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政治的) 측면에서는 ‘질서정연한 자유민주주의 사회’
경제적(經濟的) 측면에서는 ‘효율적이고 공정한 시장 자본주의’
대한민국의 국정철학(國政哲學)은 탈(脫)이데올로기적‘신(新)실용주의

임양택 한양대 명예교수
임양택 한양대 명예교수

글/林陽澤(한양대학교 명예교수, 前한양대 경제금융대학 학장/現사단법아시아평화경제연구원 이사장)

윤석열 당선인은 한편으로는 통합(統合)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선 후 공약 실천 행보(예로서 ‘청와대 탈출’과 여가부 폐지)를 보이고 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3월 16일 청와대에서 오찬 회동을 한 후(3월 20일)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에 있는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대응하여, 3월 21일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상기 발표에 대해 “민생에 백해무익하고 국가안보에 재앙과 같은 선택”이라고 비판하고‘친(親) 이재명’ 세력을 결집하여 정권교체 후 예견되는 사정 정국과 6·1 지방선거대책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 3·9 대통령 선거로 ‘내전’이 종식된 것이 아니라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포화(砲火)는 시작될 것이다. 또 다시, 한국 시민은 갈라질 것이다. 기회 상실의 ‘역사의 비용’은 누적될 것이다. 국민들이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급증하고 한국경제는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한 경제위기 극복방안을 두고 논쟁을 벌여야 하거늘 한국 정치인들이 벌이고 있는 작태를 보면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최근에, 오미크론의 치명률은 0.09%로 독감(0.1%) 수준이지만 확진자가 금년 3월에 들어 하루 평균 30만명 넘게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3월 1~22일 사망자 수가 5000명(정확히 5083명)을 넘어섰으며 최근 엿새간은 매일 하루 300명 이상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현재 한국경제의 위기 상황은 4가지 : ① 잠재성장률(潛在成長率)의 지속적 하락(2020~2030년 연간 1.9%→2030~2060년 연간 0%대)으로 인한 장기 침체(Secular Stagnation)와 대량실업 발생, ② 재정적자(財政赤字)의 누증과 광의의 국가부채(國家負債, D3 기준) 급증(2020년 1천985조원, 당해년도 GDP 1천924조원을 능가)로 인한 재정위기(財政危機), ③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천문학적 민간부채(2021년 2분기 기준으로 GDP(국내총생산) 대비 218.2% ; 가계부채가 1805조9000억원, 기업부채가 2219조6000억원)으로 인한 은행위기(銀行危機) 발생 가능성, ④ 외환보유액이 4,587억 달러(2021년 8월 기준)이지만‘高금융불안’→ 원화가치 급락 → 트리플 약세(주식·채권·원화의 동시적 약세) →‘제2 외환위기’ 가능성이다.

도대체, 정치(政治)란 무엇인가? 고대 중국의 유교(儒敎) 경전인 『상서』(尙書)에 의하면 ‘정치(政治)’란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자신을 닦은 후 남을 돕는 것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바른 사람(正人)이 정치(政治)를 맡아야 백성이 정치적 명령에 잘 따르게 된다”(政也者, 正也. 均吾民也)고 강조했다. 일찍이, 플라톤(Plato, BC 427~347)은 철학자가 국가통치자가 되거나 국가통치자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설파(說破)하였다.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는 ‘원칙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rinciples)를 통박했었다. 그렇다면, 원칙(原則)이 무엇인가? 그것은 국정철학(國政哲學)이다. 막스 베버(Max Weber,1864~1920)는 정치(Politics)를‘국가의 운영 또는 이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라고 규정하고, 정치가(政治家)는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고 그의 대표적 저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1903년 및 1905년)에서 강조했다.

한국 시민들이 국가지도자(國家指導者)에게 기대/소망하는 것은 비전(Vision)과 청사진(靑寫眞)이다. 한 명의 ‘꿈(夢)’은 한 밤의 잠(睡眠)에서 깨어나면 곧 사라지지만 국민 모두가 함께 꾸는‘한국 몽(韓國 夢)‘ 즉 비전(Vision)은 역사(歷史)를 일으키고 현실이 된다. 성경(聖經)은 “비전(Vision)없는 국민은 망(亡)한다”라고 가르친다(영문 잠언 29-18). 미국의 제35대 대통령(재임:1961~1963) 존 F.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1917~1963)는 암살되기 전날, 만찬회 석상의 연설 : “비전 없는 국민은 망한다‘라는 구약 성경(Old Testament)의 잠언 29장 18절의 구절을 인용했었다.

