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은 '후흑의 각축장', 누가 더 낯가죽이 두껍고, 누가 더 배짱이 세냐로 결판
"권력을 얻기 위한 중요 기술은 선악이 아니라 상황을 보는 능력"

제왕학의 대가 박종열 교수
제왕학의 대가 박종열 교수

“지극한 후흑(厚黑)의 단계에 이르면 천하가 두려워하고 귀신도 무서워한다.”

청나라 말기에 태어나 혁명의 격동기를 살았던 사상가 리쭝우(李宗吾:1879~1944). 그는 “얇지 않은 것을 두껍다 하고 희지 않은 것을 검다고 한다. 두껍다는 것은 낯가죽을 가리키는 것이고, 검다는 것은 속마음을 말한다. 뻔뻔한 것은 천하의 대본(大本)이며 음흉한 것은 천하의 달도(達道)”라고 역설한다. 중국 역사서 24사(史) 등 역대 왕조사를 섭렵한 리쭝우는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천하를 얻게 된다”는 말은 헛소리라고 갈파했다. 유덕자(有德者)에게 천하가 돌아간다는 것은 위선적 거짓말로, 인간 근본 심성은 ‘인의예지’가 아닌 ‘후흑’에 있다는 것.

후흑은 면후심흑(面厚心黑)에서 나온 말이다. 면후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이요, 심흑은 ‘음흉한 속내’를 뜻한다. 물론 리쭝우의 <후흑학>은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뻔뻔하고 음흉해져야 한다’는 식의 요사한 잡학이 아니다. 본질은 후흑 구국론(救國論)에 있다. ‘후흑’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쓰면 욕된 이름을 얻게 될 뿐이지만 나라를 위해서 쓰면 난세에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고 감출 것을 감추며 냉정해야 할 때에는 냉정하게 행동하는, 공공을 위한 ‘후흑’은 나라를 구하는 난세의 통치학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역대 대선을 살펴보면 경쟁자보다 강도 높은 후안흑심으로 무장한 야성적 리더십의 마초적 후보들이 권력을 차지했다. 사생결단하고 벌이는 20대 대선 역시 후흑의 각축장이다. 누가 더 낯가죽이 두껍고, 누가 더 배짱이 세냐로 결판이 날 것이다.

영구 집권을 꿈꾼 이승만(1875~1965)은 후한흑심의 최고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고종 폐위 음모 가담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5년 7개월 감옥 생활을 한 뒤 도미해 조지워싱턴대와 하버드대를 거쳐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33년간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항일 투쟁에 헌신했다. 김구 여운형 장덕수 등 광복 정국에서 이승만에 맞설 만한 거물들이 암살당한 가운데 집권했다. 6·25전쟁 후 대선에서 이승만에 맞선 조봉암 신익희 조병옥 모두 천수(天壽)를 다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후흑 측면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老獪)한 이승만의 적수(敵手)가 되지 못했다.

2대 대선에서 조봉암(1899~1959)은 자유당 시대 국부(國父)로 추앙받던 이승만 대통령의 첫 대항마였다. 3대 대선에도 출마해 이승만에게 패배한 그는 1959년 7월 31일 61세에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는 50여 년이 흐른 2011년 대법원 재심 판결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실정법에서는 유죄지만 역사 법정에서는 무죄였다. 무죄임을 알면서도 조봉암은 비리법권천(非理法権天)을 숙명처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3대 대선에서 이승만에 맞선 신익희(1892~1956)는 당시 서울 유권자 70만여 명 중 절반가량인 30만여 명의 인파가 모였다는 한강 백사장 연설 등으로 압도적 정권교체 열망을 한 몸에 받았지만 대선을 불과 열흘 앞두고 심장마비로 영면했다. 3·15 부정선거가 치러진 1960년 이승만의 라이벌이었던 조병옥(1894~1960)은 대통령 후보 출마 중 갑작스러운 신병으로 치료를 위해 도미(渡美)했다가 불과 선거 한 달 전인 2월 15일 워싱턴의 육군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73세에 집권한 이승만은 85세까지 12년 동안 장기집권했다. 후안흑심의 달인인 그는 6·25전쟁 중에도 임시수도 부산에서 발췌 개헌을 했고, 이후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헌정을 유린하며 장기집권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1960년 3월 15일 부정선거로 몰락한다. 하야 성명을 내고 85세에 미국 망명길에 올랐던 이승만은 90세 천수를 누리고 주검으로 돌아온다.
 
