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자유를 논할려면 사상을 얘기하라"

민노당 김선동 후보의 북한세습문제 침묵...'색깔론' 인가, 사상의 자유인가?

▲ 박종덕 본부장

4.27 순천보선과 분당재선거는 떼낼려고 해도 떼낼수 없는 상황이 됐다.

최근 북한 3대 세습문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순천보선에 출마한 민노당의 김선동 후보가 ´야권연대´후보라는 명분으로 색깔론을 제기하며 그 실체를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순천서 민주당 무공천을 단행, 민노당에게 후보를 양보하고 정작 본인은 분당에 출마한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책임이 크다.

최근 순천에서 재선을 지냈던 김경재 후보는 각종 방송토론회에서 민노당 김선동 후보에게 북한 김정일 정권 3대 세습문제와 관련해 입장표명을 해 줄 것을 누차 요청한 바 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3번이나 요청했으나, 김선동 후보는 무슨 이유에서인가 김경재 후보의 질문을 ´색깔론´으로 치부하며 3차례 모두 답변을 회피했다.

또 김경재 후보의 이런 질문에 <한겨레>와 <오마이뉴스> 등 좌파성향의 매체에선 덩달아 ´색깔론´을 부추킨다며 오히려 김경재 후보를 비난하고 있다.

불과 1년여전 대한민국 해상영토인 백령도 인근에선 천안함 침몰 사건이 있었고,그뒤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온 나라가 안보위기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지가 불과 몇 달 전이다.

그런 나라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남한 동족에 포를 쏴대는 북한정권의 실상과 세습문제에 대한 질문이 ´색깔론´으로 치부할 성격인지 묻고 싶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 이후 대북문제에 대해 강경입장을 취하고 국제사회와 연대한 것도 그럼 ´색깔론´인가?

누구나 젊었을 땐 혁명을 꿈꾼다.그 혁명의 이상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 자유와 평등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등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멋진 형용사가 첨부된 채 혈기왕성한 20대 젊은이들의 심리를 자극한다.

그 혁명이 때로는 지나치게 미화된 경우도 많다. 전 세계 젊은이들이 우상처럼 떠 받들고 있는 아르헨티나 의사출신 혁명가´체 게바라´의 이미지 사진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점에서다.

지난 19일 체 게바라와 같이 혁명을 주도한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는 46년의 최고권좌에서 물러나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모든 권좌를 넘겨줬다. 그와같이 쿠바혁명에 나섰던 카스트로의 1호동지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 밀림에서 사살된 것과 대조적이다.

´체 게바라´ 뿐만 아니라 과거 전 세계의 수많은 혁명인사들이 그들이 꿈꿔왔던 ´혁명의 이상과 숭고한 가치´를 위해 목숨을 던졌다.

문제는 그들이 그렇게 꿈꿔왔던 그 혁명의 가치와 이상이 나중에 무색할 정도로 퇴색되었다는 점이다.

설령 혁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혁명을 주도한 세력간의 권력다툼으로 변질돼 명운을 달리한 경우가 허다하게 많은 것은 지나간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권력투쟁과정에서 ´피의숙청´의 대상은 ´혁명동지´

대표적인 경우가 북한이다.

1945년 8월 해방 직후 소련의 슈티코프를 등에 업은 김일성은 당시 국내외에서 활약했던 여러 공산주의 세력들과 손을 잡고 북한 공산화에 성공한다.그들이 말하는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김일성은 6.25 패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조선공산당의 원조인 박헌영을 미제의 스파이로 몰아 처형하며 본격적인 권력구축에 나선다.

남로당 제거한 성공한 김일성은 다시 1967년 갑산파를 제거하고 뒤이어 빨치산파를 제거한다.

그 뒤 60년대말 주체사상 확립과정에서 소련파와 연안파를 제거하는데 성공하고 김정일 후계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마침내 김씨왕조 독재세습체제를 구축한다.

그런 과정에 때로는 김일성에게 충성경쟁을 둘러싸고 권력다툼이 재현되기도 했지만 결과론적으로 김일성의 후광아래 김정일이 권력을 조정역할을 자임해 권력을 장악하게 되고 마침내 군부마저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권력세습 구축과정은 혁명을 같이 도모한 동지들에 대한 끊임없는´피의 숙청´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그 ´피의숙청´이 다시 김정은 세습과정에 또다시 등장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연평도 공격이 이뤄졌다는 것이 대북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노당 김선동 후보가 ´사상의 자유´를 주장하며 그 사상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얘길 안하는 건 논리적모순이다. 나아가 그는 ´사상의 자유´를 거론할 자격이 없다.

일각에 의하면 김선동 후보는 과거 NL계열의 자주파 속칭 ´주사파´ 인사에 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주사파란 북한 김일성이 김일성대학교 총장을 지낸 황장엽을 통해 북한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사상적체계를 집대성한 이론을 신봉한 세력들이다.

정통 공산주의 이론인 마르크스 -레닌주의와는 별개로 김일성을 우상화시킨 이 주체사상을 신봉한 정파세력인 주사파는 80년대 학생운동권의 주류세력인 NL그룹을 장악하게 된다.

특히 고려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NL(민족해방)운동권 진영은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모순구조가 분단문제에 있다고 보고 이에대한 해결책으로 통일을 최우선시 하고 있다.

즉 한국에서 민족해방운동이야 말로 사회모순을 타파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는 유일한 길이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6.25전쟁은 미제의 볼모로 잡힌 남한을 해방시키기 위한 해방전쟁이 될 수 밖에 없고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남침은 당연히 정당화 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주사파는 북한 김일성 정권이 남한 이승만 정권에 비해 정통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북한은 해방직후 친일파를 숙청한 반면 남한에선 미군정이 친일파를 그대로 등용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이유에서 민노당의 핵심인 NL계열의 ´주사파´ 세력은 과거 북한 김일성에게 충성맹세를 하고 ´해방전사´로 활동하겠다는 서약서까지 작성해 김일성에게 진상하는 등, 이른바 과거´남조선로동당´의 후예나 다름없는 세력들로 이뤄져 있다.

당시 주체사상에 심취된 많은 인사들이 나중에 전향, 과거의 잘못된 사상을 반성하고 오히려 대북인권운동가에 나서거나 뉴라이트 운동에 합류한 인사도 상당수다.

문제는 국회의원에 출마한 인사라면 과거 추종했던 노선을 아직도 고수하는 것인지, 아니면 젊은시절 꿈꾸었던 혁명에 심취돼 저지른 잘못된 판단이었는지에 대해 정확한 입장을 밝혀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렇다 할 해명이 없다는 점이다.

필자는 국참당 유시민 대표가 지난 17일 순천에서 민노당 김선동 후보를 향해 ´이름도 명예도 없이 싸운 인사´였다는 김선동의 과거 이력에 대해 굳이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제 그가 무명시절에서 벗어나 국회의원이라는 ´권좌의 길´로 들어서고자 한다면 그가 과거 추구했던 ´혁명의 길´에 대한 입장표명이 필요하다. 치기어린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가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 '혁명의 길'에 대한 고뇌섞인 답변은 북한 김정일 3대 세습문제에 대한 입장과도 관련돼 있을 것이다.

만약 김 후보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끝내 입장표명을 거부하면 그의 과거는 혁명을 가장한 비겁한 권력추종자 였다는 비난에서 자유스럽지 못할 것이다.

이런 민노당 후보를 ´야권연대´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공천하다시피한 손학규 민주당 대표 역시 그런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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