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무예청(武藝廳)과 대한민국 전통의장대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초소에서 양국 보초병들이 경쟁적으로 벌이는 씩씩하고 화려한 교대식 연출은 관광객들의 볼거리로 널리 소문이 나 있다. 그렇지만 한반도 판문점에서는 그런 의식 없이 양쪽 군인들이 서로 마주서 째려보기만 한다. 헌데 남한의 병사들은 언제나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사실 햇빛 때문이라면 남향을 한 북한 병사들부터 써야하는 데도 말이다. 속사정인즉슨, 남한의 여린 병사들이 도무지 북한군과의 눈싸움에서 견뎌나질 못하기 때문이란다.

품격이 경쟁력이다

조선시대 무예청(武藝廳)이란 훈련도감(訓鍊都監) 소속 기구로 조선 군사들 중 최고의 기예를 가진 자들을 가려 뽑아 궁궐의 수비와 왕의 시위(侍衛)를 맡긴 기구였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경호처와 같은 조직이다. 국방부 전통의장대와 경복궁수문장교대식도 예전에는 모두 이 무예청의 업무였다.

훈련도감에는 따로 별기군(別技軍)이 있었다. 마병(馬兵)과 보병(步兵) 및 그 족속 중에서 힘이 세고 신체가 건장하며 기예에 뛰어난 자를 따로 선발하였다. 모두 십팔기 전 종목에 능한 이들로 때로는 훈련도감ㆍ금위영ㆍ어영청ㆍ총융청에 무예 교련관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별기군의 자제들은 일찍부터 대년군(待年軍)에 들어가 무예를 익혀 나중에 별기군으로 편입되어 세습되기도 했다.

이 별기군 중에서도 출중한 자들은 왕의 재가를 받아 무예청에 들어갔는데 이들을 '무예별감(武藝別監)' 또는 줄여서 '무감(武監)'이라 칭하였다. 대령무예청(待令武藝廳) 가대령무예청(假待令武藝廳)은 모두 붉은 군복에 칼을 차고 시위(侍衛)하였다. 나머지 문무예청(門武藝廳) 무감들은 홍철릭[紅天翼]을 입고 황초립(黃草笠)을 썼으며 모자 위에 호수(虎鬚)를 달았다.

정조 다음으로 즉위한 순조(純祖)가 지은 《순제고(純齋稿)》에서는 무예별감이란 임진왜란 때 선조(宣祖) 를 호위했던 열 명의 훈련도감 무사들에게 선조가 피난길에서 돌아와 그 노고를 치하하여 붙여준 이름이라고 밝히면서 무예청의 창시자를 선조라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무예청 무사들을 십팔기로 훈련시켰는데 그 중 본국검(本國劒)과 월도(月刀)를 장기로 익혔다고 기록하였다.

조선시대 국왕 시위무사 무예별감(武藝別監)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그린 동궐도(東闕圖)에는 무예청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무예청의 옆에 통장청(統長廳)이 있고 약간 남쪽에는 별감방(別監房)의 모습이 보이는 데, 별감과 통장은 모두 무예청 소속의 직제이므로 이 부근이 모두 무예청 건물이라고 볼 수 있다. 무예청 바로 북쪽에는 낮은 단을 쌓은 공터와 군물고(軍物庫)가 보이는 데, 이곳에서 무예를 수련하고, 병장기를 보관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복궁을 살펴보면, 건춘문(建春門) 부근에 별감방과 별군직청(別軍職廳)이 보인다. 별감방은 무예별감들의 공간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별군직이란 효종의 세자시절 청나라의 압력에 의해 중국의 심양으로 갔을 때 이를 호송한 8명의 무사들의 노고를 기려서 만든 직책으로 무예청과 마찬가지로 왕의 근접호위를 맡았다.

▲반차도(班次圖) 중 일부분으로 정조(正祖)의 측근에서 호위하는 무예청 무사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임금은 그리지 않는다.)
 
