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해 10월 6일 순천 에코그라드 호텔에서 열린 주간 미디어워치 호남지역 독자대회에서 ‘호남정치, 이대로 죽는가?’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민주당이 호남을 ‘호구(虎口)’로 여기고 있다며 호남인들의 정치의식 변화를 촉구한 바 있다.

필자가 가장 중요하게 짚었던 문제는 노무현 정권 이후부터 민주당에서 호남 대권 후보가 완전히 실종되었다는 점이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대선 주자 빅3는 부산의 문재인, 경남의 김두관, 경기의 손학규였다. 장외에서도 역시 부산의 안철수, 대선후보급인 서울시장 박원순마저 경남이다. 현 상황에서 2017년 대선을 예상해봐도, 역시 부산 경남의 안철수, 문재인, 박원순의 판이 될 수밖에 없다.

호남의 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몰표는 이해 가능

민주화 이후의 1987·1992·1997년 대선에서의 호남의 김대중 후보에 대한 몰표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의 호남 대통령을 만들어보겠다는 호남인들의 충정을 누가 욕할 수 있겠는가. 지난 대선에서 대구·경북 주민들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열정적인 지지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의 경우도 아칸소주(州)의 빌 클린턴, 텍사스주의 조지 부시,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버락 오마바 등, 대다수 정치인들이 자신의 활동 지역을 기반으로 정치적 도전을 시작한다. “내 고장 사람을 밀어보겠다”는 감정은 동서고금의 공통적 특성인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의 부산 출신 노무현 후보에 대한 호남의 몰표도 정치논리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호남 포위론인 3당 합당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쌓아갔다. 그뒤 무려 세 번에 걸친 부산 선거에 대한 도전은 호남인들 입장에선 충분히 고맙게 생각할 만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벌어졌다. 호남인들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기간 내내 부산·경남 공략에 집착했다. 호남색을 지우기 위해 민주당을 분당, 열린우리당을 창당했고 2006년 지자체 선거에서는 이재용 환경부 장관을 대구시장으로, 오거돈 해양수산부장관을 부산시장으로 차출하기도 했다.

2007년 대선에서 전북 출신 정동영 후보가 600만표 차로 참패하면서, 민주당 내에서는 호남 후보는 아예 승산이 없다는 분위기로 굳어졌다. 2012년 대선에서 3선의 박준영 전남지사가, 초선의 김두관 경남지사에 턱없이 밀려나기도 했다.

2002년 대선 때부터 시작된 영남후보 필승론의 근거는 호남의 몰표이다. 야당이 영남후보를 내세우면, 일부 영남표에다 90% 이상의 호남 몰표를 얻을 수 있으므로 반드시 승리한다는 정치공학이다.

민주당의 영남후보 필승론은 필연적으로 좌클릭을 야기한다

이러한 정치공학에는 필연적으로 이념적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부산 출신이 호남표를 결집시키려면 이념적으로 좌클릭을 하게 된다.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보수우파 정당의 후보와 맞서서 호남의 표를 단속하려면 이념적 대립각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중도보수도 포함하겠다는 안철수 의원도 막상 부산 출신으로 호남기반 정당의 대선후보가 되면 좌클릭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반면 민주당에서 호남 대권주자가 나온다면 그 반대의 이유 때문에 우클릭을 하게 된다. 김대중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조순, 이기택 등 이른바 제3 후보들과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이기는 데에는 김종필, 박태준의 자민련과의 연합이 필수였다. 영남, 충청, 강원 등 호남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의 표를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현재 민주당은 1년 내내 데모와 반대만 하는 운동권 신입생 정당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안철수의 새정치연합과의 신당 창당에 국민들이 최소한의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산 출신 안철수 의원이 주도해서는 노무현, 문재인이 넘지 못했던 한계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호남 기반 정당의 영남후보론은 결국에는 “호남에서 표만 몰아주면 영남의 표를 갖고와서 정권을 만들어 줄께”라는 정치공학적 계산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을 부산정권이라 규정한 문재인에 대한 호남 몰표는 기현상

그 정치공학은 노무현 정권을 부산정권이라고 규정해온 부산출신 문재인 후보에 호남에서 90%의 몰표가 나오는 기현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정치공학이 반복되면서, 호남에서의 대권주자는 현재로선 찾아볼 수도 없는 실정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개혁해야할 정치적 사안은 부산 경남 출신 대권후보만 찾아다니는 민주당의 왜곡된 정치공학이다. 심지어 충청남도에선 안희정 충남지사가 충청대권론을 기반으로 정치적 성장을 하고 있지만, 호남에선 대권론 자체가 없다. 호남에서 포스트 DJ 시대를 열고자 했던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 등은 현재 박근혜 정부 쪽에 와있다. 이들 3인은 민주당 내에서 가장 우파 성향이 강한 인물들이란 공통점도 있다.

민주당은 제1 야당의 역할조차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안보와 경제성장에 대해서 좌클릭해왔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의외로 호남유권자들의 선택이 중요하다. 일단 호남인들도 호남의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중지를 모아보자. 그 뜻이 모이는 순간에 민주당은 영남, 충청, 강원 등의 표를 공략하기 위해서라도 자연스럽게 우클릭, 정상적인 정당의 모습을 찾아갈 것이다.

“호남인들도 호남 대통령을 만들어보자”라는 상식적인 구호 하나는, 온갖 공허한 새정치 놀음 보다 더 강력하고 생산적인 새정치 흐름을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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