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사태와 관련해 필자(林陽澤)의 회고담과 한러 경제협력의 시사점

임양택 한양대 명예교수
임양택 한양대 명예교수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 문제와 별개로 필자가 ‘한/러 산업기술협력’의 본문 작성에 들어가고자 하니, 우선 소련/러시아와 관련된 필자(林陽澤)의 수많은 추억들이 주마등과 같이 지나간다.

한소 수교(1990.09.30) 전/후에, 필자(林陽澤)는 <한국북방학회> 회장 혹은 <한소민간친선협의회(KUFA) 한국측 회장(*소련측 회장 : Mikhail Titarenko)으로서 당시 소련 외교부 차관 미하일 카피차(Mikhail Kapitsa)와의 인터뷰, 러시아 극동연구소(Institute for Far Eastern Studies) 소장  미하일 티타렌코(Mikhail Titarenko,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외교 자문역) 박사와의 대담 및 우정의 연속(그가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서울 <프래지던트 호텔>에서 한국의 某국정원 前기조실장 / 某국방부 前차관/유준상 前의원 등과 담소 등), 소련 정치학자 블라디미르 사탈린(Vladimir Satalin) 박사와의 대담, 크레믈린 궁전/상트페테르부르크 박물관 견학, 러시아 문학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Alexandr Pushkin,1799~1837) 서재 견학, <모스크바대학>에서의 특강, 그 직후 북한이 경영하는 <고려식당>에서 ‘진짜배기 평양 냉면’시식, 그곳 지배인과 논쟁, 그로부터 16년 후 한국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하여 <아무르 강>을 넘어 캄차크 반도 방문 및 러시아 에너지 기관 요원들과 회담 등이다. 

 상기한 필자(林陽澤)의 행보 중에서 촬영한 공/사적 사진들이 별도 엘범에 수북하다. 필자(林陽澤)가 소련/러시아 방문 시에는 <러시아 극동연구소> 연구위원 알렉산드르 피시크(Aleksandr Pichik, 아마도 KGB요원, 본인은 한사코 부인)가 안내하고 안전을 지켜주었다. 그가 한국을 방문하여 당시 朴哲彦 정무장관과 면담하였을 때, “한국에서 누구를 만나보셨습니까?”라는 朴장관의 질문에 “林陽澤 교수를 비롯하여 여러 분을 만났습니다”라고 응답했었더니만 朴장관은 빙그레 웃으면서 매우 반겼다고 그는 필자(林陽澤)에게 전해주었다. 필자(林陽澤)가‘한/러 협력’과 관련하여  글로써 남기고 싶은 사실들을 한러 경제협력의 측면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첫째, 미하일 티타렌코(Mikhail Titarenko) 소장은 노태우(盧泰愚, 재임:1989~1993)의 ‘7.7선언’과 ‘UN총회의 연설’은 현실주의적인 대(對)북한 정책으로 미소(美蘇) 간의 화해정책과 중소(中小) 관계 개선조짐과 함께 남/북한 대화분위기를 촉진하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시각에서 작성된 필자(林陽澤)의 하기 논문이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가 발행하는 <Journal of Far Eastern Affairs>에 게재되었다.

  Lim, Yang-Taek(1990), “Some Directions and Strategies of Economic & Technological Cooperation between USSR and ROK,” paper prepared for delivery at the International Symposium hosted by Institute for Far Eastern Studies, Moscow, The Soviet Union, August.
  Lim, Yang-Taek(1991a), “Cooperation between South Korea and the USSR,” Journal of Far Eastern Affairs, January.

  또한, <한소 민간친선협의회(KUFA)> 한국측 회장(소련측 회장 : 티타렌코)으로서 하기 연례회의에서 발표했었던 필자(林陽澤)의 강연 원고는 다음과 같다 :

  Lim, Yang-Taek(1991b), “South Korea-Soviet Union Relationship and Peace in Northeast Asia in the 21st Century: with particular reference to Bilateral Tasks and the Anticipated Effects of Economic Cooperation,” paper presented at the Korean-U.S.S.R Friendship Association Conference on the Role of South Korea and Soviet Union in the 21st Century, Institute of Far Eastern Studies Academy of Sciences of the U.S.S.R, Moscow, February.

  이어서, 일본 Tokai University의 하와이 켐퍼스에서 개최된 국제심포지엄(좌장 : 일본의 저명한 정치학 교수 레이 시라토리)에서 필자(林陽澤)의 ‘한소 경제/기술협력 모형’에 관한 논문이 게제되었다 :

  Lim, Yang-Taek(1992), “A Study on the Strategies and Anticipated Effects of Economic & Technological Cooperations between South Korea and the Soviet Union,” Journal of Behavioral and Social Sciences, Vol. 42, The Research Institute of Social Sciences Tokai University, Kanagawa-ken, Japan.
 
