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 혁명보다 어려운 이유
역대정권의 개혁이 실패한 이유에 대한 성찰

 

임양택 한양대 명예교수
임양택 한양대 명예교수

-懷古談-
 
필자(林陽澤)의 ‘탈(脫)경제위기’를 위한 <국가개혁론>에 관한 본문(本文)을 서술하기 전, 우선 필자(林陽澤)의 가슴에 흐르는 애잔한 기억(*결코 ‘추억’은 아님)을 술회하고자 한다. 필자(林陽澤)가 <부산중학교> 2학년 때, 아버님은 1962년 2월 5/16 군사혁명 재판에서 5년 징역 형을 받고 차가운 감방에서 복역 중, 일제(日帝) 강점기 독립운동 당시 심한 고문(拷問)을 받아 얻었던 골병(구타로 왼쪽 어깨 통증, 기관지 천식, 협심증)이 악화되어 병(炳) 보석(保釋)으로 용당동 본가(本家)에서 가료(加療)받고 계셨다. 

  어느 날 유난히 골병 기침을 심하게 하셨다. 그 때, 대청마루에서 긴 담배댓를 툭툭 재떨이에 치시던 조부님이 “어험...물은 흘려가고 자갈만 남았도다!‘라고 하셨다. 당시, 건너방에 있었던 장손(長孫)은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명확히는 모르고 단지 장남(長男)의 골병을 한탄하시는 것이겠지라고 생각했다(*<林陽澤, 아버지를 말한다 : 비운의 정치가 임갑수 국회의원>(나남출판사, 2013년). 필자(林陽澤)가 나이를 더 먹고난 후, ”아! 할아버지의 그 말씀의 뜻은 이것이었구나!“라고 깨달았다. 이제, 7순의 필자(林陽澤)는 ”인생은 덧없이 물처럼 흘려가지만, 내가 죽은 후, 이 글은 ’자갈‘처럼 남을 것이다“라고 믿고 오늘 밤도 충혈된 두눈을 밣힌다.

이제, 필자(林陽澤)는 ‘대한민국의 탈(脫)경제위기론’을 체계적으로 제시하기 위하여 2개 방향 : ①실물부문과 ②금융부문으로 나누어 각각 ‘국가개혁’(특히, 교육개혁과 노동개혁)을 논술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개혁(改革, Reformation)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주어진 정책(政策, Policy)의 '개선(改善, Improvement)'이 아니라 새로운 제도(制度)를 추진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계사 혹은 한국사이든 간에, 개혁(改革, Reformation)의 성공 사례는 손가락에 꼽힌다. 따라서 개혁(改革)이 혁명(革命)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우선, 세계사(世界史)의 경우,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1517년 10월 31일 종교개혁(95개조 논제),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서기장/대통령(1985~1991)의 개방 및 체제 개혁, 독일연방공화국 게르하르트 슈뢰더(Gerhard Fritz Kurt Schröder) 연방총리(1998~2005)의 하르츠(Hartz) 개혁(2003~2005) : 노동시장정책, 산업정책, 조세정책, 환경정책 등 광범위한 개혁정책을 담은 국가개혁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한국사(韓國史)의 경우,  1356년(공민왕 5년) 공민왕(恭愍王, 1351∼1374)의 배원정책(排元政策)/개혁(전민변정도감 설치, 성균관 중흥과 신진 사대부 등용), 조선(朝鮮) 중기 중종(中宗) 때 조광조(趙光祖, 1482~1520)의 개혁(왕도정치, 훈구파의 僞勳削除, 賢良科 실시, 昭格署 폐지, 鄕約 보급 등), 만 100년 동안의 토지개혁(大同法: 1608년 광해군 즉위년→1708년,숙종 34년), 갑오개혁(甲午改革,1894년 7월 27일~1895년 7월 6일),  1차 갑오개혁(김홍집+대원군) → 2차 동학농민운동 실패→군국기무처의 2차 갑오개혁(박영효+김홍집)→청·일전쟁(1894년 7월 25일~1895년 4월)→1895년 3월 20일 시모노세키 조약→삼국(러·프·독) 간섭→박영효 제거, 김홍집 내각(친 러시아)→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乙未事變)→제3차 갑오개혁인 을미개혁(乙未改革,1895.10.08.~1896.02.11.), 대한제국 고종(高宗, 재위 : 1863~1907)의 광무개혁(光武改革,1897~1904), 대한민국 박근혜(朴謹惠) 대통령(2013~2017)의‘4대 구조개혁’(공공, 노동, 금융, 교육), 북한의  2002년 7월 <7·1 경제관리개선조치> 등을 들 수 있다. 상기 개혁사에 관한 논술은 실로 대작 2~3권의 분량이므로 상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필자(林陽澤)는 다음과 같은 화두(話頭)를 던진다 : 왜(Why) 상기한 개혁들이 실패했을까?