변절과 번복, 후학의 달인 박정희(1917~1979) 18년 집권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도 후흑의 달인이었다. 만주 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거쳐 대한민국 육사 2기 출신인 그는 1948년 남로당 비밀당원이란 사실이 ‘여순사건(麗順事件)’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사형 위기에 처했던 박정희 소령은 남로당 조직과 동지들을 배반하고 살아남았다. 대한민국 전복을 꿈꾸던 남로당 군사총책으로 공산주의자였지만 흑심을 감추고 5·16 쿠데타 ‘혁명공약 1조’에 반공을 국시(國是)로 내세웠다. 그는 집권 18년 동안 3선 개헌, 유신 개헌 추진, 영구 집권을 시도했고 그때마다 거짓말로 국민을 현혹했다. 5·16 쿠데타 직후 개혁을 이루면 군은 본연의 자리로 복귀하겠다고 약속했지만 1963년 대선에 출마했다. 이후 “3선 개헌을 통해 장기집권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공언했지만 1969년 공화당은 3선 개헌안을 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1972년 10월 유신 개헌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폐지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어용단체를 통해 간접선거 방식으로 당선됐다. 계엄령과 9차례 긴급조치 등 폭압 통치로 마지막 순간까지 권력에 집착하다 1979년 김재규 총탄에 삶을 마감했다.

후안흑심의 전두환(1931~2021)과 노태우(1932~2021), 군사반란으로 집권 

전두환은 1979년 ‘12·12사태’ 당시 소장 신분이었지만 상급자이자 계엄사령관인 대장 정승화를 전격 체포한다. 후안흑심이 아니면 도저히 결행할 수 없는 군사반란이자 하극상(下剋上)이었다. 이듬해 5·18 광주민주항쟁을 폭력으로 진압했고 박정희 시대에 만든 통일주체국민회의 체육관 선거로 집권한다. 5공 시절은 대학생 시위와 점거 농성, 투신 자살 등이 잇달았던 정치적 암흑기였다. 전두환은 퇴임 후 수천억원대 비자금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으며, 5·18항쟁에 관해 사과하지 않고 유명을 달리하자 후안무치하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노태우도 ‘보통사람 시대’를 열겠다며 중간 평가를 공약하고 집권해 자신을 후계자로 키워준 전두환을 배신하고 야당과 합당하는 등 후안흑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후계자로 확정된 뒤 전두환이 기획한 6·29선언을 자신의 결단으로 위장해 전폭적인 전두환의 후원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집권 뒤 전두환을 백담사로 유배 보내는 등 후안흑심을 드러냈다. 12·12 신군부 쿠데타의 주역이자 재임 때 수천억원 규모의 통치 비자금 등을 챙기는 등 후안흑심의 내공이 대단했다. 
 
민주화 투쟁은 대권 위한 수단, 김영삼(1928~2015)과 김대중(1924~2009)

김영삼은 25세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정계 진출, 23일에 걸친 생사를 건 단식 투쟁 등 민주화 투쟁에 평생을 바쳤다. 겉으론 부드러워 보였지만 ‘마음을 비웠다’는 식언 등 면후와 심흑을 모두 갖춰 평생의 민주화 라이벌이자 대권 경쟁자였던 김대중보다 한 수 위로 먼저 집권에 성공했다. 소수 야당으로 군사 독재 타도를 외치던 그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자신이 영입한 노무현 의원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권을 위해 ‘구국의 결단’이란 명분으로 노태우·김종필과 야합했다. 후안흑심을 갖추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었다. 로맨틱한 김종필은 3김 중 후안흑심 내공이 부족해 영원한 2인자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김대중은 5번의 죽을 위기, 6년 감옥살이, 10년 망명 생활과 가택연금 55회를 겪었다. 1987년 6·29선언 전 김대중은 “전두환 정권이 대통령 직선제를 수락하면 사면·복권돼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막상 직선제가 되자 ‘군부 독재 종식’과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열망을 뒤로하고 13대 대선에 김영삼과 함께 출마한다. 선거 결과 야권 분열로 김대중 김영삼 모두 낙선했다. 14대 대선에서 3당 합당으로 야합해 여당 후보가 된 김영삼에 패배한 김대중은 선거 직후 전격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으로 건너갔다. 예상대로 김영삼 정부가 끝나갈 즈음 그는 후안흑심으로 정계복귀 선언과 함께 새천년민주당을 만들어 1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노무현(1946~2009)과 교도소 수감 중인 이명박(1941~)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은 퇴임 후 뇌물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자살했다. 노무현은 1988년 초선 의원이 된 후 11월 국회 5공 청문회에서 정치권에 거액을 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질타해 청문회 스타로 부상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기업인 박연차에게 거액을 받은 것이 드러나자 면후, 즉 뻔뻔하지 못해 자살을 선택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해수부 장관을 지내고 대선 후보 전 동교동계에 대한 우호적 태도와 지역주의 양비론의 일시적 위장 등은 그 나름의 후안흑심 능력을 입증해준다. 후안흑심에서 한 수 아래인 이회창과 정몽준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낯이 두껍지’ 못했던 그는 거액 수수의 칼날이 자신을 향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 정권에서 구속돼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제17대 대통령 이명박 역시 면후심흑에서 누구 못지않다. 자신이 몸담았던 현대 정주영 회장은 대권에서 낙마했지만 이명박은 당선됐고 경쟁자였던 정동영은 이명박에 비하면 ‘순진무구한 선비’로 대적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뇌물수수 및 수백억원대 회사 자금 횡령 혐의 등으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원, 추징금 57억8000만여 원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2020년 11월 2일 수감돼 약 16년 동안 수형 생활을 해야 하고. 95세가 되는 2036년 출소 예정이다.

