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황사 괘불...정신적 성숙과 존재감 깨어나게 하며, 평화롭고 행복한 힘 얻게 해

1692년 조선 숙종 18년, 해남 미황사의 창건과 관련한 기록을 비에 새겨 이른바 ‘미황사 사적비’를 세웠는데 이 기록에 따르면 미황사의 창건은, 신라 경덕왕(749년)때로 되어있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 개원13년 을축 신라 경덕왕(749년) 8년 8월12일에, 홀연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산 아래 사자포구에 와서 정박하였다. 하늘에서 들리는 음악인 듯 범패 소리가 배 안에서 계속 들려오기에 어부들이 가까이 가서 살펴보려고 하자 배는 문득 멀어져 버렸다.

의조화상께서 이 소문을 들으시고 장운과 장선 두 사미 및 촌주인 우감, 그리고 향도 백 사람을 데리고 그곳을 찾아 가셨다.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기도를 하였더니 돌배가 해안으로 다가왔다.

금옷을 입은 사람 하나가 노를 잡고 일어나 수놓은 돛대를 펼치기에 다가가 살펴보니, 그 안의 자물쇠 달린 금함에는 옥축 두루마리에 금으로 쓴 화엄경 80박과 법화경 7박, 비로자나 문수 보현 40성중과 53선지식 및 16나한 등의 화상이 있었고, 또 금가락지와 검은 돌 각각 한 매씩이 들어 있었다.

향도 등 여러 사람이 경전을 가지고 해안으로 내려와서 바야흐로 봉안할 곳을 의논하고 있는데 검은 돌이 부숴지면서 청흑색의 암소 한 마리가 나오더니 갑자기 훌쩍 커졌다.

그날밤 금옷을 입은 사람이 화상의 꿈에 나타나 말하였다. “나는 우전국의 왕인데 여러 나라를 두루 돌면서 경전과 화상 안치할 곳을 구하던 중 달마산 꼭대기에 일만 분의 부처님 상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곳을 찾아 왔노라. 그대가 경전을 소에 싣고 가다보면 소가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곳이 있을 터이니 그곳이 곧 경전을 안치할 만한 장소라.”

이에 화상께서 소에 경전을 싣고 가자니 소가 처음 한 곳 땅에서는 누웠다 일어나고, 산골짝에 이르러 다시 누워서는 “아름답구나” 큰소리로 부르짖고 숨을 거두었다.

처음 누웠던 땅에 절을 세웠으니 지금의 통교사이며 나중 누웠던 골짜기에도 또 하나의 사찰을 경영하여 경전과 화상을 안치하고 미황사라 현판을 걸었다.

미는 소의 울음소리에서 취한 글자요, 황은 사람의 색에서 취한 것이니 기이하고 이상한 일이라...‘

열일곱번째 괘불재 그리고 미황사 음악회가 2016년(불기 2560년) 10월 15일 토요일 오후 1시에 땅끝 아름다운 절 해남 ‘미황사’에서 봉양됐다.

미황사 괘불재는 큰 의미가 담겨 있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하여 법당앞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 그림을 말한다.

미황사의 괘불탱화는 높이1170cm 폭486cm의 대형불화로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이괘불은 조선 영조3년(1727년)에 탁행·설심·회심·임한·민휘·취상·명헌 등이 그렸는데 본존불을 크게 강조한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녹색과 적색의 밝은 선염과 녹두색 분홍 황토색이 사용되어 은은하면서도 환상적인 세계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괘불재를 통해 1년에 한번 공개하는 미황사의 이 괘불은 전통방식으로 불단을 차리고, 1,000여명의 예경과 100여명의 만물공양, 전통식 상차림과 불교음악, 깨달음의 설법을 통해 현대인들의 정신적 성숙과 존재감을 깨어나게 하며, 평화롭고 행복한 힘을 얻게 한다.

땅끝마을 사람들에게는 미황사 괘불탱화(보물1342호)는 마당에 모시는 해에는 풍년이 들고, 한번 참배하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세 번 참배하면 극락간다는 이야기가 구전하고 있다.

괘불재의 시작은 마을청년들이 입에 천막음을 하고 괘불을 어깨에 메고 나오게 되는 괘불이운, 이어 예불, 고불문, 만물공양, 통천, 축원, 법어, 음성공양, 두레상 한솥밥, 괘불봉안의 순으로 진행됐으며 법당에 모셔졌던 괘불이 도량 마당에 그 위용을 드러냈다.

고불의식에 들어가서는 “저희들이 오늘 여기 모인 뜻은 무명을 돌려 지혜광명, 본원생명으로 살고자 함이며 탐욕과 미움을 돌려 차별 없는 평등과 평화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함이며 분별과 경쟁의 마음을 돌려 원융과 화엄의 청정국토를 성취하고자 함이며 일체고난을 소멸하고 안락과 행복의 열반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라고 고불문을 바쳤다.

이어 한 해 동안 땀 흘려 거둔 곡식과 결실물들을 부처님께 바치는 만물공양에는 한해의 잘못을 뉘우치고 또 한해의 소원을 빌며 꽃과 쌀, 고구마, 참깨, 책, 그림... 등 온갖 것이 부처님 전에 놓여졌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계속하며 고요하고 행복한 마음을 담은 기도를 하는 통천의식이 지나고, 이번 괘불재에 법사로 나선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장 지홍 스님의 법어가 온 천지에 중생들에게 가슴 깊은 울림으로 퍼졌다.

그리고, 미황사 큰 부처님을 다시 대웅전에 모시는 괘불봉안으로 열일곱번째 괘불재를 마치고 저녁시간에는 '범능스님의 삼경에 피는꽃'을 주제로 미황사 음악회가 열렸는데, 입적 3주기를 맞는 민중가수 출신의 '노래하는 수행자' 범능스님을 추모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미황사 음악회는 우리나라 산사음악회의 시초이다. 2000년 가을부터 한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해남지역의 음악활동가와 남도의 들노래들을 발굴해 무대에 올려 놓았다. 땅끝마을 사람들의 문화로 새로운 축제의 모범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축제전문가들은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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