금년 3월 이후 봇물처럼 개혁안이 붓물처럼 터져나올 것인데, 무엇이(What) 현재 대한민국에 가장 필요한 개혁인가? 그것을 어떻게(How) 합리적으로 추진할 것인가? 그러한 평소 고민과 향후 포부를 밝히고 유권자의 호응을 호소하는 것이 대선(大選) 주자들의 행보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지구촌 어느 골짜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태(樣態)를 보면, 울화가 치밀고 나라 걱정이 태산(泰山) 바위처럼 가슴을 짖누른다. 

예로서, 필자(林陽澤)는 언젠가 공식적 장소에서 어느 현재 대선(大選)주자에게 “가계부채 문제를 어떻게 할 것입니까?”라고 질문했더니만, 그가 답변하기를“... 당시 최경환 부총리가 매우 잘못 했습니다. 솔직히, 제가 가계부채 문제 해결방안을 모릅니다. .....제게 대안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그 직후 현장에서 배석한 어느 경제참모가 필자(林陽澤)의 테이블로 달려왔다. 참으로, 건방지고 ‘싸가지’가 없는 사람이구나하고 필자(林陽澤)는 그 대선(大選)주자와의 인연을 끊어버렸다. 여기서‘싸가지’란 ‘4가지’란 뜻인데, 그것은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의하면 유교(儒敎)에서 말하는‘인의예지(仁義禮智)을 의미한다. 국가지도자 이전에 인간(人間)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이다.. 
  
심지어, 우리들이 욕하는 정치인들 뿐만이 아니라, 일반시민들 중에서 명문 중/고등학교와 유명 대학교를 졸업한 후 과분한 벼슬(특히‘어공’)까지 누렸었던 소위 지성인(?)들이 마구 ‘퍼 나르는 쓰레기 조각들’(출처나 상호연관성이 없는)을 보면 더욱 더 한심하다. 

모름지기, ‘부끄러움’을 다른 말로 하면 성찰(省察)이다.‘부끄러움’을 알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인간(人間)임을 증명하는 최소한의 자격이다. 예로서, 민족시인 윤동주(尹東柱, 1917~ 1945) 선생은‘부끄러움의 시인’이다. 그분의 '서시(序詩)'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고 있다. 또한, 나치를 비판한 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의 시선집 :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있다. 

필자(林陽澤) 자신도 지난 세월을 회고하면 실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당시, “왜 그렇게 말했었는가? 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하고 후회한다. 그 ‘죄값’을 다소 지불하기 위하여 하나님깨 엎드려 용서를 구하고, 참회(懺悔)하는 마음으로 노상 새벽까지 글을 쓴다.

  가장(家長)으로서 가족을 지키면서, 선비로서 양심을 간직하고 교수로서 올바른 강의와 빼어난 연구실적을 쌓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장부(丈夫)로서 ‘큰 꿈’을 지닌다는 것은  논밭에서 멍에를 짊어지고 먼 길을 걸어가는 것 만큼 힘든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척박한 사회 풍토에서 역사(歷史)의 물줄기를 찾고 진리(眞理)를 캔다는 것은 마치 칼날 위에서 춤추는 것만큼 위험한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셋을 키우고 정년(停年) 퇴직한 후 7순(旬) 중반에 이르렀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이다. 

