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중 고 김대중 대통령 비서관
신재중 고 김대중 대통령 비서관

"국민의힘 광주시당 선거사무원 2명 폭행 당해"

지난 대통령 선거가 있기 5일 전의 기사 제목이다. 광주에서 50대 여성이 같은 지역의 대학생인 국민의 힘 선거사무원을 이유 없이 폭행했다는 내용이다. 그것도 민주화 성지라 부르는 광주에서...

1960년대 초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대한민국은 독재.군사정권의 시대였다. 그 시대에는 독재.군사정권으로 인해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인권이 억압을 받았으며,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자유와 평화가 사라진 어둠의 나라였다. 그 과정에서 호남은 독재정권의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그 한 가운데는 민주화 투쟁의 선구자이자 산증인이었던, 호남을 상징하는 정치인 김대중이 있었다.

독재.군사정권을 상대로 민주화 투쟁의 선봉장이었던 야당의 김대중 총재는 독재.군사정권의 최대의 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러한 김대중 총재를 정치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해, 호남을 지역적으로 고립시키고, 지역감정을 유발시켜 영.호남을 편을 가르며 지역감정의 벽을 쌓아 버렸다. 정권을 잡고 있는 영남의 눈부신 발전에 비해, 호남은 군사정권의 정치적 희생양이 되어, 고의적으로 차별화를 시도해서 지역발전을 낙후시키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호남출신 젊은이들이 대기업에 이력서를 접수시키는 즉시 휴지통으로 버려지는 수모를 당하던 시대였다. 그리고 호남인들이 사투리만 써도, 사회적으로 크게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못하는 대한민국으로부터 버림받은 피해자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마침내 민주주의를 이루고, 억압당한 인권을 회복시켰던 호남의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은 호남인들의 구세주와 같았다. 1997년 외환위기인 IMF의 국가적 존망의 상황에서, 나라를 위해 30년을 준비한 김대중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를 통한 국민대통합이라는 국정철학을 바탕으로, 전 국민을 하나로 통합을 시켜, IMF를 조기에 극복하면서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해냈던 것이다.

국민의 정부에서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인물을 찾아 적시적소에 골고루 등용을 시킴으로써, 지역감정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다. 그럼으로써 소외되었던 호남인들의 국정참여도가 높아지고, 젊은이들의 이력서는 휴지통이 아닌 최상위에 올라가게 되고, 전라도 사투리는 자랑스러움의 상징이 되기도 했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으로 호남의 한은 자연스럽게 풀렸으며, 그동안 뒤쳐진 호남은 영남과 대등한 지역발전을 위해, 호남 지역의 지자체가 당당하게 큰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또한 많은 호남인들의 정치권 진입과 정부부처 관료로도 성장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새 피해자의 굴레에서 벗어나 권력을 쟁취해 내는 주류가 되어 있었다. 국민의 정부인 김대중 정권에서는 호남의 분노는 눈처럼 녹아버렸고, 누구를 공격할 이유도 없었고, 분노할 필요성도 없었다. 오직 뒤처진 지역발전과 호남인들의 중앙무대로의 전진을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 디딜 뿐이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시작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586운동권을 기반으로 한 친노.친문의 정치세력으로 인해, 또 다시 대한민국을 민주화 세력과 독재 세력으로 편 가르기를 시도함으로써, 내편 아니면 적이라는 갈라치기가 이루어져, 야당을 적폐의 대상으로 몰아세우며, 1980년대의 이념 전쟁을 치러야 하는 대결 정치로 전환되어 버렸던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586운동권 정치세력은 집권여당의 핵심이 되면서, 국정의 방향이 미래가 아닌 과거만 바라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호남인들을 우호세력으로 이용을 해서, 지난 분노의 악몽을 교묘하게 다시 끄집어내어, 자신들의 친위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비열한 정치행위이자 피해의식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스스로가 분노와 분열의 상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586운동권정치인들의 정치농락으로 인해, 호남의 정서는 권력을 잡아도 피해자요. 권력을 빼앗겨도 피해자가 되는 이해할 수 없는 피해자가 되어, 공격적인 강성 이념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는 노무현의 죽음을 정치적 타살로 보고, 이에 대해 한을 품은 문재인 대통령과 586운동권 세력의 한풀이 정치로 인해, 야당을 적폐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경력을 내세워 586운동권 세력은 분노와 분열의 정치를 집권 5년 동안 멈추지를 않았던 것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촛불정권은 한풀이를 위한 분노의 정권으로 타락한 것이었다. 그 중심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586운동권 정치 세력이 있었고, 그 곁에는 "우리 이니 마음대로 하라"는 대깨문이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던, 이 나라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해낸 펜덤의 세력들이다.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은 무한 권력을 행사할 수가 있다. 그래서 탄핵정국에서 촛불의 힘으로 권력을 잡은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의 칼부림에, 그 누구도 반기를 들지 못하고, 적폐대상으로 낙인찍힌 자는 살아남지를 못했다. 촛불권력을 마음껏 누리면서도, 분노와 공격은 멈출 줄을 몰랐던 것이다.