  둘째, 소련/러시아 정치학자 블라디미르 사탈린(Vladimir Satalin) 박사에게 필자(林陽澤)는“소련은 상부구조(上部構造)인 정치구조를 변혁하고자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1931~현재, 재임 : 1985~1991)의 글라스노스트(glasnost·개방) 정책과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개혁)이 단행/추진되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하부구조(下部構造)인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소련 및 중국의 성공 가능성을 어떻게 생각하는가?”그는 “중국의 경제개혁은 실패할 것이다. 정치구조의 개혁이 선행(先行)되지 않는 한, 경제개혁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Absolutly Impossible !).” 이와 관련하여 우리 2인은 많은 첨예한 논쟁을 벌였다. 

  과연 누가 옳았었는가? 역사는 말한다 : 1991년 8월 보수파의 쿠테타에 의한 소련의 붕괴로 블라디미르 사탈린(Vladimir Satalin) 박사의 주장은 오류였으며 필자(林陽澤)의 반대 주장이 옳았었다. 그러나, 요즈음 중국(中國)의 당면과제와 발전방향을 숙고해보면 블라디미르 사탈린(Vladimir Satalin) 박사의 주장이 설득력이 높은 것 같다. 심지어, 한국의 최근 상황에도 그의 주장은 적용가능할 것이다. 필자(林陽澤)가 죽기 전, 다시 만나 블라디미르 사탈린(Vladimir Satalin) 박사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셋째, 러시아 사회문제연구소(Research Center for the Significant Social Problems) 소장(러시아 외무부 정책자문역) 블라디미르 수린 박사(Dr. Vladimir Surin)와 2008년 11월 27일 서울 강남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그의 2005년 11월 러시아의 유력 정치논평지 <폴리트클라스>에 게재한‘코리아 선언 (Korean Manifesto)’:“러시아 시베리아 자원 개발을 통해 한/러 ‘공생(共生) 국가(Symbiotic State)’를 만들어 가자”에 관한 초청 강연회(사회자 : 부산고 10회 許文道 선배, 토론자 : 林陽澤 교수)가 개최되었다. 당시 발표자와 토론자의 주장 및 질의/응답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러시아 사회에서는 급격한 인구감소(러시아의 총 인구는 1억 4,860만명을 기록했던 1993년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로 러시아 영토 중 아시아에 해당하는 부분, 즉 러시아 영토의 절반(折半)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국가 생존의 위기에 처한 러시아가 영토를 보존하고 미래에 살아남으려면 러시아와 한국이 ‘공생(共生)국가(Symbiotic State)’를 만들어 韓民族이 ‘비어 있는 땅’인 시베리아에 자유롭게 이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러시아에겐 한국이 ‘최적의 파트너’이다. 한국은 세계 12번째(당시)의 경제규모를 갖고 있지만 자원이 없다. 

  러시아 시베리아에는 향후 인류가 2,500여 년간 사용할 수 있는 석탄을 비롯해 석유와 천연가스 등 세계 자원의 20% 이상이 묻혀 있다. 두 나라는 이웃나라이다. 만약 두 나라가 ‘공생(共生)국가(Symbiotic State)’관계를 맺는다면 한국은 자원문제를, 러시아는 인구/생존문제를 각각 해결할 수 있다. 아무리 선진국이라 해도 출산율이 줄고 인구가 줄면 잘 살 수가 없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국민들이 러시아로 일부 유입되고 있는데, 이들은 거의 대도시로 이주하기 때문에 러시아가 직면한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러시아 인구의 대부분이 모스크바 등 대도시와 서쪽에 집중돼 있다.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강제로 동쪽으로 이주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극적인 이민정책만이 살 길인데, 러시아는 이민 문호를 개방하지 않고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러시아는 곧 빈곤상태를 거쳐 몰락으로 연결될 것이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후진국 등을 대상으로 이민을 개방하고 있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이민을 개방하면 인구의 절반 이상을 타(他) 민족이 차지하게 되고, 고유의 문화를 잃게 된다. 러시아도 당장 이민을 개방하면 수많은 중국인들이 러시아 동부지역으로 물밀듯 밀려올 것이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중국인은 어느 나라에 가서나 그들만의 조직과 문화를 유지하고, 타(他) 민족을 배척하고 잘 섞이지 않는다. 러시아 동부에 중국인을 이주시키는 것은 중국에 러시아 영토를 뺏기는 것과 같다. 특히 러시아인들은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매우 강하다. 그동안 러시아가 보수적인 이민정책을 고수해 왔던 것은 이 같은 의식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인은 전통적으로 다른 민족에 대한 이민을 받아들이는 데 긍정적이지 않다. 
  
