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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그림마실19, -자연주의, 밀레-

자연주의(自然主義, naturalism), 자연의 사실적 묘사

자연주의는 자연을 이상화하지도 관념화하지도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담아내는 사실적 회화양식을 말한다. 1800년대 주로 신화와 환상을 담아내던 낭만주의 (Romanticism)에 반발한 화가들은 자연의 사실적 묘사에 주목하였고 여기에서 자연주의가 나왔다. 특히 밀레와 루소, 코로 등은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 마을에 머물면서 퐁텐블로 숲 주변 풍경을 즐겨 그렸는데 바르비종 마을에 주로 머물렀다하여 이들을 바르비종파(Barbizon school)라 부른다.

터너, <폭풍>, 1842

영국의 자연주의 화가인 윌리엄 터너의 작품 <폭풍, Snow Storm>(1842)은 검게 그려진 선체와 가는 돗대에서 펄럭이는 깃발이 휘몰아치는 폭풍의 돌풍과 맞서 싸우는 듯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터너는 말한다. "나는 폭풍우의 장면이 어떻게 보이는지 보여주고 싶다. 선원들에게 돛대에 내 몸을 묶게 하여 폭풍우를 관찰했다. 나는 네 시간 동안 돛대에 묶여 움직일 수 없었다. 그 곳을 벗어났다면 이런 폭풍우를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터너는 바다에서 휘몰아치는 폭풍을 담아내기 위해 죽음을 무릎 쓰고 폭풍을 직접 체험하고 그 폭풍의 한 가운데에서의 절정의 순간을 잡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사이러스 레딩은 터너의 작품 <폭풍>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언젠가 비버리만의 해안가를 달려 버섬에 갔다.…… 터너는 침묵을 지키며 폭풍우 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는 사색에 잠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가 조개를 굽는 동안, 터너는 연필을 들고 섬의 정상에 올라가 그림을 그린다기보다는 무언가를 쓰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사나운 폭풍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는 바다의 폭풍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한 무언가를 본 것 같았다.”레딩과 터너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연주의 회화는 자연의 신비함에 경외심을 품고, 실제 자연을 충실히 모방하려는 제작 태도를 말한다.

대표작가로는 윌리엄 터너(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1775-1851),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1776~1837),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1796~1875)
, 테오도르 루소(Théodore Rousseau, 1812~1867), 장 프랑수와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 등이 있다.

밀레, 농민의 화가

프랑스 자연주의 화가 밀레는 따뜻한 시선으로 노동자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의 그림은 자연의 풍경보다 사람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1814년 프랑스 노르망디 해안에 있는 그뤼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다. 그는 어려서부터 농장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배우며 성장한다.

1836년 셰르부르에서 스승의 추천으로 장학금을 받아 파리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에서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 1797~1856)에게 공부한다. 밀레의 초기 작품은 신화나 고전시대와 성경의 알레고리에서 따온 전통적인 주제를 묘사한다. 당시 밀레는 퐁텐블로 숲 변두리에 있는 바르비종 근처에서 그림을 그리며 화가들과 친해진다.

1848년 프랑스는 혁명에 휩싸이고 공화정이 선포된다. 이 시기 밀레는 그림의 영감을 얻기 위해 전원생활로 눈을 돌렸고, 같은 해 농촌 정경을 그린 <키질하는 사람>을 살롱전에 출품하여 주목받는다. 하지만 이런 소재는 혁명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비판 받는다.

1850년대가 되자 밀레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어 미국과 영국에서 작품 주문을 받았고 두 나라에서 전시 한다. 이 전시의 성공으로 들라크루아와 16~17세기 네덜란드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 등의 판화와 소묘를 수집한다. 또한 당시 새로운 매체였던 사진을 수집하기도 한다.

밀레는 1870년 파리코뮌의 혁명정책을 거부하고, 프랑스가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자 고향인 노르망디로 피한다. 1841년 밀레와 결혼한 첫 번째 아내는 3년 뒤 폐결핵으로 숨지고, 그는 사실혼 관계로 있던 카테린 르메르와 1875년 임종하기 직전에 결혼한다. 젊은 시절 가난한 화가였던 밀레의 그림을 친구 루소는 남의 이름을 빌려 두 점을 사게 되고, 후에 밀레는 그 사실을 알고 루소의 우정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1875년 61세를 일기로 밀레는 친구인 루소 옆에 묻힌다.

대표 작품으로는 <키질하는 사람>(1848),  <씨 뿌리는 사람>(1850), <추수하는 사람들의 휴식시간>(1851~53), <만종>(1857~59), <이삭줍기>(1857), <가을, 건초더미>(1868~77)등이 있다.

만종( L'Angélus), 종교적 경건함

밀레의 <만종>(1857~59)은 <이삭줍기>와 함께 대표작으로 꼽힌다. <만종>은 그림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대지에 부부가 서 있는 작품이다. 하루의 일과를 끝낸 부부가 저 멀리 뾰쪽한 첨탑에서 종소리가 울리자 일손을 잠시 멈추고 기도를 올리고 있다. 밀레의 만종의 원래 제목은 ‘감자수확에 대한 감사기도’였으나 후에 ‘삼종기도(Angelus)’로 바뀌었다고 한다. 삼종기도는 하루아침 점심 저녁 세 번 교회에서 종을 울려 시간을 알리고 기도 하는 관습을 말한다.
<만종>은 먼 지평선 황혼 빛을 받고 있는 부부가 기도하는 모습에서 종교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화가는 인물의 세밀한 묘사보다 화면전체에 흐르는 농촌의 풍경과 하루 일과를 마치는 농민의 경건한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멀리 첨탑에서 들려오는 종소리, 하늘을 나는 새, 저녁을 알리는 노을, 그 종소리를 듣고 부부는 기도하고 있다. 대지의 정적(靜的)인 수평구도와 사람의 수직구도와, 그것을 깨는 하늘을 나는 새의 동적(動的)인 모습이 한 화면에 펼쳐지고 있다.

밀레, <만종>, 캔버스에 유채, 55x66cm, 1857~1859년경,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

이는 정적이면서 동적인 시각적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는 시각(視覺)적이지만 멀리 보이는 첨탑을 통해 마치 종소리가 울리는 것과 같은 청각(聽覺)적 이미지가 화면에 흐르고 있다. 이렇듯 밀레는 농부들의 고단한 삶의 모습을 자신만의 회화적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묵묵히 일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자연주의 회화는 사실주의(realism)와 고흐 등의 인상주의(Impressionism)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20세기 초현실주의(Surrealism) 대표적인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1904~1989)도 밀레의 <만종>에 큰 영감을 받는다.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동양미학전공)

경희대교육대학원 서예문인화과정 주임교수

<참고하면 좋을자료>
김영숙, 노성두, 류승희,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아트북스, 2005
윌리엄 본, 신성림 역『화가로 보는 서양미술사』 북로드, 2011

김찬호  digitalfe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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