그렇다면, 한국인 모두가 함께 추구해야 할 ’공통적 꿈‘ 즉 공동선(共同善, Common Good)은 무엇인가? 우선, 일제(日帝) 시대에 민족반역적 행위를 저질렀었던 친일파(親日派)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한국인의 공동선(共同善)은 일제(日帝)로부터의 ’자주독립국가(自主獨立國家)‘였다. 당시, 봉건제도(封建制度)와 절대빈곤(絶對貧困)에 대한 불만은 있었지만 사회갈등(社會葛藤)은 거의 없었다. 그후, 과거 군사정권의 독재체제하에서 기생(寄生)했었던 기득권 집단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 한국시민의 공동선(共同善)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지난 60년 동안 ’타는 목마름으로 불렀었던‘ 민주주의(民主主義)였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의 모든 시민들은 편견없이, 즉 이데올로기(Ideology)를 떠나서 냉철하게 숙고해보자. 1960년 4·19혁명 후 전개되어 온 민주화(民主化, Democratization)와,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부터 추진했었던 산업화(産業化, Industrialization)를 넘어, 대한민국의 비전(Vision) 즉 공동선(共同善, Common Good)은 무엇일까? 또한, 소규모 개방경제(Small Open Economy)’로서 4강(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북한의 핵무기를 머리에 얹어놓고 살아가는 ‘한국인의 공통적 꿈’은 무엇인가?

필자는 대한민국의 비전(Vision) 즉 공동선(共同善, Common Good)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 정치적(政治的) 측면에서는 ‘질서정연한 자유민주주의 사회’(A Well-Ordered Free Democratic Society)와, 경제적(經濟的) 측면에서는 ‘효율적이고 공정한 시장 자본주의’(An Efficient and Equitable Market Capitalism)를 각각 구축하여 부정부패(不正腐敗)가 없는 플라톤(Plato, BC427~347)의‘정의로운 국가’(A Justice-based State)와 ‘자살공화국’이 아닌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BC384~322)의‘행복한 사회‘(A Happy Society)를 실현함으로써 ’현대판 대동사회(大同社會)‘를 구현하는 것이며, 나아가 우리 민족의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민족 철학을 바탕으로 민족통합(National Integration)을 점진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우선 남·북한 ‘경제통합’(Economic Integration)을 ‘신(新)실용주의’(Neopragmatism)의 측면에서 추진하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판 대동사회(大同社會)‘란, 복지재정위기를 야기하는‘정부주도형 복지국가’(A Government-driven Welfare State)’가 아니라, ‘완전고용기반형 복지사회’(A Full Employment-based Welfare Society)로서 가정과 가족의 사랑을 실천하고 이웃까지 사랑의 실천을 확대하는 인간 협동사회, 직업의 귀천 없이 가치를 상호 존중하여 각자의 역량을 발휘 하는 조화사회(調和社會)이다.

상기한 비전(Vision)을 실현하기 위한 청사진(靑寫眞)은 국가이성(國家理性)에 기초한 종합적 장·단기 계획이다. 대한민국의 국정철학(國政哲學)은 적자생존에 기초한 미국의 실용주의(實用主義, Pragmatism) 혹은 국가자본주의에 기초한 중국의 실사구시(實事求是)가 아니라 탈(脫)이데올로기적‘신(新)실용주의(新實用主義, Neopragmatism)’이다.

‘탈(脫)이데올로기적’ 신실용주의’(新實用主義, NeoPrgmatism)의 유용성(有用性)은 개인주의(자유주의) vs 공동체주의(공화주의)의 조화이다.

최근에 국가(國家)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인가를 두고 시장에 대한 정부 즉 국가의 간섭 정도를 두고 ‘소극적 국가관’과 ‘적극적 국가관’이 대립해오고 있다. 이 논쟁의 사상적 기저(基底)는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개인주의(자유주의) vs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의 공동체주의(공화주의)이다. 그러나 필자는 상기한 대립적 입장을 탈피하여 두 개념 : 개인주의(자유주의) vs 공동체주의(공화주의)을 조화한 철학이 ‘신(新)실용주의(Neopragmatism)’를 국내/외에서 발표/주장해왔다(임양택, 2007, 2008, 2011a and b, 2013, 2014, 2017a and b, 2018 ; Yang-Taek Lim, 2010, 2011, 2012a and b, 2014).