 필자(林陽澤)는 최근의 저서 :  林陽澤, <정의로운 국가와 행복한 사회를 위한 신(新)실용주의(實用主義) 철학과  정책>(박영사, 2021)에서 다음과 같은 10개 화두(話頭)를 제기하면서 한국의 ‘총체적 위기’(Total Crisis) 상황을 지적하고 각 화두(話頭)에 대한 신(新)실용주의적(Neopragmatic)의 해법을 각각 제시하였다 : (1) “한국은 ‘행복한 사회’(A Happy Society)인가?” ; (2) “한국은 ‘정의로운 국가’(A Justice-based State)인가?” ; (3) “한국의 ‘민주화(民主化) 운동’은 과연 성공했는가?” ;  (4) 한국 정치인의 ‘역사적 소명’은 무엇인가? ; (5) 집권당 <더불어민주당>(Democratic Party)과 문재인(文在寅) 대통령에게 고(告)한다 ; (6) 제1야당 <국민의힘>(People Power Party)에게 고(告)한다 ; (7) ‘역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영웅(英雄)은 특정 인물인가? 혹은 시민(市民)인가? ; (8) 한국 시민(市民)들은‘시대정신’(時代精神, Spirit of the Time) 및 집단지성(集團知性, '群体智慧', Collective Intelligence)과 ‘역사의식’(歷史意識, Historical Consciousness)을 갖고 있는가? ; (9) 합리적 이성(Rational Reason)과 ‘역사의식’(歷史意識) 및 ‘시대정신’(時代精神)을 배양해야 할 공교육(公敎育)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 (10) 도덕의 붕괴와 사회갈등으로 인한 아노미(Anomie) 상태에서, 한국 종교(宗敎)의 역활은 무엇인가? 
 
  필자(林陽澤)는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교육·노동·금융·공공부문 개혁을 과감히 추진하고 규제(規制)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기 개혁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적폐(積弊) 청산’일 것이다.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인물은 문재인(文在寅) 대통령(2017~2022)이라고 필자(林陽澤)는 기대했었다. 왜냐하면 고(故) 노무현(盧武鉉) 대통령(2003~2008)이 ‘한미 FTA 타결’과 ‘제주 해군기지 설치’를 당시 운동권의 극렬한 반대를 무마(撫摩)시키고 기필코 단행했었던 것과 같이, 또한 서기 228년 촉한(蜀漢) 제갈량(諸葛亮)이‘읍참마속(泣斬馬謖)’했었던 것처럼, 민주화 운동권 출신인 문재인(文在寅) 대통령(2017~2022)이 자신의 지지세력이지만 경제발전의 암적(癌的) 존재인 민노총읗 혁파하여 노동개혁을 단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문재인(文在寅) 정권 자체가 ‘적폐(積弊) 청산’의 대상이 되었다.

  *임양택 컬럼,‘100만 시민의 촛불’은 ‘국가시스템 개조’로 승화되어야 한다,「경인일보」, 2016.11.23. 

  이제, 노(老)선비인 필자(林陽澤)는 간곡히 다음 정권에게 당부한다 : 개혁(改革)이란 단지 부패/부정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만이 아니라 ‘고(高)비용 사회구조’의 요인인 과다한 자녀 사(私)교육비와 주거비를 혁파(革罷)하고 노동개혁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최소한 상기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고용창출, 내수 진작, 국가경쟁력 제고, 행복한 사회, 정의로운 국가 등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필자(林陽澤)는 박근혜(朴謹惠) 대통령(2013~2017)이 추진했었던 ‘4대 구조개혁’(공공, 노동, 금융, 교육)의 실패요인으로부터 유익한 교훈을 도출한다. 상술하면, 박근혜(朴謹惠) 대통령(2013~2017)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세월호 참사(2016. 04. 16) 직후 ‘국가개조론(國家改造論)’을 제창(2014. 04. 30)했었다. 심지어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개조위원회(2014. 07. 08.)’를 설치했었다. 그것의 핵심은 반(反)부패 신뢰사회를 추구하고 공무원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을 혁파(革罷)하겠다는 것이었다.

  상술하면,‘세월호 참사’(2014. 4. 16)가 발생한 후인 2015년 8월 6일 박근혜(朴謹惠) 대통령(2013~2017)은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들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에서 “앞으로 3, 4년이 대한민국을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성장 엔진이 둔화하면서 저(低)성장의 흐름이 고착화하고 있고 경제와 고용 창출력은 약화하고 있다”고 진단했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4대 구조개혁’(공공, 노동, 금융, 교육)을 제시했었다. 박근혜(朴謹惠) 대통령(2013~2017)은 “역대 정부에서 해내지 못한 개혁”이라며 “반드시 이뤄 낼 것이다”고 말했었다. 참으로, 만시지탄(晩時之歎)이지만 역사 발전을 위한 정문일침(頂門一針)의 조치였다.

