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질 수밖에 없는 게임에 빠져드는 민주당

▲ 신성대, 경기데일리 논설위원
지난 대선에서 도저히 질 수 없는 게임에서 졌다며 땅을 치던 민주당이 대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제대로 된 패인분석을 내놓고 있다. 안철수는 정치적 아웃사이더일 뿐이었다거나, 문재인 후보의 사생관(死生觀)이 투철하지 못했다는 자평이다. 그간 나온 것 중 가장 정확한 분석이라 하겠다.

안 후보는 진즉에 자신이 가진 주식 절반으로 재단을 만들었는데, 얼마 후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혹) 대통령이 되면 나머지 절반을 내놓겠다고 했다. 차라리 아무 소리 안했으면 좋았을 걸, 치명적인 실수였다. 절반을 내놓고도 옹색한 본심을 내비치는 어리석음을 범했으니 말이다. 문 후보 역시 지역구 의원직 던지라는 주변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했다. 스스로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모든 걸 다 던진다는 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의미이다. 관상의 마지막은 심상(心相). 하늘(神)도 인간에게서 딱 그 한 가지만 본다. 헌데 두 후보는 올인(盡人事)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저 '운명(運命)'에 따르겠다는 자세였다. 욕심은 넘치는데 배짱이 부족했다. 복발(福發)로 성공한 사람들의 심성이 예외 없이 그렇다. 그게 두 후보의 한계다. 결국 민주당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을 한 거다.

운(運)과 복(福)은 성질이 다르다

많은 방술가(方術家)들이 대선이 끝나자 하나같이 자신의 예언이 적중했다고 한다. 하긴 뭐 안 그랬다간 당장 간판 내려야 할 것이다. 어차피 예언이란 사건이 끝나야 맞는 법이니 말이다. 그렇다 해도 그 많은 관상가들이 복발(福發)과 운발(運發)도 구분 못하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운(運)은 행(行)이다. ‘돈다, 옮긴다, 궁리한다’는 의미다. 우주(해와 달, 그리고 지구)의 운행과 인간의 삶의 리듬이 어떻게 조화(조합)하느냐를 짐작해 보는 학문이다. 운(運)은 글자 그대로 나르는 것, 나아가는 것, 움직임을 살피는 것이다. 시간(타이밍)과 길(道)에 관한 일이다. 운수대통(運數大通). 운(運)이 순탄하려면 길(道)이 잘 통해야 한다.

운(運)은 관상적으로 골(骨)과 기(氣)를 살핀다. 즉 골상(骨相)과 기상(氣相)을 위주로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해서 관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눈빛, 피부색, 목소리, 말하는 태도, 특히 자세와 걸음걸이는 얼굴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니까 골(骨), 기(氣), 풍(風)을 총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복주머니’란 말이 있듯이 복(福)은 들어와 저장하는 것을 말한다. 또 호박이 굴러 들어온다는 표현도 쓴다. 따라서 복을 많이 받으려면 그 주머니가 크고 튼실해야 한다. 반대로 주머니가 작거나, 밑에 새는 구멍이 나 있거나 주둥이를 묶지 못하면 복을 가둘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사람은 설사 부모가 어마한 재물을 물려줘도 어떻게 해서든 다 써버리거나 새어나간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삶이 다 망가지고 만다.

관상적으로 복(福)의 유무, 다소는 대체로 얼굴 각 부위의 살(肉)을 살핀다. 특히 귓불, 코볼, 양볼의 두툼한 모양 등으로 판단한다. 우리가 흔히 운수(運數) 사납다고 하는 것은 어떤 재앙이나 시비로 인해 자신의 행보가 방해받거나 물리적 구속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또 재수(財數)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은 이 복, 즉 재물이 들고 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난 선거에서 모든 방술가들이 세 후보의 관상을 두고 다들 잘생겼다고들 했다. 물론 세 후보 모두 복은 꽤나 지닌 상이다. 하지만 대통령이란 자리는 복발로는 어렵다. 운발로 봐야 한다. 떨어진 두 후보는 운발이 아예 없거나 약했다. 지지자는 많은데 운발이 없다? 성냥딱지 신세다. 해서 필자는 줄곧 그 두 후보는 안 된다고 본 것이다.