주지하다시피, 사회주의 이념 즉 이데올로기(Ideology)는 이미 죽었으며, 향후 더욱 더 죽여야 한다. 다니엘 벨(Daniel Bell, 1919~2011) 교수는 그의 저서 「이데올로기의 종언」(The End of Ideology, 1960년)에서 “현대의 급진적인 지식인들에게 기존의 이데올로기들은 더 이상 ‘진리’가 될 수 없고 이제 설득력을 상실하였다”고 주장하고‘탈(脫)산업사회(産業社會)’인 현대 서구 사회에서의‘이데올로기의 종언(終焉)’을 선언하였다. 또한,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1952~현재) 교수는 그의 저서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en, 2006년)에서 사회주의(社會主義)는 이미 구조적 실패로 인하여 몰락하였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므로 한국의 국가지도자(國家指導者)는 ‘탈(脫)이데올로기적’ 국정철학(國政哲學) 즉 ‘신실용주의’(新實用主義, NeoPrgmatism)에 바탕을 둔 비전(Vision)과 청사진(靑寫眞)을 제시하고 이것을 모든 국가정책에 반영하여 일관성있게 추진해야 한다.

상기한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비전(Vision) :‘정의로운 국가’(A Justice-based State)와 ‘행복한 사회‘(A Happy Society)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이고 공정한 시장 자본주의’(An Efficient and Equitable Market Capitalism)와 ‘질서정연한 자유민주주의 사회’(A Well-Ordered Free Democratic Society)를 구축해야 한다.

전자는 <국민의 힘>을 비롯한 보수(保守) 세력이 과거 추진했었던 산업화(産業化)의 궁극적 목표로서 향후 특화해야 할 역사적 소명인 반면에는 후자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진보(進步) 세력이 과거 추진했었던 민주화(民主化)의 궁극적 목표로서, 과거 ‘반공에 의하여 압살되었던 자유’(‘결과적 평등’이 아니라)를 향후 특화해야 할 역사적 소명이다. 이러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질 때, 사회통합(社會統合)은 비로서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한국의 국가지도자(國家指導者)는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현재)의 ‘의사소통의 이성’(Communicative Reason)을 갖고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 1918~2013) 대통령(재임 : 1994~1999)과 같이 ‘위대한 대소통자(A Great Communicator)’가 되어 갈등하는 집단들과의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화해시키며, 보수(右派)와 진보(左派)의 ‘이념(理念) 갈등’을 한국사회의 공공선(公共善, The Common Good)과 국가이익(國家利益)을 위한 ‘정책(政策) 경쟁’으로 유도함으로써 사회통합(社會統合)을 이루어내고 카를 포퍼(Karl Raimund Popper, 1902~1994)의 ‘열린 사회’(Open Society)로 추구해야 한다.

모름지기, 국가의 ‘어른’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주고 오늘의 고통을 인내할 수 있도록 다독거려 주어야 하며, 이와 동시에 국민의 단견적 아집(我執)과 우매(愚昧)를 깨우쳐 주어야 한다

필자는 세계적 국가지도자들의 정치적 리더십(Political Leadership)을 개관하면서, 다음과 같은 소망을 갖게 된다 : 프랭클린 데라노 루즈벨트(Franklin Delano Roosevelt)와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대통령이 탁월한 정치적 리더십으로써 미국의 경제위기를 극복하였듯이 그러한 정치적 리더십에 의하여 한국의 최근 경제위기가 극복될 수 있기를, 마가렛트 대처(Margaret Hilda Thatcher) 총리가 철옹성(鐵瓮城)과 같았던 공(公)기업과 노동조합을 대대적으로 개혁하였듯이 한국에서도 철(鐵)밥통과 같은 공(公)기업과 귀족 노조의 기득권이 일대 개혁될 수 있기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가 노조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하고 포용력과 결단력을 갖춘 보수주의자’이되 ‘원칙을 지키는 지도자’로 평가되고 있듯이 한국에서도 노사 화합이 정착될 수 있기를, 로저 더글라스(Roger Douglas)) 장관이 그렇게 했었던 것처럼 한국의 국가개혁(노동, 금융, 교육, 공공부문)이 정부부문의 개혁(중앙정부의 축소와 효율성 증대, 정부조직의 기업화·민영화 촉진, 각종 규제와 보호조치의 약화 혹은 철폐를 통한 공기업 축소 및 민간기업 확대)이 국가개혁의 출발점이자 근간임을 믿고 ‘말로만 하는 개혁’이 아니라, 또한 ‘밀어붙이는 개혁’ 추진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추구해야 할 개혁목표를 사전에 알리고 개혁성과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고 각 계층의 양보를 얻어내고 침착하게 자신 있게 추진될 수 있기를, 나아가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 총리가 독일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였고 이어서 헬무트 콜(Helmut Kohl) 총리가 독일 통일을 이루어냈었던 것처럼 한반도에서도 민족통일의 철학을 갖고 남·북한 통합을 일구어낼 수 있기를, 나렌드라 모디 (Narendra Modi) 총리가 ‘잠자는 코끼리’를 깊은 잠에서 일깨운 것처럼 ‘백두산 호랑이’와 같은 한국인의 용맹과 저력이 또 다시 포효(咆哮)할 수 있기를 각각 소망한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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