  당시, 필자(林陽澤)는 박근혜(朴謹惠) 대통령의 ‘국가개조론(國家改造論)’ 천명을 민족의 스승, 도산(島山) 안창호(安昌浩) 선생의 1919년 ‘한국개조론(韓國改造論)’과 미국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1882~1945) 대통령의 ‘정부혁신위원회’를 연상하고 내심 크게 반기었다. 그러나 필자(林陽澤)가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박근혜(朴謹惠) 대통령(2013~2017)이 대한민국의 경제체질(經濟體質)을 바꿔 경제를 살릴 수 있는‘4대 구조개혁’(공공, 노동, 금융, 교육)에 정권의 운명을 걸지 않았었다는 점이다. 

@ [임양택 교수 특별기고] ‘세월호 참사’로 본 한국사회에 대한 所懷, 데일리안(2014. 04. 29)에서  “우리 모두 ‘기본’으로 돌아가는(Back to the Basic) 원칙을 세우고 시베리아아와 태평양으로 향하여 虎視 牛步千里의 正道를 걸읍시다!”라고 글을 맺었다. 
 
 그렇다면, 박근혜(朴謹惠) 대통령(2013~2017)의 ‘국가개조론(國家改造論)’이 무위(無爲)로 끝난 이유가 무엇일까? 왜 박근혜(朴謹惠) 대통령의  ‘국가개조론(國家改造論)’이 결국 포말(泡沫)로 사라져 버렸는가? 

  첫째, ‘국가개조(國家改造)’개념에 대한 박근혜(朴謹惠) 대통령(당시)의 인식 결여 때문이었다. 박근혜(朴謹惠) 대통령은‘세월호 참사’(2014. 04. 16)가 발생한 2주 후 ‘국가개조론(國家改造論)’를 천명(2014. 04. 30)했었는데, 사실 ‘국가개조(國家改造)’가 무엇을 뜻하는지 개념이 모호하였다. 그것이 관료들의 부정부패(不正腐敗) 척결 차원인지, 제도 개선을 말하는 건지, 대통령에게 인사권·수사 및 정보기관 지휘권을 집중시킨 ‘5년 단임제’ 헌법 개헌과 정치구조 개편까지 포함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마치 ‘국민화합’이나 ‘문화융성’과 같은 구호처럼 실로 공허(空虛)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료개혁’이라는 말이 다소 진부(陳腐)하고 약하다 보니 단순히 '관료(官僚)' 대신에 ‘국가(國家)'로 거창하게 확장되었으며, 그러다 보니 지난 60년 ‘적폐(積弊) 해소’라는 무서운(?) 개념이 뒤따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 다음, 스스로 자신의 ‘국가개조론(國家改造論)’의 위압감을 감당하지 못했었다.

  둘째, 박근혜(朴謹惠) 대통령(2013~2017)은 스스로 극단적 나르시시즘(Narcissism, 自己愛)에 빠져 실존주의 철학적(實存主義 哲學的) ‘비아(非我)’를 스스로 ‘닫힌 사회’(Closed Society)에 가두고 ‘진정한 자아(自我)’를 포기해 버렸었다. 게다가, 프리드리히 니체(F. W. Nietzsche, 1844~1900)가 언급했었던 ‘권력에 대한 의지’는 너무나도 강했었지만,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bermas, 1929~현재)의 ‘의사소통적 이성’(Communicative Reason)이 박근혜(朴謹惠) 대통령에게 결핍되어 있었다. 이 결과, 박근혜(朴謹惠) 대통령은 칼 포퍼(Karl Raymond Popper, 1902~1994)의 ‘열린 사회’(Open Society)로 나아가지 못했었다.

  여기서 저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철학(哲學)의 중요성이다. 상기한 바와 같이, 위르겐 하버마스(Jurgen Harbermas, 1929~현재)의 ‘의사소통적 이성’(Communicative Reason) 및 ‘윤리’(Ethics)와 관련된 칼 포퍼(Karl Popper)의 ‘열린 사회’(Open Society)는 주어진 사회를 열기 전에 ‘열린 눈’(Open Eye, 開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서양(西洋)에서는 ‘철학(哲學)’이란 ‘지혜(智慧)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양(東洋)에서는 ‘밝은(哲) 눈(眼)을 갖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한국의 전통음악 가수인 장사익(張思翼) 선생이 노래하듯이 “얘야! 문 열어라”, “세상의 바깥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門)을 열어라”는 것이다. 아마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1961~1963~1979)은 꿈속에서라도 영애(令愛)의 눈(眼)을 뜨게 하지 못한 듯하다. 

