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포스코맨 김정권 "광양제철 사택단지 때도 그러더니" 격정 토로

 포스코 건설사업본부에서 30년 근무하다 퇴직해 10년전 은나노 살균기 제조업체를 차려 어엿한 중소기업인으로 변신한 김정권 대표. 서울대캠퍼스 얘기가 나오자, 그는 30년전 일이 지금도 광양서 되풀이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 건설사업본부에서 근무했던 김정권 사장을 만난 것은 지난 11월 29일 저녁 무렵 순천 본사 사무실을 찾았다. 그가 포스코 다닐때 사놨던 땅에 지은 아담한 조립용 건물에 공장을 겸해 사무실이 있었다.

인터뷰 약속이 늦게 잡히다보니 저녁시간이 다 되서야 사무실을 방문했다. 10년이상 은나노 분야를 연구해 지금은 은나노를 이용한 살균기 제품 회사를 차려 어엿한 중소기업사장이 됐다. 

그는 포스코 건설사업본부의 산 증인이다. 30년을 포스코 건설사업분야에서만 근무했다. 주로 근무했던 분야는 토목이다. 포스코에 입사한 것은 그의 나이 25세 때였다. 불우한 가정형편으로 고려대 법대를 입학하고서도 중퇴했다.

광주출신인 그는 어렸을 때 부모와 헤어져 자라면서 명문고인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법대를 입학해 화제가 됐다.그런데 오히려 그게 화근이 됐다. 고대 법대 입학 사실이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는 바람에 헤어졌던 부모와의 만남이 오히려 그를 다시 방황케 했다는 것이다.

우여곡절끝에 25세 때 포스코 포항제철소에 입사한 그는 끈기와 노력을 통해 회사내에서 인정을 받았다.

포항에서 17년 동안 근무하다 1984년 광양제철소로 옮겨와 1997년 퇴직할 때까지 제철소 압연설비와 냉연설비,연주설비 시공과정에 참여했다는 그는 아직도 포스코 광양제철소 근무시잘을 회상하며 제철소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제철소 자체가 플랜트 사업아닙니까?" "이리보여도, 열연 공장이나 냉연공장 지을 당시 설비 도입 때부터, 내 손을 안 거친 것이 없어요..."

보통 1개 설비 시공하는데 2년 6개월 정도 걸리는데, 그는 그 설비 구매부터 시공과정에 빠짐없이 참여했다고 했다.

그런데, 광양남부학술림캠퍼스 얘기가 나오자, 그는 대뜸 "광양사람들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30년 전 그 때도 그랬다"며 '그 때' 를 회상하며 당시 일화를 털어놨다.

 

김정권 대표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주택단지가 광양읍에 들어섰더라면 지금의 광양은 훨씬 더 커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광양제철소 주택단지 건설에 참여했다. 

- 원래 광양제철소 사택부지가 어디였나?

원래는 광양 사곡에 사택을 지정했다. 사곡초등학교 근처였는데, 광양읍 사람들이 반대해서 할수 없이 지금 부지로 옮겨 사택을 건설한 것이다.

-광양제철소 공장 짓는 과정에서 지역 토착민들과 많이 부딪쳤나?

지금 백운상 무상양도 얘기를 들으니, 그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광양제철소가 지역에 생기면서 사택부지를 물색하던 중 광양읍과 가까운 사곡을 지정했는데, 광양읍에서 반대가 심해 결국 포기했다. 아마도 그 당시 사곡에 들어왔더라면 광양읍과 중마동이 균형발전되고 도시가 연결되었을 것이다.

- 당시 광양읍 토착민들이 반대한 이유는?

정확하지도 않으나,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지역풍토가 바뀐다는 것도 그렇고 범죄가 걱정된다는 것도 한 이유였다. 당시 광양의 유지들이 이 반대운동을 주도했다.

- 포스코 직원들은 당시 국영기업체 직원인데, 무슨 범죄가 우려된다는 것인지?

그건 나도 이해못할 현상이었다. 당시 그런 풍문이 나돌고 광양의 지역유지들이 주택단지 건설에 반대를 하면서 그런 소문이 나돌았다.  이번 서울대학교 남부학술림캠퍼스 문제도 마찬가지 아닌가?  전국의 자치단체가 서울대학교뿐만아니라 연세대, 고려대 등 유수대학을 유치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는가?  광양 백운산 때문에 오겠다는  서울 대학을 거부하는 광양시의 입장은 이해가 안된다. 지금 생각해보면 30년전 상황과 똑같다.

- 반대가 어느 정도 심했나?