  특정 민족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한국인이 가장 적합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한반도와 러시아가 국경을 마주한 이웃 국가이기 때문이다. 

  둘째, 한국의 인구 규모가 적절하기 때문이다.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의 인구는 6700만명으로 공생(共生)국가(Symbiotic State)’관계 건립에 적절한 규모이다. 또한, 한국은 중국처럼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러시아 민족을 흡수해버릴 가능성이 없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은 그들의 공동체에서 외국인을 흡수하려 하지 않고, 외국인 공동체에 흡수되려고 하지도 않는 성격이 있으며, 종교적인 편견이 심하지 않기 때문에 민족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적다. 

  셋째, 한국인은 부지런하고 교육열이 높은 고급인력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두뇌와 교육수준은 현재 러시아로 유입되고 있는 중앙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에 비해 훨씬 높다. 

  넷째, 한국은 자원이 없는 수출경제 체제로서 천연자원이 풍부한 러시아와 연계해 자원 문제를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한국은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첨단기술(尖端技術)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영토가 광대하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것 외에도 우주기술 등 첨단기술도 발달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러‘공생(共生)국가(Symbiotic State)’를 추진할 것인가? 그 방법은  러시아가 自國(자국)에 입국하는 한국인에게 러시아인과 동일한 권리를 주는 것이다. 마치‘법인과 법인 간 제휴’처럼 서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활용·보완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제휴를 위해서는 상호 내국민 대우 등 법률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한국인이 러시아에 입국하면서부터 러시아 국민과 똑같이 취업, 거주, 교육 등의 권리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인이 석유 등 천연자원을 개발함으로써 利權(이권)을 갖는 것은 물론, 한국은 산유국(産油國)의 위치를 갖게 됨으로써 미래 자원경제 및 자원외교의 발판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는 강력한 산유국(産油國)이다. 만약 산유국(産油國)들이 단합한다면 ‘미국 달러 기반의 금융체제’는 무너질 수 있다. 이럴 때 러시아는 강력한 제국(帝國)이 될 수 있다. 

  상기의 경우와 반대로, 러시아인이 한국에 입국하면서부터 한국 국민과 똑같이 취업, 거주, 교육 등의 권리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러시아인들이 인건비 비싼 한국에 몰려들어 노동시장을 어지럽히지 않겠는가하는 우려도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인이 한국에서 일을 하거나 거주한다는 것은 고려인이나 조선족과 달리 언어적 장벽이 너무 높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상기 우려는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은 ‘시베리아 이주’라면 ‘유배(流配)’를 생각할 정도로 거부감이 있는데, 이런 주장을 한국인들이 받아들이겠느냐? 물론, 러시아 대도시 주민들에게 시베리아로 가라고 해도 선뜻 반길 사람은 드물 것이다. 물론, 이오시프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1878~1953)이 강제이주 정책을 썼고, 한국인 외에도 러시아인과 체첸인 등 많은 사람들이 강제이주로 희생됐다. 그러나 지금은 새로운 기회를 찾아 시베리아로 이주할 수 있도록 전략적 뒷받침을 하자는 것이지 강제로 보내자는 게 아니다. 

  또한, 시베리아는 추운 곳이지만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추운 곳은 아니다. 무더운 열대지방에도 첨단 빌딩이 들어서서 고급인력들이 일하고 있다. 게다가 ‘베링해 해저터널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면 시베리아는 미주(美洲) 대륙과도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주요 거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과거 영국(英國)은 죄수들을 호주와 뉴질랜드로 유배(流配)시켰는데, 지금의 호주는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시베리아 역시 그렇게 될 수 있다. 

  시베리아는 러시아 우랄산맥에서 태평양 연안에 이르는 북아시아 지역 전체를 일컫는다. 그러나 러시아 내에서는 시베리아 지역을 우랄산맥·서(西)시베리아·동(東)시베리아·극동(極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구역을 모두 합치면 면적 1,380만 7,037km2로 아시아 대륙의 4분의 1이 넘는다. 시베리아에는 수자원, 지하자원, 수산자원, 삼림자원, 농업자원, 관광자원 등이 풍부하다. 바이칼湖와 수많은 하천 덕분으로 수력발전의 잠재력이 높고, 서(西)시베리아에는 천연가스와 석유가 풍부하다.

서(西)시베리아의 자원은 많이 개발된 상태지만, 극동(極東)지방의 가스전과 유전은 아직 매장량의 극히 일부도 개발되지 않아 전(全) 세계 국가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또한, 에너지자원 외에도 철광석과 다이아몬드, 금, 은, 구리, 니켈 등 다양한 광물자원이 매장되어 있다. 이밖에 시베리아 내륙지방의 많은 호수와 동쪽의 베링해 등을 중심으로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또한, 세계 삼림면적의 22%를 차지하고 있는 시베리아의 삼림자원도 개발의 여지가 많다. 극동(極東)지방은 날씨가 좋고 경작지와 방목지가 많아 농업자원도 풍부하다.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고 동계(冬季) 스포츠에 적절한 날씨 덕에 관광 및 레저의 요지로 개발될 가능성도 크다.   