  셋째, 박근혜(朴謹惠) 대통령(2013~2017)의 ‘만기친람형(萬機親覽型)’ 리더십 때문이었다. 이것은 대통령이 실무적인 부분까지 워낙 꼼꼼하게 지시를 내리고 챙기면서 붙여진 평가였다. 이 결과, 박근혜(朴謹惠) 대통령(당시)이 국무회의에서 대(對)국민 사과를 하던 순간에도 장관들은 눈을 내리깔고 받아쓰기에 급급했었다. 이러한 모습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이 각료와 청와대 비서진조차 대통령의 '말씀'만 기다리는 상황에서 관료들이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행정을 능동적으로 수행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넷째, 참모진의 무사안일주의적(無事安逸主義的) 나태(懶怠)와 무능(無能) 때문이었다. 박근혜(朴謹惠) 대통령(당시)은 ‘개혁의 엔진’으로 불릴 만한 사령탑을 구성/가동하지 못했었고, 오히려 ‘수첩인사’로 숱한 인사파동을 겪었으며, 낙하산 관행은 전혀 바뀌지 않았었다. ‘친박’과 ‘수첩’을 안은 채, 능력 위주의 개혁 진용을 구축하지 못했었다. 

  아버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1961~1963~1979)에게서 터득한 박근혜(朴謹惠) 대통령(2013~2017)의 군주적 성정(性情)을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김기춘(金淇春, 1939~현재)은 ‘차밍하고 엘레강스하다’고, 우병우(禹柄宇, 1967~현재) 민정수석은 ‘진정성을 믿기에 존경한다’고 각각 말했었다. 그리하여 ‘난 몰라’ 공화국 실세들의 ‘애창곡(愛唱曲)’은 심수봉이 불렀었던 ‘그대 내 곁에 선 순간/그 눈빛이 너무 좋아/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사랑밖엔 난 몰라’였다. 
 
  여기서 필자(林陽澤)는 <한가람>(동서 화합을 위한 저명인사들의 모임)의 회원으로서, 또한 <한러 심포지엄>을 통하여 정분이 두터웠던 지인(知人) 김기춘(金淇春, 1939~현재) 대통령 비서실장(당시)에게 장문의 서신과 함께 정책건의안을 송부했었다. 그후 수령했었다는 전갈은 받았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나중에 퇴임 후, “죄송합니다”라는 메모가 왔었다. 

  어느 날, 최병렬(崔秉烈, 1938~현재) 선배(문화공보부 장관 시절 : 1989년 12월 28일~1990년 12월 27일), 필자(林陽澤)와 <국방대학원> 특강 교수로서 수강생 인기 공동 1위, 한나라당 특강교수로서 교류 등)와 통화하면서 “선배님, 나라가 하수상합니다. 김기춘(金淇春) 비서실장을 친밀하시니 제발 코치해주십시오”라고 말씀드렸더니만, “어...요즈음 지는 지밥 먹고 나는 내 밥 먹고 산다...”라고 말씀하셨다. 

  한편, 당시 경제수석 안종범(安鐘範, 1959~현재)은 필자(林陽澤)가 무척 아끼는 제자이다. 그 배경은 전두환(全斗煥) 대통령 말기, <성균관대학> 거시경제이론 담당 교수가 폐결핵으로 2년 휴직함에 따라 당시 ‘서울 장안의 인기 경제학 교수’였던 필자(林陽澤)가 2년 출강하여 가르쳤다. 당시 <성균관대학> 60대(현재) 제자들과 지금까지도 교제한다. 필자(林陽澤)의 아버님 초상 때, 필자(林陽澤)를 무척 영입할려고 노력하셨던 <성균관대학> 교수님들이 대거 弔問해주었다. 만약 필자(林陽澤)가 다시 교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성균관대학>에서 봉직하고 싶다. 필자(林陽澤)는 <성균관대학>의 <명륜당>(明倫堂)을 좋아한다. 

  박근혜(朴謹惠) 대통령(당시)의 말기 때, 필자(林陽澤)는 안종범(安鐘範) 경제수석의 집무실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 나라는 대통령 혼자 다스린다. 따라서 대통령의 철학과 리더십이 없으면 5년은 그냥 ‘깡’인 것이다. ‘5년제 단임제’가 나라의 모든 비극의 원천이다. (* 다음 순서인 本論으로 계속)

  - 林陽澤(2022.02.07.,월 새벽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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