다 던지는 자만이 다 가질 수 있다

관상이니 사주니 하는 것도 결국은 오장육부와 연결된 외향적 성향과 감춰진 내적인 자질 및 심리적 특성을 분별하는 경험적 통계학이라 보면 과히 틀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실패한 두 후보는 심지(心地)가 굳지 못했다. 권력의지가 충만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심지와 배짱은 말이나 인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걸음걸이로 짐작한다. 박정희와 김종필의 걸음걸이가 좋은 예이다.

모든 게임은 상대가 있는 법. 따라서 승부는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대통령이란 자리는 게임으로 치면 결승이다. 떨어진 두 후보는 게임에 임하는 마음 자세부터 이미 지고 들어간 것이다. 나머지 여러 패인들은 모두 사족일 뿐. 운(運)이 거기까지였다. 운발(運發)이 강한 골상(骨相)을 지닌 대표적인 대통령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이다.

물론 운(運)이라 해서 반드시 정치적 성공 여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재벌 오너들 중에도 운발로 성공한 사람이 많다. 이병철, 정주영, 신격호 등 대개의 창업주들은 복발보다는 이 운발이 더 강한 상이다. 학계나 예술계 등도 마찬가지다. 어느 분야든 최고점에 오른 사람들은 거의 다 이런 강한 운발을 지녔다.

운(運)은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지난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가 박원순에게 양보한 것을 두고 운(運)을 양보했다고 볼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겠지만, 역학적으로는 그걸 양보로 보지 않는다. 운발 없는 안철수가 포기한 것이고, 운발 강한 박원순이 기회를 잡아챈 것뿐이다. 만약 그때 안철수가 시장 후보를 양보하지 않았더라면? 대통령 후보를 양보하지 않았더라면? 다음에 다시 나온다면? 다 헛소리다. 운명론은 결과론이다. 인정사정은 안 본다. 현상만 본다. 그래서 냉혹하다.

문재인 후보는 모든 면에서 2할이 부족한 상이다. 게다가 마지막 광화문 유세 때, 단상의 문 후보 뒤에 도열해 있는 들러리 인사들을 보고 혀를 찼었다. 모조리 불길한 깻잎머리들이었다. TV토론에서 훼방을 놓은 여성 후보 역시 깻잎머리였다. 그러니 그 정도까지 지지를 받은 것만도 의외의 성과였다고 자족할 일이다. 후보 주변으로 몰려드는 인물들만 살펴도 대충 승부를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깻잎머리들은 독선이 강하고 비판적인 반면에 배려심이나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맨입으로 보태주는 것 같지만 역학적으론 좀비들이다. 헌데도 많은 사람들은 이들이 무슨 지사(志士)라도 되는 양 착각하고 있다. 대선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안철수타령을 하고 있으니 암담하다. 한번 악연이면 영원히 악연. 악운(惡運)과의 악연(惡緣)은 더욱 질기다.

사소한 버릇이 운명을 바꾼다

세상이 암울하고 불만스러울 때, 모자나 장발로 앞을 가리는 행태가 유행한다. 요즘 TV, 영화 등등 젊은이들 사이에 깻잎머리가 유행하는 것 역시 답답하고 불안한 심리현상의 반영이라 보면 틀림없다. 그 와중에 깻잎머리 인사들이 젊은이들 모아놓고 멘토한답시고 설치는 것을 볼 때면 한심한 생각이 든다. 남의 인생 비틀어 놓는 반풍수, 선무당들이다. 심지어 신부들도 있다.

TV토론에서 사회자의 왼쪽에 앉은 인사들 중에 이런 깻잎머리들이 많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중에 나오는 깻잎머리들이 맡은 역할을 보라. 모두 부정적이고 음침하고 반항적이다. 그래야 어울린다. 간혹 깻잎머리를 하고서 당당한 역을 맡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는 왠지 그 이미지가 안 맞아 자연스럽지 못하단 소리 듣기 십상이다. 배역과 관상이 잘 어울릴 때 그 드라마도 성공한다. 뛰어난 배우는 눈으로 연기한다. 그게 자신 없는 배우들이 깻잎머리로 부족함을 감추는 게다.

이게 동양만의 미신인가? 아니다. 기실 서양인들은 우리보다 더 싫어한다. 서양에서는 요괴를 깻잎머리로 그린다. 역사상 최장수 영화시리즈인 <007>에 필자가 감탄하는 이유는 살인스파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언제나 긍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마를 훤히 드러낸 젠틀맨 이미지. 그게 바로 <007>의 장수 비결이다.

