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스워도 너무 우스운, 초등학생들보다 못한 대통령 말씀 받아쓰기 회의 장면

김대중 대통령 시절, 성균관대학 6백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전 세계 4백년 이상 된 유수한 대학의 총장들이 방한했었다. 행사 후 청와대 초청으로 한 시간 동안 대통령과 차를 마시는 시간을 가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만 김대중 대통령이 혼자서 50여 분간 연설(?)을 하는 바람에 모두들 꼼짝없이 앉아 차만 마시다 나왔다고 한다.

당시를 회고하면 부끄럽고 민망해서 지금도 낯이 화끈거린다는 정범진 전 총장님, 간혹 우리나라 지도자들의 경청할 줄 모르는 못된 버릇을 안타까워하신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마주한 더없이 좋은 기회에 그분들의 얘기를 하나라도 더 들으려 하지 않고, 도리어 그 앞에서 제 자랑인지 훈계인지를 혼자서 떠벌렸으니 그런 넌센스도 다시없었다고 한다.

아무려나 문민정부 이래 이 나라 최고지도자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최고로 똑똑해서 대통령이 된 줄 착각하고 있다. 해서 도통 아랫사람은 물론 다른 어떤 사람의 말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지시하면 아랫사람은 무조건 실천해야 한단다. 그게 잘되면 소통이 잘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소통이 뭔지도 모르고 있음이다.

▲ 국무회의? 회의를 하는 건지, 받아쓰기 시험을 치르는 건지, 기자회견을 하는 건지 짐작이 안 간다. 대통령 모두발언이 그토록 중요한 내용인가? © 연합뉴스

우방국, 적대국 지도자들의 조소가 절로 연상되는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장면

우리가 북한의 사진 한 장을 두고 온갖 의미를 분석하듯 북한에서도 매일같이 남한 신문 사진을 보고 나름대로 분석할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청와대 사진은 한마디로 웃긴다 하겠다. 크나큰 책상에 널찍하게 벌려 앉아서, 마이크에다 노트북까지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남들이 보면 무슨 국제회의쯤으로 착각하겠다. ‘수석’이 붙었다 한들 그래봤자 비서들의 회의. 허구한 날 한 지붕 아래에서 얼굴 맞대고 지내는 한 식구들끼리 새삼 무슨 거창한 일을 의결이라도 하는 것처럼 갖은 폼을 다 잡았다.

헌데 회의하는 꼴은 황당하다 못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감히 고개도 못 들고 그저 대통령의 지시 사항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다. 대통령을 모시려면 귀만 있어야지 입이 있으면 안 된다는 듯 모조리 공업용 미싱으로 꿰매 놓은 모양이다. 비서는 곧 하인, 하인은 영혼이 없어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 교장선생님 훈시도 아니고, 대통령 혼자 내내 얘기하자는 건지 참으로 난감하다. ‘회의(會議)’의 뜻도 모르고 앉아 있는 게다.

공허하다 못해 괴기스럽기까지 한 수석비서관회의 받아쓰기 풍경. ‘대국민 언론보도용 사진’ 촬영 위한 포토세션에 대한 개념조차 없다. 노트북과 마이크가 소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조선시대 어전회의도 차마 이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선진문명국 기본 통용 회의 자세조차 갖추지 못한 국가최고기관 대통령, 청와대, 그리고 나라 전체

가장 먼저 대통령의 회의 자세부터 정격이 못 된다. 등을 곧게 펴지 못하고 항상 구부정하다. 게다가 자라목을 하다 보니 상체가 절로 앞으로 쏠린다. 해서 책상에 두 손을 가볍게 얹지 못하고 두 팔꿈치까지 걸쳐 책상에 상체를 기대는 모양새가 된다. 다음, 화자(話者)를 볼 때 상체 몸통은 그대로 두고서 고개만 돌려 바라본다. 그리고 수시로 두 손을 마주 잡고 모으는 포즈를 취한다. 이는 “졌으니 제발 좀 봐주세요!” 라는 자세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도중에 두 손을 책상에서 내려놓는 버릇이 있다. 이는 항복 혹은 대화 포기를 선언하는 자세다.

회의의 기본 자세조차 갖추지 못한 대통령, 당연히 그 자리에 모인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대통령을 따라 하거나, 제각각 중구난방이다. 어찌 청와대뿐이랴! 이 나라 모든 기관에서의 회의 자세가 이와 대동소이하다. 그러니 아무도 그게 이상하지 않은 게다. 제발이지 적어도 ‘대국민 언론보도용 사진’ 촬영하는 포토세션에서나마 정격 자세를 좀 잡았으면 한다.

미국 백악관이 옛날 건물이라 어쩔 수 없이 좁은 방에서 어깨 다닥다닥 붙여 회의하는 것 아니다. 일부러 그런 좁은 방에 몰아넣고 회의한다. 마찬가지로 영국 등 대다수 선진국 대통령궁이나 수상관저에서의 회의는 좁은 방에서 마이크나 노트북 없이 어깨 붙이고 이마 맞대고 서로 눈을 바라보며 한다. 거추장스런 격식이나 도구 따윈 없다. 계급장 떼고 대화와 소통에 모든 것을 집중한다. 대통령일지라도 그 자리에선 동등한 일개의 회의자일 뿐이다.

