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이전에 민주주의부터 제대로 해야.

정말이지 참으로 역동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한지가 언젠데 벌써 당사자는 행방이 묘연하다. 시장직을 걸고 던진 승부수가 겨우 삼일천하? 낙동강 오리알이란 말은 이런 때 쓰이는 말인가 보다. 지난 재선 때 천당과 지옥을 오간 것을 생각하면 쓴 웃음이 나온다. 어쨌든 누구의 불행은 또 다른 누구에겐 행운, 그걸 두고 벌이는 각축전이 무협시대를 방불케 한다.

나쁜 선거? 나쁜 시민?

지난 선거를 두고 오세훈 시장을 반대하는 쪽에서는 나쁜 선거라 몰아붙였지만 실은 황당한 선거였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선 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으니, 그러려면 처음부터 나쁜 선거를 막았어야지? 도무지 이 나라가 민주주의 하려는 나라인지 안 하려는 나라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이번 선례는 앞으로도 두고두고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란 승복을 전제로 한다. 한데 지난 선거는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불복하겠다는 민주국가에선 아직 그 선례가 없는 참으로 희한한 선거였다. 내용은 무상급식의 단계적 실시냐, 전면적 실시냐를 두고 주민들에게 의향을 묻는 것이었는데도, 중간에 계속 조건을 달아 붙이는 바람에 결국 재신임을 묻는 선거가 되고 말았으니 어찌 황당하지 않겠는가. 시민들에겐 승복하라 해놓고 정작 당사자는 불복하겠다고 배수진을 쳐? 당연히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리 만무하다.

타협은 곧 패배라고 잘못배운 탓이리라. 해서 정치투쟁을 하는 건지, 행정을 하는 건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갔던 모양이다. 무상이든 유상이든 급식비 지원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주민투표까지 가야했나? 설사 무리한 결정이라 하더라도 의회에서 결정된 일이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 수많은 일 중에 하나일 뿐인 것을 두고 목숨 걸고 싸우다니! 가위바위보 한 번 졌다고 판을 엎어! 한심한 풍경을 두고 봐야 하는 국민이 한심할 뿐이다.

주민들이 의회를 과반수이상 야당으로, 시장은 여당으로 뽑아주었으면 서로 견제하고 타협하여 균형을 맞추라는 요구인데, 도무지 타협은 못하겠으니 주민들더러 양자택일해달라는 강요성 선거였으니 황당할 밖에. 원래 그 자리는 모든 일을 서로 타협해서 처리해나가라는 그런 자리이다. 독단으로 하라는 자리가 아니다. 그럴 거면 애초에 맡지 말았어야 했다. 능력이 없는 건지 자질이 안 되는 건지?

도둑놈 뽑기? 도둑놈 만들기?

아무려나 선거가 끝나자마자 싸움의 당사자인 곽노현 교육감이 제 똥 밟고 미끄러져 코를 박고 말았다. 도대체 교육감이란 자리가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 자리이길래 나오는 놈마다! 교육판이 아니라 돈 놓고 돈 먹는 야바위판이다. 그렇다면 다른 교육감도 '민나 도로보데쓰'? 아무렴 그럴 리야 없지! 끝까지 버텨서 결백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선거부정으로 밝혀지면 선거비용 35억을 토해내야 한다고 한다. 당연한 말씀. 헌데 오세훈 전시장은? 주민들 누구도 시장 그만두라 한 적 없다. 재신임을 물은 것도, 탄핵을 한 것도 아니다. 지병이 있어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헌데 제풀에 하기 싫다고 그만 두었다. 이 경우 선거비용은?

주민들이 그만두라고 하지 않는 한, 유고나 병이 아닌 한 다른 어떤 이유로도 임기를 채우지 않고 사퇴하는 피선 단체장들은 반드시 법으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다른 정치적 욕심으로 중도에 그만 두는 것도 법으로 금지시켜야 한다. 게다가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지자체 의원이나 단체장 선거에 정당 개입이 없어야 한다.

정당은 국회의원이면 충분한 일, 지자체는 정당에 관계없이 스스로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재벌들 문어발 확장을 질타하면서 국회의원들이 지자체 의원 단체장 추천권을 쥐는 것은 괜찮은 일인가? 저들이 민심 쪼개기의 주범이 아니던가? 입만 열면 박정희의 지역차별을 나무라면서 자신들은 그보다 더한 짓을 하고 있지 않은가? 국회가 죽어야 대한민국이 사는 길임을 국민들은 다 아는데, 어찌 저들만 모른단 말인가?

아무튼 투표하고 나서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다. 어차피 덜 미운 후보 찍기였으니 당연한 일. 도장 찍은 손가락에 장을 지지고 싶은 적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많은 국민들이 이젠 장을 지질 손가락도 몇 안남은 것 같다. 이젠 정말 투표하기 싫다. 역겹다. 자격시험을 보든지 추첨을 하든지. 그도 저도 안 되면 차라리 수입을 하든지. 나쁜 선거란 없다. 나쁜 시민도 없다. 나쁜 정치인들이 있을 뿐이다. 특히 변호사 출신 정치인들이 그렇다.

담합? 단일화? 야합!

한데 또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다. 라면값, 우유값, 기름값 담합하면 처벌하면서 왜 후보들 담합하는 것은 내버려두는지? 후보단일화는 담합이 아닌가? 누구 시간 있으면 후보단일화가 위법인지 아닌지 헌법소원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지, 담합을 했으면 끝까지 가야지 왜 중간에 깨나? 그건 배신 아닌가?

서울시장 빈자리를 두고 강호의 영웅협객은 물론 녹림의 은둔고수들까지 모조리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야합하든 담합하든, 도둑놈 뽑기든 도둑놈 만들기든 어쨌든 이번 쇼는 역대 최고의 흥행 예상. 제발이지 좀 멋있게 싸워주길 바란다.

그래야 하나 남은 손가락 장을 지진다 해도 조금은 덜 아까울 것이니 말이다. 선거비용 덜 쓰고 당선되어 제 주머니에 넣는 자가 진짜 고수다. 그걸 국고에 기부하면 다음 대통령은 따논 당상이다. 쇼라도 그렇게 할 줄 아는 인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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