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학교폭력과 관련한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가해학생을 만나보니 가출과 무단결석으로 정상적인 학업을 포기하고 탈선의 길을 들어선 채 이미 가정과 학교와 사회를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는 습관 때문에 그 학생을 위한 조언과 충고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나름대로 지속적인 선도를 하기 위해 차후 계획을 생각하고 있지만 그 청소년의 굳게 닫혀진 마음은 쉽게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왜 그렇게까지 되었을까?

잘못되기 시작할 무렵에 학창시절의 방향성을 잘 바로잡아 주었더라면 지금보다는 나은 청소년이 되었을텐데 신체적으로 왕성하게 성장하여 넘치는 에너지를 잘못된 방향으로 분출하는 모습을 대할 때마다 학교전담경찰관으로서 더욱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의 에너지를 제대로 분출하게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하다가, 문득 문제 학생의 얼굴 위로 한국전쟁의 학도병들의 오래된 사진이 겹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해마다 6월이 되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을 다시금 추모하게 된다. 별로 멀지 않은 과거인 63년전 6월 25일에 발생한 한국전쟁은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이라는 상처로 남았으며 신생 독립국가로서 나라를 지키려 분투했던 수많은 호국영령이 우리 국토 곳곳에서 산화해 간 치열한 역사의 한 장이었음도 부인하지 못한다.

나라의 장래를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던 풍전등화의 위기에 나선 수많은 호국영령 중에서도 학도병들의 존재는 우리들에게 또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놓고 군번도 없이 변변한 무기도 없이 가족을 지킨다는 목적을 위해서 전장에 나선 학도병들은 정규군으로 조직된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기가 힘들어 피해가 컸으며 전사를 하더라도 전공은 물론이고 인적사항 조차 확인되지 않아 무명 용사가 되어 그 가족에게 변변한 유해도 남기지 못하는 아픔을 남기고 말았다.

그런데 비록 무명 용사로 남을지언정 그 학도병들의 청소년기 에너지는 바로 나라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방향으로 사용되어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을 감안해 보았을 때 가장 가치있는 분출 방법으로 볼 수 있으며 요즈음의 탈선 청소년과 비교해 보면 같은 청소년기의 에너지인데 한편은 학교와 사회에서 지탄을 받는 그릇된 분출이 되었고 다른 한편은 대대손손 기억되어야 할 고귀한 희생으로 인정되어 그 차이가 너무도 커서 그만큼 아쉬움도 클 수 밖에 없다.

나라의 백년대계라는 청소년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도 그렇고 앞으로 몇 십년 후에는 인구 감소까지 우려되는 실정을 감안해 보았을 때도 우리 청소년은 한명이라도 포기할 수 없기에 분연히 나라를 위해 일어선 학도병의 정신을 온전히 이어받을 방법과 함께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의 에너지를 올바른 방향으로 분출시킬 수 있을까를 더욱 고민해야 할 6월이 아닌가 싶다.

(순천경찰서 주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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