받아쓰기하러 모이는 것이 어찌 회의던가? 그럴 바에야 누구 한 사람이 받아 적어 돌려보면 될 것을. 카톡이나 메일도 있는데 뭣하러 다 불러모으나? 요즘은 초등학교 조회 시간 교장선생님 훈시도 화상으로 하고 있다. 그 자리에서 받아 쓰지 않으면 기억도 못할 아둔한 두뇌를 가진 인사들이 국가최고기관에 모여 나랏일을 논의한다?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허구한 날 이런 회의를 주재하면서 뭔가 공허한 느낌을 받지 못하는 박대통령의 무딘 감각도 어이없다.

▲ 4월 9일, ‘우리말 받아쓰기’ 시험 보는 듯한 청와대 국무회의. © 연합뉴스
 
▲ 5월 14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언제나 같은 그림의 국무회의. 박대통령 옷색과 국무위원들 넥타이색만 바뀌었다. © 신성대 논설위원

톱다운도 하의상달도 아닌 중구난방 업무처리

우리는 연초가 되면 대통령이 각 부처를 돌며 장관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풍경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는 한국에서만 있는 풍경이다. 이런 식의 형식적인 업무부처 보고가 모든 기관에서 내리닫이로 진행되고 있다. 그걸 준비한답시고 각 부처는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1조 달러 무역대국에서 대통령 혼자만 시대착오적인 구습에 주저앉아 물귀신처럼 책임장관들의 일을 훼방해대는 전근대적인 전시행정 표본이다.

실은 임명된 장관이 그냥 하던 일 하고 있으면 그만이지 그 일상의 업무조차 일일이 대통령에게 보고할 필요는 없다. 다만 국가적인 중요한 안건이 생겼을 적에만 그때그때 보고하면 그만인 게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각 부처의 일상 업무까지 보고받고 간섭하는 것은 ‘엄연히 같은 헌법기관인’ 책임 장관을 무시하는 처사다. 대통령은 그런 일상 업무가 아닌 따로 지시할 사항만 그때그때 지시하면 된다. 그것도 구두가 아닌 문서(Presidential Memorandum)로. 그래야 나중에 책임 소재가 분명해진다. 따라서 서양에서는 기본적으로 톱다운 방식으로 일을 한다.

한국 역시 톱다운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 반대로 하의상달(下意上達)이다. 이는 일본인들이 개발한 것으로 아래에서 올라온 품의나 내부결재 문건을 위로 올려 결재하는 방식이다. 일견 매우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보인다. 덕분에 장(長)은 전문적인 지식 없이 공부를 안하고도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다가 일이 잘못되면 아랫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킬 수 있다. 해서 대통령, 장관, 기관장, 재벌 회장 할 것 없이 사건이 터지면 모조리 빠져나간다. 물론 일이 잘되면 공(功)은 오롯이 자기 것이다.

▲ 장차관국정토론회? 토론하는 풍경을 연출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대통령 훈시를 받아 적는 척? © 연합뉴스

▲ 재벌 오너들도 예외없는 받아쓰기 시험. 누구도 화자(대통령)를 주목하지 않는다. © 연합뉴스
 

반드시 문서에 의한 톱다운 방식이어야

미국 역시 능력이 없어도 장(長)을 해먹을 수 있는 구조다. 미국도 대선 때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한국처럼 논공행상이 돌아간다. 해서 비전문가들이 장관이나 대사 등등 기관장을 맡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이 경우 그들은 얼굴마담으로 만족하고 실무에는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대신 고품격 매너로 그 얼굴마담 역을 철저히 해낸다.

그외 대부분의 실무에 능한 장(長)들은 반드시 직접 디렉티브(정책안, 업무지침)를 짠다. 그러기 위해 아랫사람은 물론 각계의 전문가들을 만나 열심히 의견을 청취한다. 당연히 아랫사람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많이 일한다. 여기서도 수혜자부담원칙이 철저히 적용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의 장(長)들은 모든 걸 아랫사람들에게 시킨다. 명분은 하의상달이다. 그 핑계로 실무자나 정규행정관을 자기 비서 부리듯 한다. 대신 비서에게는 하녀처럼 자신의 개인적 가정사적인 일을 시킨다. 그러고는 자신은 골프, 술, 여자, 접대, 청탁, 인맥쌓기에 열중한다. 해서 한국에서는 직급이 올라갈수록 누리는 건 많아지고 일은 적게 하게 된다.

이런 구태가 사진 한 장으로 다 드러나고 있음을 한국인들만 모르고 있다. 예습도 없이 받아쓰기 하는 수석 및 각료들, 그들이 자기 부처로 돌아가 똑같이 받아쓰기시킬 것은 빤한 이치겠다. 이 고질병을 고치지 못하면 한국은 영원히 선진국이 못 된다.