천명(天命),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역대 대통령들의 퇴임 뒤는 어둡고 불안하다. 대권을 잡으려면 ‘잡놈(?)’이 되어야 하는 현실에서 정치의 본질은 상대를 때려야 하는 투쟁이다.

대통령 퇴임 후 비극은 정상에 오른 자의 항룡유회(亢龍有悔)다. 하늘 끝까지 올라가면 후회가 남는다. 후흑(厚黑)의 필연적 업보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과연 누가 최종 승자가 될까? '만사개유정(萬事皆有定) 부생공자망(浮生空自忙)'. '세상만사 이미 다 정해져 있는데 떠돌이 사람들이 공연히 스스로 바쁘다'는 뜻으로, 회한을 풀어내는 자각(自覺)의 깨달음이다. 이제 며칠 뒤면 '보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것만, 믿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보고, 듣고, 믿는‘ 확증편향(確證偏向)으로 희비가 엇갈리고, 운명이 바뀌는 인물들이 속출할 것이다. 

그렇다면 천하(天下)를 잡을 비법은 있는가?

천운(天運), 즉 하늘의 기운까지 자기 것으로 끌어들이면 된다. 누가 더 자기에게 유리한 판을 짜느냐에 따라 승패의 향방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생사를 건 대선판에서 천명(天命)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시대정신에 맞는 비전과 후보로서 쌓아온 공적, 그리고 스토리텔링이 되는 인생사가 버무려진 이미지 등을 갖춰야 대망(大望)을 이룰 수 있다. 여기에 민생이 도탄에 빠진 지금 구국(救國)을 위한 후안흑심을 매력으로 포장할 수완이 출중한 도회술(韜晦術)까지 갖추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문제는 양강 후보가 정책과 비전에서 차별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론조사 결과도 두 후보의 박빙 승부를 예상한다. 후보 흠집 내기와 돈 퍼주기 공약만 난무하고 비호감이 증폭되고 있다. 

로버트 그린은 <권력의 법칙>에서 “권력은 근본적으로 도덕과 관계가 없다. 권력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는 선악 판단이 아니라 상황을 보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양강 후보 중 후안흑심의 강도(强度)가 더 센 후보는 누구일까?

그가 등극할 것이다.

이미 승패는 정해져 있건만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아니하고, 말하는 사람 치고 아는 사람이 없다(知者不言 言者不知)'던가? 한 치 앞을 모르는 천지공사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도참과 풍수설이 분분한 가운데 술사들은 청량산 정기와 개혁 군주 공민왕당(恭愍王堂) 기를 이어받은 인물이 부각될 운세라고 한다. 혹자는 호랑이해인 금년 호랑이상을 가진 인물이 범상치 않은 일을 저지른다고 예측한다. ‘오징어게임’처럼 서바이벌 게임이 된 대선, 그때 가면 ’알 일‘이지만 천기(天機)를 누설하면 천벌을 받는다.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 즉 대통령 하나 잘못 골라 천하를 망치는 건 이름 없는 민초인 유권자라는 사실을 유념할 일이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연합뉴스 이사 ▷가천대 CEO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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