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돼지가 설치는 세상'...순천와서 김선동이 지지한다고 춤추고 난리부르스 친 얘들 뭘 좀 알고해라

 정치사상은 미덕에 관한 스토리이다

 정치사상은 강력한 실천력을 가진 도덕철학(moral philosophy)에서 나온다. 도덕철학은, 미덕(virtue)에 관한 입맛(taste)이며 가치평가(evaluation of values)이다. 니체(F. Nietzsche)의 철학에서도 명확히 나타나듯이, 살아있는 맹렬한 도덕철학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기준—미덕 체계, 즉 정치사상을 만들어낸다. 정치사상은, 도덕철학에서 만들어지는, ‘미덕에 관한 스토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영미 보수주의라 불리는 정치사상은 어떤 종류의 도덕철학에서 나왔을까?

이 문제를 살피기에 앞서, “영미 보수주의가 어떤 종류의 미덕을 “입맛에 맞는다” 혹은 “가치 있다”고 보는 것일까?”라는 문제를 살펴보자.영미 보수주의는 첫째, ‘예로부터 다져져서 내려온 제도를 중시하는 태도’를 미덕으로 보았다. 그러한 미덕을 ‘입맛에 맞는다’ 혹은 ‘가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를 ‘전해져 내려온 제도에 관한 존중’(philosophy of prescription)이라고 부른다.

또한 영미 보수주의는 예로부터 다져져서 내려온 가치를 “입맛에 맞는다” 혹은 “가치 있다”고 본다. 이를 ‘전해져 내려온 가치에 관한 존중’(presumptive virtues)이라고 부른다.

이 두 개의 미덕이 바로 영미 보수주의의 내용이다. 보수주의 정치사상이 영미 보수주의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두 개의 미덕이 바로 보수주의 정치사상의 내용이다. 

정신의 귀족

사람들은 흔히, 보수주의를 영국과 미국이라는 토양과 분리해 내서, ‘예부터 내려온 제도와 가치에 대한 존중’을 뜻하는 태도로서 고스란히 수입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 착각이 빚어낸 우스꽝스런 희비극이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심미주의자이고 스타일리스트였다. 그가 쓴 글들을 보면 참으로 섬세하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오죽하면 가장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꼽혔겠는가?

그는 보수주의의 핵심이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제도와 가치에 대한 존중’임을 깊게 이해했던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일본 전통 제도—천황제도를 찬양했으며, 일본 전통 미덕—사무라이 정신에 집착했다.

1968년 파리 데모 이후 일본에서 급진 좌파의 움직임이 최고조에 달하자, 1970년 11월 25일에 그는 4명의 동료와 함께 자위대 동부사령부 산하 토쿄 기지에 들어가서 배를 그었다. 할복을 하면 옆의 동료가 목을 치게 되어 있다. 능숙한 사무라이는 할복자의 목을 한 칼에 베되, 목젖 거죽을 남겨서, 잘린 머리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가슴 앞에서 대롱대롱거릴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런데 그만 미시마 유키오의 동료가 정신이 혼미해진 탓에, 목을 대여섯 번이나 찍었지만 베지를 못 했다. 미시마가 고통에 몸부림치자 다른 동료가 나서서 그 목을 대신 쳤다. 참으로 그로테스크하고 끔직한 희비극 피바다였다.

 

▲ ▲자위대 토쿄 기지를 무단 점거한 미시마 유키오가 연설하고 있다. 그는 실은 매우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심미주의자, 스타일리스트였다. 전후 일본 최고의 소설가로 꼽혔다.

(버크가 사자후를 토했던 1800년을 기준으로) 영국의 6백 년 세월, (링컨이 대통령 선거에 진입했던 1860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3백 50년 세월 동안 다져진 것과 같은 빛나는 전통에 버금가는 것이 아니라면, 예부터 내려온 제도와 가치를 본받겠다고 설칠 일이 아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과거를 본받는 것’을 숭배했지만, 그 과거의 컨텐츠 자체가 별로 숭고하지 못 하다는 점은 깨닫지 못 했던 것이다.