그 결과로 문재인 정권의 촛불권력은 적폐청산을 기치로 국민의 반을 적으로 만들어 버리고, 분노의 정치를 해왔던 것이다. 국민을 위한 권력 쟁취가 아닌, 한 풀이를 위한 권력쟁취가 되어, 국민이 바라고 기대했던 촛불정권의 목적의식도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야당 때도 분노하고, 집권당이 되어서도 분노하고 공격만 하는 정치행위는,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닌 패거리 정치일 뿐더러, 586운동권 정치인들의 정치적 욕망을 위한 선동과 투쟁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호남은 586운동권 세력의 투쟁의 현장이었기에, 5.18광주민주화 항쟁을 직접 겪었던 호남인들의 분노는 586운동권 정치인들의 정치적 무기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586운동권 정치인들은 독재정권을 향했던 분노와 공격성을, 피해의식에 노출되어 있는 호남의 감정에 주입시켜 과거의 악몽을 다시 되살아나게 함으로써, 군사.독재정권 때의 분노의 화신으로 변해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분노의 감정이 되살아 난 호남은 586운동권 정치인들이 가르키는 보수 세력을 향해 멈출 줄 모르는 분노와 공격은, 선거 때마다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 결과적으로는 정치적으로 악용당하며, 그들의 정치적 욕망을 위한 희생양이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호남은 586운동권 정치세력의 정치적 욕망을 채워주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 당시의 호남정서와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때의 호남정서를 비교를 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586운동권 정치인들이 정치권력을 30년 이상 동안 누릴 수 있었던 근저에는, 호남의 역사는 분노의 역사이기에 호남을 분노의 틀에 가두어 놓고, 자신들을 위해 대신 분노하고 공격해 주는 호남이라는 든든한 우군이 존재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제는 이유도 모르고 목적이 없는 분노의 감정을 추스를 때가 되었다. 분노보다는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다. 그래야만이 대한민국의 더 큰 발전이 따른다.

지금까지 호남인의 분노는 자발적인 분노가 아닌, 친노.친문을 비롯한 586운동권 정치세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진 분노이기에, 586운동권 정치세력만 정치권에서 퇴장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호남의 각성이 필요하다.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면 알 것이다. 호남이 앞세운 후보로 대통령을 만들어 낸 호남이, 무슨 이유로 왜 분노를 해야 했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점을 호남 사람들 스스로가 찾아내기를 간절히 바란다.

21세기의 최첨단 정보화 시대에서, 세계 경제대국 G-5를 향해 전진해 가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급변하는 세계화에 따라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한반도의 반쪽인 대한민국의 통합이 필요하다. 하지만 호남인의 분노가 멈추지 않는 이상, 지역화합이나 국민대통합은 말잔치일 뿐일 것이며, 남북통일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결론이다.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희생을 했던 호남의 정신은 아직도 살아 있기 때문에,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호남이 먼저 앞장을 서야 한다. 용서와 화해를 강조하셨던 호남의 정치 거목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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