당시 건설현장에서 일하다보면 인사사고가 가끔 났다. 그런데 동네사람들이 산재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관을 메고 공장으로 밀고 들어올 정도였다.하루는 밤중에 지역 동네 깡패들이 현장에 찾아와 나랑 싸움이 붙었다.  밤중에 싸움이 나서 내가 이단옆차기로 깡패들을 발로 찼다. 그러자 위에서 누가 "자네, 격투기 했었나?" 라는 소리가 들렸다.

위를 쳐다보니 다름아닌 박태준 회장이 있었다.

한밤중에 박태준 회장이 순찰을 돌다 내가 밑에서 싸움하는 것을 목격하고 위 난간에서 격려를 해 준것이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김정권 B&J대표
- 그럼에도 광양제철소가 완공되고 사택이 완공될수 있었던 이유는?

박태준 명예회장이 대단했다. 현장에서 직접 지휘하고 현장에서 잤다. 지휘봉을 갖고 다니며 진두지휘했던 박태준 회장이 아니었으면 지금의 광양제철소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생각난 게 박정희 대통령이 79년 돌아가셨을때 박 회장님 우시면서 우리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 (박정희 대통령이) 내 생명을 다해서 철강산업을 완성시키라고 하셨는데, 서거하셨다"라고 말하며 울먹이셨다.

직원들 복지에 대해선 어느 누구보다 신경을 많이 썼던 분이다. 오늘날 포스코에 노조가 없는 이유도 그 분 덕택이다. 노조가 있을 이유가 없었다.그만큼 직원들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었던 분이다.

-최근 광양에서 서울대 남부학술림캠퍼스 문제에 대해선 어찌보나?

지금도 30년전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 안타깝다.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서울대가 캠퍼스를 건립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백운산은 이미 서울대에서 100년 동안 연구개발용으로 관리해 온 땅으로 누구보도 그 산에 대해선 전문가 일 것이다. 서울대가 그 산을 앞으로도 관리하고 사용하는 것이 지역과 국가를 위해서 맞다고 본다.

이곳에 서울대학교남부학술림 캠퍼스와 연구소등 연구단지가 조성되는데 광양시가 반대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본다.

- 마지막으로 광양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광양제철소에 왔을 때가 1984년 이었다.  그 때만해도 광양은 황무지였다. 아무 것도 없었다. 바닷가 뻘과 섬들만 몇 개 있었다. 그때도 광양 지역 유지들이 광양읍 근처 사곡에 광양제철소 직원 사택단지 건설을 반대했다. 결과론적으로 지금 광양과 동광양으로 두동강 나고 분리됐다.

만약 그때 사곡에 광양제철소 사택단지가 들어섰더라면 지금 광양읍은 동광양권과 연결되고 도시도 지금보다 훨씬 커졌을 것이다. 그 당시 잘못된 판단이 오늘날 광양을 이렇게 두동강 낸 것이다.

- 지금 무슨 사업을 하나?

포스코 퇴직후 은나노 양전하 살균수를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1997년 카이스트 교수인 선후배와 같이 개발한 제품을 (주)B&J  회사명으로 순천에 설립했다.

- 은나노 살균치료의 원리는?

은나노 양전하 살균기의 원리는 천연소재인 99.99% 순도의 순은의 분해를 통하여 강력한 살균 탈취 전자파 차단 등의 특성을 나노기술에 접목한 것으로, 물탱크에 기계를 장착해 순은을 10억분의 1㎜로 분해하는데, 이때 물은 양전하를 일으키는 과정에서 생체에 이로운 알칼리수로 변하게 된다.

은나노 양전하 살균기는 나노 입자가 산소를 흡착해 생체 내 핵으로 침투되기 때문에 세포의 신진대사 촉진과 활성산소 제거에 도움이 된다. 한국원사직물연구원의 성적서에 따르면, 대장균, 살모넬라, O-157, 황색포도상구균 등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에 강력한 살균 효과가 나타났다.

- 효능과 반응은 ?

 가측농가는 1년 사용 후, 농장 내 악취가 해결되고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폐사율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육질이 좋아져 무항생제 친경농가인증을 받았다.

순천시에서 4년간 보조사업으로 채택하여 원하는 농가에 50%의 금액으로 설치 사용을 지원하기도 했다. 전남도에서 협조해 농가보조사업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서울대학교가 들어오면 내 사업분야도 서울대와 같이 연구했으면 한다. 일전에 시험성적연구서에 필요한 임상연구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전남도에 항의하기도 했다. 서울대 연구소가 들어와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 힘을 보태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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