보수주의는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친 과거가 숭고하고 고귀한 전통을 가진 땅, 이 과거로부터 내려온 제도와 가치가 곧바로 현재에 적용될 수 있는 땅에서만 뿌리박을 수 있다. 그들에게 과거가 얼마나 ‘빛나는’ 것이었는지, 그 예를 들어 보자. 1688년에 있었던,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닦았던 명예혁명은 전혀 ‘명예’스럽지 않다. 그러나 명예보다 더 찬란하다. ‘빛나는 혁명’(The Glorious Revolution)이 본래 이름이기 때문이다. 아무 전통이나 오래 된 것이라면 마구 물려받는 태도가 명예스러운 것이 아니라, ‘빛나는 유산’을 물려받아 보수하는 것이 명예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보수주의 자체를 수입할 처지가 못 된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민족주의에 도취된 사람이 아니라면! 수백 년 전의 우리 선조의 제도와 가치를 있는 그대로 물려받아 오늘에 재생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런 시대착오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제, 툭툭 털고 “보수여, 안녕!”을 외치면 될까? 아니다. 영미 보수주의가 그토록 예외적이고 고귀한 것이라면, 보수주의 정치사상 그 자체가 아니라, 보수주의를 성립시켰던 정신 세계를 본받으면 될 일 아닌가? 보수주의 정치사상이 우리의 척박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맞지 않는다면 보수주의를 만들어낸 정신세계 자체를 통째로 소화하면 될 것 아닌가?

우리에게 보수주의는 정치사상이 아니다. 보수주의를 만들어낸 특정 도덕철학으로 이끌어 주는 화두가 되어야 한다. 이 특정 도덕철학은 ‘정신의 귀족’을 만들어내는 도덕철학이다.

우리에게 보수주의는 정치사상이 아니라, 특정 도덕철학에 도달하기 위한 정신의 여행 코스가 되어야 한다.

생뚱맞게 왠 귀족? 귀족이 되지 않으려면 단 하나의 선택--성도착 돼지가 되어 강간살인을 예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귀족이 되는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다. 성도착 돼지(pervert hog)가 될래, 아니면 정신의 귀족(the nobiility of mind)이 될래? --이것이 오늘 한국 상황이 우리에게 던지는 이슈이다.

보수주의는 ‘정신이 귀족인 사람’이, 영국과 미국이라는 매우 예외적으로 풍요로운 토양에서 만들어낸 정치철학이다. 우리에게는 그 토양이 없기 때문에 보수주의 정치사상을 흉내 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정신의 귀족’이 될 수는 있다. 우리에게 보수는 정치사상(주의, -ism)이 아니라, ‘정신의 귀족’에 이르기 위한 화두인 것이다. 일단 그 도덕철학에 도달한 후에, ‘정신의 귀족성’이란 영역에 도달한 후에, 우리에게 맞는 정치사상을 도출해 내야 한다.

이렇게 도출한 정치사상은 (우리의 토양이 영미와 다르기 때문에) 보수주의가 아니다. 이 과정이 바로 ‘화두로서의 보수주의’가 해내는 역할이다. 일찍이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폭군만 과거를 이용하고 버리는 게 아니야.
폭도는 더 황당하지.
그래서 나는 과거가 더 불쌍해.
폭도들은 기껏해야 자기 할아버지 시대까지밖에 기억하지 못하거든.
할아버지 시대에서 시간 끝! 더 이상 과거란 없음!

과거는 모두 버림받아.
폭도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 오면
시간은 얕은 물에 처박혀 익사하게 돼.
폭도의 시간은 할아버지 시대에 끝나니까.