▲ 5월1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일제히 받아 적고 있는 장관들. 국민들 억장 무너지는 풍경. © 연합뉴스
 
▲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가 아니 새랴? 모조리 두 팔을 내리고 김용 세계은행 총재 일행을 맞는 박대통령과 수행원들. 우리 대통령 말씀만 받아 적는다? 도무지 기본도 안 된 국가대표 선수들. 웃음이 절로 나온다. © 연합뉴스

노트북도 마이크도 없는 백악관내 각종 회의

미국 백악관 회의를 보면 우리 나라 반상회보다 격식 없이 치러진다. 그냥 작은 방에 모여 각자 소파나 의자에 편한 자세로 앉아 서로 쳐다보며 편하게 회의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가 대통령인지 모를 정도다. 한국인들이 보기엔 그냥 한담이나 나누는 줄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비서관 회의뿐만 아니다. 중차대한 세계사적 사건을 의논하는 모임이든, 국무회의든 그다지 다르지 않는 풍경이다. 설마 백악관이 모든 일을 그런 식으로 가볍게 즉흥적으로 처리하랴?

아니다. 실은 그 반대다. 이미 그 안건에 대해 각자가 사전에 며칠 밤 새워 검토하고 피드백한 후, 수차 개별 협의, 중간 조율을 거친 내용을 전체 종합 토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모여 머리를 맞대고 눈으로 소통하며 방향 설정하는 모임이다. 한국처럼 예습도 없이 회의에 나와 안건을 상정(실은 공표)하고 받아쓰기 인증샷 찍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란 말이다.

기실 받아쓰기 하는 것도 그렇게 머리 처박고 하는 것이 아니다. 바른 자세로 고개를 바로 세우고 상대(화자)에게로 상체를 틀어 상대의 눈을 주시하면서 종이를 보지 않고 한 손으로 요점을 메모하는 것이 정격이다. 두어 번만 연습하면 메모지를 안 보고도 얼마든지 받아쓸 수 있다. 누군가가 말을 하면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기본. 그걸 ‘주목(注目)’이라 한다.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일이다.

▲ 영국의 국무회의. 다우닝가 수상관저 캐비닛 룸3. © 영국 수상관저

소통의 의미도 모르는 한국 리더들의 한계

서양이나 중국은 토론 문화가 발달해서 사람 행세하려면 공부 안하곤 못 배긴다. 해서 개인도 끊임없이 진보한다. 이에 비해 한국인들은 대부분 고등학교나 대학 졸업 시기에 형성된 그릇 크기에서 더 이상 못 큰다. 공부를 안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출세욕의 화신인 자들은 고시 패스한 후 단 한 권의 책도 심도 있게 안 읽으면서 폭탄주나 마시며 인맥쌓기에 열중한다. 그게 스펙이다. 그릇이나 품격은 예전 그대로인체 출세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다.

토론 문화가 없다 보니 이웃 중국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인들의 지식은 넓지도 깊지도 못하고 경박한 잡담 수준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물론 정치인, 장관, 학자, 재벌 오너 등등 대부분의 지도자들 품격도 한국인 평균에서 크게 나을 것이 없다. 오히려 책임감과 도덕성은 떨어져 망신 안 당하고 청문회 통과할 만한 인물 찾기가 힘들다. 청문회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쩔쩔매는 여성장관 후보를 두고 오히려 순진해서 그렇다고 두둔한다. 아무렴 그런 것들조차 우리식이라고 우긴다면 할 말이 없지만.

▲ 상대방에게서 존중을 받아내야 할 결정적인 대목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눈을 피한 상태로 설파해대는 박대통령. 자신의 닫힌 세계관 속에서나 통할 자기중심적 주장을 일방적으로 우겨대듯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가족적인 분위기의 미 백악관 보좌관회의 모습. © 백악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수첩만 바라보는 수첩장관들

새 정부에 들어서서 청와대에선 이전에 보지 못한, 글로벌 정격 매너와는 거리가 먼 이런저런 풍경들이 새로운 관행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 중 받아쓰기는 아예 불문율처럼 굳어져 버렸다. 그래야 엄중하고 공손하며 품위 있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마치 대통령의 금과옥조를 한자라도 빠트렸다간 불경죄에 걸리기라도 하는 양, <박근혜 어록>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 같다. 북한의 김정일 김정은도 이 같은 사진 남긴 적 없다. 설마 이런 게 소통이고 창조적 혁신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대통령의 눈도 바로 못 쳐다보면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인가? 자동 마네킹처럼 받아쓰기밖에 할 줄 모르는 각료, 비서관들 데리고 나라 살림 어찌 꾸려나갈지 걱정이다. 내용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폼이라도 제대로 잡아 글로벌 망신만이라도 면했으면 한다. 도무지 회의의 ABC도 모르는 한심한 지도자들, 어디 가서 밤새워 과외라도 좀 받고 나왔으면! 벽돌 아무리 간다고 거울이 되지 않듯 만년 받아쓰기 한들 국가 기강 바로서지 않는다. 품격이 곧 기강이다. 회의의 주재자 대통령이 바로 서야 국격이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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