지금 서울 경복궁에서 행해지고 있는 ‘수문장교대식’은 사실 역사적 고증으로 보면 억지스러운 것이다. 원래 궁궐을 순찰하고 문을 지키는 것은 모두 문무예청(門武藝廳)이 하던 것으로, 지금처럼 요란하게 교대식을 치른 적이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냥 조용히 언제 교대했는지도 모르게 보초가 바뀌는 것이 맞다. 예전에 어느 대통령이 영국을 다녀와서 우리도 그런 것을 하나 만들어보라고 하는 바람에 급작스레 만들어진 관광 상품이다.

그래서 그런지 행사를 치르는 아르바이트 무사들의 얼굴에선 당당함이나 긍지를 찾아볼 수 없고, 마지못해 시간을 때우는 마네킹 같은 느낌이 들어 안타깝다. 이왕지사 조선시대의 무예청을 복원하여 그들에게 맡기는 것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고, 더불어 그들의 무예시연도 함께 펼친다면 한결 역동적인 문화 상품이 되지 않겠는가. 궁궐 기와집 위주의 정적(靜的) 전통문화에 식상한 터에 동적(動的)인 문화 상품으로 민족의 진취적 역동성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개 숙이는 세계 유일의 의장대

공항이나 청와대에서 외국 수상이나 대통령을 맞이하는 국방부 전통의장대가 있다. 역시 예전에 어느 대통령의 명으로 만든 것이다. 다른 국군의장대와 달리 구군복을 입고 국가 의전을 행하는데,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리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헌데 이들의 예법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귀빈을 맞을 때 허리나 고개를 숙여 사열 받는 것이다. 세계 어디의 군례(軍禮)에도 그와 같은 경우는 없다. 이는 현대만이 아니라 고대의 예법에도 없던 일로 자칫 자랑이 아니라 나라 망신이다.

▲ 사진1.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2.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8일 밤 오산 미군 공군기지에 도착해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3. 이명박 대통령이 쿠알라룸푸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인도네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4. 국방부 연병장에서 라사 유크네비시엔느 리투아니아 국방장관을 환영하는 의장행사가 열리고 있다. 세계 어느나라 의장대도 허리를 굽히거나 눈을 깔지 않지만 유독 우리나라 전통의장대만 다르다. ⓒ연합뉴스 ©

조선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군례(軍禮)>가 있듯 예전에는 매우 중요하게 여겼었다. 비록 세세하게 경례동작 설명까지는 남기지 않았지만 《효종실록》을 보면 임금이 “군중(軍中)의 예(禮)에 갑옷 입은 군사는 본래 몸을 굽혀 절하는 법이 없다. 어가가 지날 때 두 손을 마주잡고 몸을 편 채 꿇어앉아서 단지 경건하게 대기하는 예만 행해야 할 것이다”라며 흐트러진 군례를 질책하고 다잡는 모습이 보인다. 당시 왕의 행렬을 지켜보며 대기하던 군사들도 어가가 지날 때에 일반백성들처럼 무릎을 꿇고 엎드렸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함께 행진하는 군사나 왕의 호위무사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 왕이 정식으로 열무(閱武)할 때에는 무릎조차 꿇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는 2007년부터 3년간 이 전통의장대에 무예십팔기를 지도했었다. 그전까지 사열을 행할 때 고개는 물론 허리까지 굽혔었다. 하여 필자가 그 잘못됨을 지적하여 개선을 건의했으나 겨우 허리 굽힘밖에 고치지 못했다. 차마 고개까지 들게 할 소신과 배짱이 그들에겐 없었던 모양이다. 의장대는 그 나라 군을 대표해서 상대국 군통수권자에게 환영의 예를 표하고 사열 받기 위해 공항에 나가는 것이지만,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의 근접 호위부대다. 그런데 고개를 숙이다니! 그래가지고서야 호위가 될 턱이 없고 위신이 설 턱이 없다.

지나친 공손은 국격을 떨어트린다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군사(무사)로서 무장을 갖춘 경우에는 예를 생략하는 것이 기본이다. 하여 언제나 군례는 문인이나 일반인들의 그것들과는 달리했다. 상례(常禮)와 군례(軍禮)를 구분도 못하고 전통적인 것이면 무조건 공손하게 굽히거나 숙여야겠거니 하는 바보스런 발상이 도무지 어디서 나온 것인지 모르겠다. 국가의전을 백화점 문 열 때 손님맞이와 같은 것으로 여기는 건 아닌지?