그래! 형제들!
새로운 귀족 집단이 필요한 거야!
폭도의 지배를 막기 위해서.
폭군의 지배를 막기 위해서.
새 율법 서판에 새 율법을 이렇게 써 넣기 위해서.
“고귀하게 되어라!”

귀족 집단이 생겨나려면,
고귀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돼.
고귀한 사람들이 갖가지 종류의 사람들로 구성돼야 돼.
내가 전에 우화로 이야기한 적 있지?
“하나뿐인 신이 아니라,
이렇게 여러 신이 존재한다는 게 바로 [신다움]이잖아!”
귀족도 마찬가지야.
많은 사람이 귀족이 될 때 [귀족다움]이 존재할 수 있지.

아! 형제들!
나는 자네들을 새로운 귀족이 되는 길로 이끌어 귀족에 봉(封)하는 거야!
자네들은 미래의 씨를 뿌리고 미래를 낳고 미래를 키워야 돼.

 

장사치는 황금을 주고 귀족 신분을 사지.
하지만 내가 봉한 귀족은 돈으로는 살 수 없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전부 싸구려뿐.

어떤 집안, 어떤 핏줄 출신인지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를 귀족으로서 자네의 명예로 삼아야 돼!
현재의 자기 자신을 [넘어서기]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자네 의지와 발걸음을 귀족으로서 자네의 명예로 삼아야 돼!

자네가 귀족이 된 것은 임금을 섬기기 때문이 아니야.
임금은 무슨 개뿔!
자네가 귀족이 된 것은 기존 가치의 수호자가 되었기 때문이 아니야!
기존 가치는 무슨 개뿔!

자네 집안이 궁정에서 처신을 잘했기 때문도 아니지.
자네가 궁정이라 불리는 얕디얕은 웅덩이에서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플라밍고처럼 오랫동안 서 있는 법을 배웠기 때문도 아니지.

 

오랫동안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수 있는 것!
궁정의 알랑쇠들한테는 매우 중요한 능력이지.
그래서 궁정의 알랑쇠들은 죽은 후에 얻게 될 기쁨 중에
[앉아도 된다고 허락 받은 상태]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고 믿지!

자네가 귀족이 된 것은
성령이 자네 조상을
[약속된 나라]로 데려갔기 때문도 아니지.
아무튼 나는 그 [약속된 나라]에 대해 찬양하지 않아.
그 나라에서 자라는 나무는, 나무 중에서도 가장 나쁜 나무,
십자가라고 불리는 나무이기 때문이야.
그 나라엔 찬양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어!

 

성령이 기사(騎士)들을 이끌면
항상 머리가 꼬인 놈과 성미가 비틀린 놈이 제일 앞장서서 설쳐!
아, 물론 염소와 거위들도 성령의 인도를 받고 함께 가고 있지.

아! 형제들! 자네들, 새로운 귀족의 귀족다움의 근본은
뒤를 보지 않고 앞을 보는 것에 있어!
자네들, 새로운 귀족 집단은 세상의 모든 나라로부터 따돌림 당할 거야.
자네들은 모국도 없고 조국도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자네들은 먼 미래에 등장할 우리 아이들의 나라를 사랑하게 될 거야.
[우리 아이들의 나라]에 대한 사랑을 귀족다움의 근본으로 삼도록!
[우리 아이들의 나라]는 머나먼 바다 건너 아직 발견되지 않은 땅에 세워져.
자네들이 타고 갈 배가 그 머나먼 여행을 견디어 내기를! 제발!

(니체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 56:77~56:90, 박성현 번역)

 

▲ 박성현 저술가/뉴데일리 논설위원. 서울대 정치학과를 중퇴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최초의 전국 지하 학생운동조직이자 PD계열의 시발이 된 '전국민주학생연맹(학림)'의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한국일보 기자, (주)나우콤 대표이사로 일했다.본지에 논설과 칼럼을 쓰며, 두두리 www.duduri.net 를 운영중이다.저서 :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 <망치로 정치하기>역서 : 니체의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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