 요컨대, 시베리아는 한국인에게 ‘기회의 땅’이다. 한국이 러시아와 ‘공생(共生)국가(Symbiotic State)’를 맺을 경우 ‘반도 국가’에서 ‘대륙 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 즉, 한국인이 반도(半島)라는 좁은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이다.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보고(寶庫)로 불리는 시베리아를 한국인이 개발한다면 한국 역시 세계를 주도하는 강한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은 앞으로 다가올 ‘팍스 차이나’(Pax China: 중국이 세계의 주도권을 갖는 현상)에 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백인(白人)의 출산율 저하와 인구 감소로 인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시대는 무너지고 있으며, 중국(中國)을 필두로 남미, 이슬람 국가, 인도 등이 세계 리더로서의 지위를 주장하는 형국이 될 것이다. 중국은 엄청난 인구와 경제력으로 동북아는 물론 세계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인접한 러시아나 한국은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닥쳐올 에너지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인은 시베리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한국의 경제규모가 크고 자원을 언제든지 수입할 수 있지만, 앞으로 에너지 문제가 대두되고 산유국(産油國)들이 공동 행동에 나설 경우 한국 같은 국가는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러시아의 자원개발에 일찌감치 참여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의미 있는 투자가 될 것이다. 
  
 끝으로, 시베리아 개발은 남/북한 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남/북한이 제시하는 정치적 통일보다는 경제적 교류가 앞서야 한다. 따라서 시베리아를 비롯한 러시아 동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한(北韓), 그리고 경제가 발달한 남한(南韓)이 함께 경제활동을 한다면 정치적 충돌 없이도 가까워지고 통합할 수 있다. 한국과 러시아가‘공생(共生)국가(Symbiotic State)’를 건립한다면, 북한 역시 자연스럽게 교류와 협력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林陽澤)는 상기한 블라디미르 수린 박사(Dr. Vladimir Surin) 초청 강연회(2008년 11월 27일, 서울 강남 <JW메리어트 호텔>)에서 사회를 맡아 주셨던 부산고 10회 故 許文道 선배님이 세계적 문화철학자인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 1880~1936)의 대작(1918년/1922년)『서구의 몰락 (Der Untergang des Abendland)을 서두로써 현란하게 한국인의 지성(知性)을 300여명의 참석자들에게 과시하셨다는 사실을 밝힌다. 

  그 이전에, 필자(林陽澤)는 許文道 선배님이 <청와대 정무제1수석비서관>(1984년 10월~1986년 8월)으로 봉직하고 있을 때 집무실에서 뵈었으며, 개인적으로 압구정동 한양아파트 자택에서 필자(林陽澤) 부부에게 손수 일본 차(茶)를 끓여 대접해주셨다.

 ‘知日派 민족주의자’(*1979년 6월 일본 주재 한국 대사관 공보관 근무, 당시 일본 외무성은 ‘한국내 제일의 反日분자는  許文道’라고 인식/지목했었음)로 유명한 許文道 선배님(2016.03.05. 별세)은 <국토통일원> 장관 시절(1986년 8월~1988년 2월), 필자(林陽澤)의 「남북한 산업 및 기술협력의 추진방안에 관한 연구(<한국경제연구원> 연구총서, No. 64)을 보고 받으시고 필자(林陽澤)와 함께 일하지 못했음을 못내 아쉬워하셨다. 

  그러나 필자(林陽澤)는 許文道 선배님을 가까이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분은 '전두환(全斗煥) 정권(1980~1988)의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로 불리었듯이 1980년 전국의 신문사 11개, 방송사 27개, 통신사 6개 등 44개 언론매체를 통/폐합을 주도했을 정도로 ‘권력추구자’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한국의 사이비 언론들의 비행(卑行)들을 보면 許文道 선배님의 ‘언론매체를 통/폐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후, 권력을 잃은 許文道 선배님을 우리 동기 김현국씨가 물심양면으로 지극히 모셨다는 이야기를 직접 듣고 필자(林陽澤)는‘의리의 사나이’김현국 동기를 우럴어 보게 되었다. 許文道 선배님가 가장 어려웠고 외로웠던 시절, 우리 김현국 동기가 지극 정성으로 돌보아 드렸던 것이다. 이 기회를 빌려 김현국 동기에게 존경을 표함과 동시에 許文道 선배님의 명복을 빈다.  -林陽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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