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이 있는 사람, 창조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제 글에서 창의력이 있는 사람들의 두 가지 특징을 적었다.

첫째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사람들’이 창의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둘째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유지하여 온 사람들’이 창의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셋째로 창의력이 있는 사람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 질문이 많은 사람’이다.

창의력은 호기심에서 시작되고, 호기심에서 길러진다. 호기심이 많기에 질문이 많다. 질문이 많기에 발전이 있다. 우리나라 교육에는 문제가 있다. 아이들을 낳을 때는 우수한 아이로 낳아 기를 때에는 둔재로 기른다. 우수한 아이들을 우수한 어른으로 기르려면 아이들의 호기심을 길러 주어야 하고, 질문이 많은 아이들로 길러야 한다.

시카고 지역에서 발간된 한 자료에 의하면 유대인들의 평균 지능, IQ가 97이고 한국인의 평균지능이 105로 나왔다. 그런데 유대인들 중에서는 노벨상 수상자가 172명이고 한국인은 아직 한 명 밖에 없다. 그 한 명도 전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노벨평화상이지 학술상은 아직 받지 못하였다. 왜 그런 차이가 날까?

우리는 모든 책임을 학교와 교사에게 떠넘기려드는 풍토가 있다. 물론 학교의 교사들에게 큰 책임이 있는 것이야 두말할 나위 없는 바이겠지만, 문제는 학교 이전에 부모들의 책임은 지나쳐 버린다는 것이다. 창의력 있는 인재의 육성은 학교 가기 전 아버지 어머니 품에서부터 시작된다. 문제아는 문제 부모에게서 비롯된다는 말도 있거니와, 창의력 있는 아이 역시 창의력 있는 부모에게서 비롯된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 어머니들과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 차이가 있다. 한국인 어머니들은 아이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녀오면 "오늘 선생님께 무얼 배웠니?"하고 묻곤 한다. 그러나 유대인 어머니들은 그렇게 묻지 않는다. “오늘 선생님께 무엇을 물었니?”하고 묻는다. “무엇을 배웠니?”라는 질문과 “무엇을 물었니?”하는 질문만으로,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무엇을 물었니?”하는 질문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호기심이 자라고 창조적인 능력이 길러진다. 그리고 스스로 공부하려는 자율학습의 자세가 몸에 베인다. 그러나 “무엇을 물었니?”라는 질문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수동적이 되고 호기심이 자라지 못한다. 호기심이 자라지 못하니 창조적인 능력, 창의력이 자라지 못한다.

지금 정부는 특히나 창조국가, 창조경영을 강조하는 정부이다. 그러나 창조국가든, 창조경영이든 기초는 창조적인 사람, 창의력이 넘치는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창조인간을 길러놓지를 못하고 아무리 창조국가, 창조경제를 말하여도 결국은 공염불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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