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사랑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지금은 육지 돼 버려 아쉬움 남아

해남 황산 연자마을은 이 마을의 자랑인 녹청자의 아름다운 비색만큼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 ‘연기’의 애절한 사랑이 연기도에서 흘러나온다.

▲ 지금은 육지가 돼 버린 섬, '연기도'의 모습
연기도는 황산면소재지에서 연자마을로 가는 길을 가다가 마을입구에서 둑 방길 따라 왼쪽으로 500여m 지점에 이르면 초가집 마당만큼이나 작은 섬이 자리하는데, 이 섬이 바로 황산의 비경 중에 비경이었다고 입을 모으는 ‘연기도’이다.

예전에는 연기도로 가는 길은 밀물과 썰물 때 하루 두 번 바닷길을 열어 마치 푸른 수면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고 하나 지금은 간척공사로 인해 그를 증명할 방법은 없지만 지금도 연기도 위에는 운치 있는 10여 그루의 소나무가 푸른 파도와 어우러져 그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금은 육지가 돼 버렸지만, 섬 연기도에는 최근에 까지 해마다 찾아오는 학의 무리로 장관을 이루었다고.

연기도가 로맨스 섬으로 불려지는 까닭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태조에 의해 세워지고 고려의 충신들이 각지에 흩어져 몸을 숨기던 시기인 조선 초, 역시 고려의 충신이었던 어떤 선비와 함께 온 ‘연기’라는 여인의 이름에서 됐다고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고려의 임금을 잃은 연기의 남자 이 어떤 선비도 조선에 합류하지 못하고 몸을 숨기고자 해남 황산 연호마을로 들어와 사랑하는 여인 연기와 하루하루를 땅을 일구고, 도기를 만들면서 망국의 슬픔을 달래고 있었다.

그들은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이 섬 연기도에 매료되어 해가 기우는 저녁이면 이 섬을 찾아 사랑을 속삭이며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맹세하고 맹세한 장소였다.

그들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서울서 찾아온 사령으로 인해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중국과 친교를 맺기 위해 이 선비가 사신으로 천거되어 조정의 부름이 전해오자 선비는 고심 끝에 연기에게 “내 곧 돌아오리라”며 약속하며 떠났고, 연기는 홀로 남겨진 채 님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허나,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떠난 님의 소식이 없자 연기의 몸은 점점 야위어 병들어 갔다.

한편, 선비는 조선의 사신이 되어 중국과 친교를 위해 떠나는 자신이 못내 한스러웠다. 이는 고려임금에 대한 불충 이었던 것이다. 여러 날을 고민했다. 기다리는 애인 연기를 생각하면 애가 끊지만 충성을 버릴 수 없어 괴로워하다, 결국 선비는 사랑하는 여인 연기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차가운 서해바다에 몸을 날렸다.

뒤늦게 이 소식이 전해지고 그녀는 님이 잠든 서해바다를 향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마침내 연기도에 올라 바위 끝에서 굶기를 여러 날,  결국 그녀는 한그루의 소나무로 변했다는 이야기다.

이 애틋한 연기도에는 이 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찾아 사랑을 맹세해야한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간척공사 이전 연기도는 실제 지역의 한량들과 밀애를 즐기려는 연인들이 자주 찾은 명소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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