깻잎머리와는 같이 식사하거나 사진만 찍어도 재수가 없다. 빌 게이츠 측이 안철수 교수 방문 전에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미리 경고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게다. 요즘 한국 연예인들이 어리게 보이려고 깻잎머리를 하는데, 재차 강조하지만 젊은이들이 따라 할 일이 아니다. 특히 취업 면접에서는 치명적이다. 그리고 깻잎머리를 한 아이돌 사진을 방 안에 붙여두거나 그런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다.

깻잎머리들 중에는 이마가 빈약한 사람이 많다. 자신도 모르게 위장(僞裝)하는 게다. 하여 요즘 개운(開運)을 위해 관상학적으로 성형을 하고 있는데, 이 역시 적당해야지 지나치면 불운을 불러오게 된다. 관상의 어디가 부족하다고 자신 없어할 이유 없다. 요행 바라지 말고 열심히, 타고난 대로, 생긴 대로 당당하게 사는 게 잘사는 길이다. 행운도 오히려 그런 사람에게 찾아온다. 싸이처럼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후보로 나서면서 보톡스로 이마의 주름을 펴고 살지게 만들었다. 해서 대통령이 됐지만, 분에 넘침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불행을 자초했다. 또 근자에는 곽노현이 부실한 이마를 깻잎머리로 감추고 교육감이 되었으나 역시나 짧은 영광 뒤에 감옥행으로 마감했다. 사소한 버릇도 운(運)의 한 요소다. 따라서 버릇을 바꾸면 운도 바뀐다.

복덕(福德)은 함께해야

흔히 복을 빌고, 복을 나눠 준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타고난 것이어서 누구와 나눌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복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실은 가진 재화를 남에게 베푼다는 말이다. 흔히 생각하길 그렇게 나눠 줘 버리면 자신의 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고들 한다. 허나 이는 그렇지 않다. 복주머니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재화를 나누는 것이다. 그런다고 타고난 복주머니가 비는 법은 없다. 금방 다시 채워진다.

복을 타고난 사람은 언제나 그만큼의 복주머니를 계속 차고 있다는 뜻이다. 설사 싫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미국의 갑부 워런 버핏이나 빌 게이츠가 그토록 많은 돈을 기부하고도 계속 부자로 있는 것은 바로 복의 그러한 성질 때문이다. 그러니 부자들이여, 안심하고 남에게 베풀기 바란다.

복은 받아서 담는 것이고, 덕은 베풀어 쌓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자에게 뭔가를 갖다 바치고 행운과 복을 비는데, 기실 운(運)을 개선시키고 복주머니를 늘리는 방법은 스스로 선덕(善德)을 쌓는 것 외에는 없다. 그렇지만 억지스러운 위덕(僞德) 위선(僞善)으로는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늘은 결코 못 속인다. 지난 대선에서 후보등록도 못해본 후보가 그랬듯.

적선지가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사람들은 당대 발복(發福) 당대 개운(開運)을 바라지만, 이 역시 역학적으로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무덕(無德) 무적선(無積善)으로 얻은 발복 개운에는 필시 재앙이 따른다. 그렇게 성공한 사람이나 부자가 된 사람들 대부분 그로 인해 결국 불행해지거나 자식 중 누군가가 치명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특히 늙어서 들어오는 복은 자식의 복을 미리 당겨먹는다고 하여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다. 이런 건 굳이 역학 공부 따로 하지 않고도 주변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역경(易經)》 <문언전(文言傳)> 첫머리에 ‘적선지가필유여경 적불선지가필유여앙(積善之家必有餘慶, 積不善之家必有餘殃)’이라 했다. 너무 빤한 계도용 경구 같지만 기실 그게 《역경(易經)》의 결론이고 진리다. 제아무리 주역(周易)을 꿰뚫고, 풍수에 통달하고, 귀신을 부리는 재주를 부려 본들 이 17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서민경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새 정부의 복지정책도 중요하지만 적선지가(積善之家)의 덕지(德祉)가 보다 큰 용기와 희망을 줄 것이다. 그게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제다. 국민대통합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고. 복지만으로는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을 뿐더러 되어서도 안 된다. 복지국가(福祉國家)이기 전에 먼저 덕지국가(德祉國家)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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