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를 불문하고 철저한 자기반성 선행돼야

최근 <미디어워치>와 <빅뉴스>에서 정해윤 객원논설위원과 필자 등등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 비판적 시각으로 분석한 기사와 칼럼을 내보냈다. 이 당시만 해도 안철수 원장이 정계에 데뷔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정해윤 객원논설위원과 필자는 철저히 기업인 안철수에 대해서 세간의 과대평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업인 안철수에 대해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치인 안철수도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마치 최고의 성공한 기업인 중 한 명인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치에서는 좌절을 겪었듯이, 기업과 정치의 영역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크게 성공하지 못한 기업인이 정치인으로서 크게 성공할 수도 있다

오히려 기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한 기업인이 정치와 정책의 영역에서는 더 성공할 가능성도 높다. 왜냐하면 기업과 시장에서의 구조적 모순을 더 절실히 깨달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정책적인 대안을 만드는 데 더 수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안철수 원장이 IT 소프트웨어 기업인답지 않게, 인터넷을 완전히 장악한 독과점 포털 문제에 대해서 이상하리만큼 침묵하고, 오직 대기업 공격만 하고 있는 점은 나중에라도 입장을 밝혀야할 것이다. 문제 진단을 잘못하면, 대안도 그릇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MBC에서는 안철수 원장을 소개할 때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는데, 이 역시 객관적으로 볼 때 과대평가이다. 세계적인 논문을 쓴 적이 없는데 어떻게 세계적인 석학이 될 수 있는가. 현재 안철수 원장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이러한 매스컴의 과대평가 덕택이 크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검증을 통해 조정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점을 제외한다면, 지금까지의 안철수 원장의 경력과 발언 등등으로 볼 때, 정치인으로서의 결격사유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현재 시도지사나 국회의원 중 안철수 원장 정도의 경력과 국민적 신뢰도를 갖추고 정치에 뛰어든 인물이 몇 명이나 있겠는가.

다만 현재까지 안철수 원장이 한국 기성 정치에 대해 어떠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서울시정에 대한 어떠한 정책관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려진 바 없다. 이 역시 치열한 검증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안철수 원장 개인의 판단보다도, 대체 현재 한국의 정치판이 어떻게 되어있길래 순식간에 안철수 신드롬이 불어닥쳤는지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명분적으로 말하면 안철수 원장 입장에서 “도저히 이런 정치판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 이유, 실리적으로 말하면 “저런 수준의 정치인과 정당이라면 나라고 못할 게 있나”라는 자신감을 갖게 된 동기 말이다.

민주당, 민주노동당으로 좌클릭하며 거대한 중원 공간 놓쳐

1차적인 책임은 제 1야당인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과거 10년 간 집권세력이었으면서도 2007년 대선에서 역대 최다표차로 참패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난 4년 간 집권세력으로서의 수권능력을 키우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한 바 없다. 이명박 정권 초기부터 불어닥친 촛불광풍을 틈타, 오직 반 정부 여론에 편승하여 반사이익만을 노려왔다. 서울대 조국 교수가 안철수 원장에 대해 ‘촛불에 참여한 적 있냐’고 묻고 있지만, 민주당이야말로 수시로 거리로 몰려나가 촛불을 들고 데모를 하면서 신뢰도를 점차 잃어버린 것이다.

더구나 지난 지자체 선거부터는 정책적으로 저 멀리 떨어져있는 민주노동당과의 연대를 하기 위해 좌클릭을 지속해왔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이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때 펴온 정책마저 모두 뒤집고 있다. 여당 시절 추진했던 FTA를 야당이 되었다고 반대하는 세력을 다시 신뢰하여 집권의 기회를 줄 수 있겠는가.

이렇게 민주당이 운동권 집단화되며 좌클리하면서, 정치적으로 중간에 커다란 공간이 생겼다. 지금까지 민주당의 이런 좌클릭 전략이 대체로 성공한 것은 한나라당이 중원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안철수 원장이 바로 이 거대한 공간에 들어설 수 있는 것이다.

