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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미산서원, "단종도 울고 갈 충정공 '민신'을 품다"해남향교, 충정공 돈암 '민신'과 그의 아들 보창, 보해, 보석, 보흥 4충신 봉안 향사

해남향교에서 매년 음력 8월 5일 원사제향으로 관리하고 있는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해리 577번지에 미암산(해남 금강산) 아래 위치한 미산서원(眉山書阮).

미산서원은 신실 셋칸, 신문 셋칸, 강당 넷칸, 경원문 넷칸, 재실 넷칸으로 되어 있다.

이곳 미산서원은 충정공(忠貞公) 돈암(遯菴) 민신(閔伸)과 그의 아들 보창(甫昌), 보해(甫諧), 보석(甫釋), 보흥(甫興) 4충신을 봉안 향사하고 있다.

미산서원이 이곳에 자리한 것은 1788년(조선 정조 무신년)에 경향사림의 발의와 태학관의 통문에 따라 서원을 세우고 배향해 왔는데 1868년(고종 무진년)에 전국 팔도에 서원 철폐령이 내려지고 결국 미산서원도 철훼(撤毁)되었다.

이후, 1882년에 왕령이 다시 하달되어 서원 복원령이 내렸으나 유림과 민씨 종중에서 복원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서원 재 건립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그 후 해남지역 사림에서 이 빈터에 조그만 단(壇)을 마련하고 신위를 모셔왔었다.

미산서원이 다시 세워진 것은 단을 모신지 100년이 지난 1982년에 사림과 후손들에 의해 정성이 모아져서 본격 복원사업에 착수, 이윽고 1984년에 이르러 오늘과 같은 아름다운 미산서원의 중건을 마쳤다.

미산서원에 신위가 모셔진 여흥민씨 충정공파 파조인 민신은 단종의 충신 중 삼중신의 한명이며, 문종 때 병조판서, 단종 때인 1453년 이조판서를 지냈다.

조선 세종 때 두만강 동북 유역에 6진을 10여 년에 걸쳐 개척해 국경을 확장한 세종의 사람 김종서 등과 세종의 어지에 따라 어린 임금 단종을 보호하기 위하여 애쓰다가, 왕위를 엿보고 있던 수양대군(首陽大君) 일파의 적이 되었다. 이는 곧 수양대군의 적을 의미했다.

민신은 계유정란 전 수양대군이 명나라에 가게 되었을 때 부사로서 따라나서야 했지만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이는 후에 수양대군이 왕위에 올랐을 때 죽음으로 이어졌다.

1453년(단종1년) 수양대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켰을 때 좌의정 김종서의 일파라 하여 현릉 비석소에서 역사일을 맡던 중 김종서와 같은 날 삼군진무 서조에게 다섯 아들도 함께 참살 당했다.

그나마 그의 손자인 7살짜리 민중건은 집안 하인이 지게 항아리에 넣어 짊어지고 외숙인 진도군수였던 김종에게 의탁하여 숨겨서 키워오다 민중건이 성장 후 해남의 호장(戶長)이었던 정문필의 사위가 되어 일족을 이루게 된다.

삼정승과 사육신은 이미 중종때부터 복권의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영조때에 관작이 복구되는 열성조(列聖朝)로 올린 것과는 달리 민신은 죽음을 당한 후 수백년이 지난 정조(正祖) 5년(1781년)에 이르러서야 복관되고 영의정으로 추증되어 비로소 공주 동학사의 숙모전(肅慕殿)과 장릉(莊陵) 충신각(忠臣閣)에 배향되었다.

민신과 민신의 아들을 포함함 멸족에 준한 사실을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보면 당시 난신전(계유정난에서 죽음을 당한 신하의 가솔들은 한명회 등 수양대군 측 신하에게 노비로 줌)에는 ‘민신(閔伸)의 아내 우비(禹非)·딸 산비(山非)는 대호군(大護軍) 안경손(安慶孫)에게 주고...민보흥(閔甫興)의 아내 석비(石非)...판군기감사 김질에게...민보창(閔甫昌)의 아내 두다비(豆多非)...는 우의정(右議政) 이사철(李思哲)에게 주고...’ 라고 끔직하게 적고 있다.

단종(端宗/겨우 12세로 왕위에 오른 조선 6대왕, 숙부였던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결국 죽음을 당함. 죽은 지 200년 후 숙종 때 왕위를 추복함)이 지금 깨어난다 해도 울고 갈 이 미산서원의 주인공 충정공 민신(閔伸).

그리고, 그의 아들 보창(甫昌), 보해(甫諧), 보석(甫釋), 보흥(甫興)의 죽음과 함께 한 멸문지화, 전남 해남읍 서림공원에 그의 충절을 숭앙하는 사당과 정려(旌閭)인 충정사(忠貞祠)와 사충문(四忠門)이 있다.

또한, 해남군 마산면 장촌리에 여흥 민씨의 본가라고 할 수 있는 종가 옆에는 ‘여흥민씨부조묘´가 있고 이 부조묘에는 민신과 그의 아들들인 민보창, 민보해, 민보석 등 4부자가 배향되어 있다.

미산서원.

지금까지도 그저 가문의 아픔이나 영광으로만 여겨져 버린 충정공 민신,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미 한 시대를 뛰어넘는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시사 한 바 크다 하겠다.

다만 이러한 사료들이 전설이나 한갓 이야깃거리로 전략하지 않도록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지켜지는데 우리 유림들이 앞장서야하지 않을까 한다.

 

 

데일리저널  dmstn046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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