예지(仁義禮智)을 의미한다. 국가지도자 이전에 인간(人間)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이다.. 
  
 심지어, 우리들이 욕하는 정치인들 뿐만이 아니라, 일반시민들 중에서 명문 중/고등학교와 유명 대학교를 졸업한 후 과분한 벼슬(특히‘어공’)까지 누렸었던 소위 지성인(?)들이 마구 ‘퍼 나르는 쓰레기 조각들’(출처나 상호연관성이 없는)을 보면 더욱 더 한심하다. 

  모름지기, ‘부끄러움’을 다른 말로 하면 성찰(省察)이다.‘부끄러움’을 알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인간(人間)임을 증명하는 최소한의 자격이다. 예로서, 민족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 1945) 선생은‘부끄러움의 시인’이다. 그분의 '서시(序詩)'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고 있다. 또한, 나치를 비판한 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의 시선집 :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다. 

  필자(林陽澤) 자신도 지난 세월을 회고하면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당시, “왜 그렇게 말했었는가? 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하고 후회한다. 그 ‘죄값’을 다소 지불하기 위하여 하나님깨 엎드려 용서를 구하고, 참회(懺悔)하는 마음으로 노상 새벽까지 글을 쓴다.

  가장(家長)으로서 가족을 지키면서, 선비로서 양심을 간직하고 교수로서 올바른 강의와 빼어난 연구실적을 쌓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장부(丈夫)로서 ‘큰 꿈’을 지닌다는 것은  논밭에서 멍에를 짊어지고 먼 길을 걸어가는 것 만큼 힘든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척박한 사회 풍토에서 역사(歷史)의 물줄기를 찾고 진리(眞理)를 캔다는 것은 마치 칼날 위에서 춤추는 것만큼 위험한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셋을 키우고 정년(停年) 퇴직한 후 7순(旬) 중반에 이르렀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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