2차 책임은 역시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때 기존의 보수층을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후보와 나눴으면서도 중원을 차지하며 대승을 거두었다. 4년이 지난 지금 중간층과 보수층 양쪽으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렸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사안이 얽혀있어 이번 글에서는 생략한다. 문제는 잃어버린 중간층을 되찾겠다며 내세운 대안으로 좌클릭한 민주당을 뒤따라 복지 파퓰리즘으로 잡았다는 점이다. 정말로 대한민국 중간층이 세금복지를 원할까?

보수의 중원 전략은 세금복지가 아닌 중장기적 국익 우선

한나라당이 보수기반의 정당이라면 중원에 진출하더라도 자신의 기반을 확장하는 방식을 써야 했다. 보수주의의 원조인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주의자의 자질로서 오블리스 노블리제를 들었다. 이 오블리스 노블리제가 어차피 국민들이 거두어준 세금을 막 퍼다 쓰라는 뜻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여론에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중장기적으로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그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처절하게 몸을 던지는 것이 보수의 오블리스 노블리제이다. 4년 간 한나라당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정치인이 몇 명이나 있는가. 그나마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직’을 던지면서까지 무상 파퓰리즘에 제동을 건 오세훈 시장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문제가 되는 것은 특별히 세금을 퍼붓지 않고도, 제도개혁과 법제화를 통해 시장을 활성화하여 고급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생산적 대안에 무관심했다는 점이다. 인터넷 경제 개혁, 대중문화 산업 개혁, 아시아 콘텐츠 네트워크, 청년창업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등등, 지난 4년 간 할 수 있는 것들은 수두룩했다.

결론적으로 여야 모두 하나도 안 했다. 책임있는 정치권에서 이런 제도 개혁을 하지 않으니 차라리 “내가 낸 세금이나 나눠먹자”며 국민들이 “돈 다시 내놓으라”고 아우성 치게 된 게 복지 파퓰리즘이 아니겠는가.

야권의 안철수 원장 비판은 “나눠먹기 판에 함께 하자”는 것

이렇게 자신들 스스로 놓친 거대한 공간에 진입하려는 안철수 원장에 대해 민주당 등 야당이 더 불편한 기색이다. 반 이명박 정서를 묶어서 노선도 다른 야당들끼리 야합하여 일단 뭉친 뒤 집권하면 나눠먹겠다는 단순한 전략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야당이 안철수 원장에 요구하는 건, “당신도 우리처럼 나눠먹기 판에 합류하지 왜 따로 노느냐” 이렇게 정리된다. 상황에 따라서 안철수 원장도 이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렇게 나눠먹기식 후보단일화에 매달리다 정치인도 아닌 교육자인 곽노현 교육감이 후보매수건으로 걸려들지 않았는가. 선거제도 개혁으로 얼마든지 다양한 후보에 기회를 줄 수 있음에도, 이는 하지 않고 신진세력이 출마했다 하면 후보단일화 도박판으로 끌어들여 타락시키겠다는 정략부터버려야 한다.

안철수 원장이 이런 압박을 버틸 수 있을 만한 어느 정도의 정책적 실력을 쌓아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 워낙에 좋은 이미지로 살아왔기 때문에 아주 사소한 사생활의 문제점 몇 가지만 드러나도 치명타를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안철수 원장이 혹시 쓰러진다 해서 거대한 공간이 여야 양쪽으로 다시 돌아갈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심각한 정치 혐오증이 더욱 악화되어 대의 민주주의 자체가 위협받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최소한 집권 여당인 한나라당과 제 1야당인 민주당은 안철수 원장에 대한 흠집내기에 골몰할 시간에 대체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졌는지 반성과 성찰을 해보기를 권한다.

민주당은 단 한 가지도 국가정책으로 활용할 수 없는 수준의 민주노동당 정책을 그대로 베끼며 질질 끌려다니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직시할 것이며, 한나라당은 이런 민주당을 따라가는 것이 중도통합이라고 대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이 연구를 해보라는 것이다. 국민일보 여론조사 결과 야권표를 잠식할 거란 예상과 달리 여권표도 상당 부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을 한나라당도 간과해선 안 된다.

양 당이 이런 기회만 가질 수 있다면, 안철수 원장 개인의 성패와 관계없이, 그의 정치 선언은 대한민국 정치개혁에 큰 활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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