예로부터 대개의 선진국에서는 허리를 굽히거나 고개 숙여 눈을 내리깔면 노예로 본다. 복종의 의미이다. 지금이야 노예가 없지만 아무튼 하인 이하로 경멸한다. 전통적인 우리의 예법으로 호감을 얻고자하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비굴해 보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복종의 표시로 사열 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사열한 귀빈들 역시 그 모습에서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것 외에 달리 무슨 인상을 받았겠는가.

허리 굽힘은 당당하면서 절도가 있어야 하는 무인들의 예법에선 있을 수 없는 일로 수치이자 굴욕이다. 경례하는 순간조차 화살이나 총알이 날아와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담력과 패기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는 자신들의 주군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포로에게도 무릎 꿇을 것은 강요할망정 허리를 굽히거나 머리를 조아리게 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군사(무사)로서의 자존심과 예는 서로 존중했던 것이다.

지금도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제복을 입은 군인이나 경찰은 고개를 숙이는 대신 팔과 손을 들어 올려 경례를 하고, 총칼을 들었을 경우에는 그걸 받들어 세움으로써 예를 표하고 있다. 전통의장대라 해도 그들 역시 군인(무사)이다. 비록 복식이야 전통적이라 해도 사열이나 경례 동작은 현대식을 따라도 무방할 것이다. 글로벌적 시각에선 고개 숙이지 않는다 해서 불경하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통을 가로 막는 고개 숙임 인사법을 더 어색하게 여길 것이다.

어디 전통의장대 뿐이랴.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종묘제례’ 중에 행하는 무무(武舞) 또한 그 고증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중간 중간 허리 깊숙이 굽혀 절하는 모양새는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 동작이라 하겠다. 문무(文舞)라면 모르겠으나 무무(武舞)에서는 가당치가 않다. 무(武)가 뭔지, 군례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림짐작으로 복원했기 때문이리라.

전통은 지키되 국격(國格)은 높여야

그런가 하면 조선시대 모화관(慕華館)에서 중국 사신을 맞이했던 것처럼 옛 복식을 한 문무백관들이 도열하여 외국 귀빈을 맞은 행사도 자주 있다. 이때 문무백관들이 모두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는데, 이 역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굳이 전제군주 시절의 인사법으로 손님맞이 할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따라서 이 경우 바른 자세에서 두 손을 맞잡아 올리는 읍례로 당당하게 귀빈을 맞이하는 것이 국격을 낮추지 않는 예법이 아니겠는가. 그렇다한들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이 이를 두고 예에 어긋난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 더 바란다면, 전통의장대라 하여 그 복장을 너무 예스럽게 할 것까지야 없지 않을까 싶다. 콩나물처럼 가느다란 키에 지나치게 크고 무거운 전립, 축 늘어진 비단 구군복. 전체적으로 어깨가 쳐져 원래 보이고자 했던 절도나 씩씩함을 찾아볼 수가 없다. 하여 모든 걸 고증에 따를 것이 아니라, 요즘 유행하는 사극에서처럼 융통성을 발휘해 조금은 개량을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이왕 전통문화의 깊은 멋을 보여주더라도 현대적 세련미를 가미해서 어색해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이다. 지금의 수문장이나 전통의장대 복식도 긴 역사 속에 어느 한 시기의 형태일 뿐, 고조선시대부터 줄곧 입어온 것이 아니기에 하는 말이다. 게다가 지금의 국군의장대 역시 다른 일반 군인들의 복장보다 멋을 내고 있지 않은가. 굳이 원형의 완벽한 재현이라면 따로 다른 행사를 통해 하면 된다.

흔히들 문화가, 디자인이 경쟁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품격이 없으면 결코 경쟁력을 지닐 수 없다. 차라리 아니함만 못한 경우도 많다. 대한민국 제일 관문인 공항에서부터, 대표하는 청와대에서부터 지레 허리 굽히고 고개 숙여 코리아를 평가절하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허세 부릴 필요도 없지만 지나치게 공손할 이유도 없다. 대한민국도 이젠 있는 그대로 당당해도 된다. 그래야 제 값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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