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해남 녹청자'..."잊혀진 도자기의 문화·예술적 가치 재조명"'고려난파선, 해남청자를 품다' 특별전..."청자·백자등과 비교 경쟁력 갖췄다"
정찬남 / 칼럼리스트 | 승인 2019.08.02 07:43
지난 7월 9일부터 오는 10월 13일까지 ‘고려난파선, 해남청자를 품다’ 특별전을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서 개최하고 있다.

1200여년 전 탄생돼 300여년 생산을 끝으로 명맥이 끊긴 해남녹청자, 녹암갈색도자기로 태어나 청자 탄생에 큰 영항을 주고 역사 속에 사라진 녹청자는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을 뿐 사실상 잊혀진 도자기였다. 

그런데 최근 해남녹청자가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주관으로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서 오는 10월 13일까지 ‘고려난파선, 해남청자를 품다’ 특별전을 통해 세상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해남녹청자들을 보면 저급에서부터 고급 녹청자까지 다양한 종류와 형태를 갖춘 자기로 생산된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청자 유물에서 볼 수 없는 철화문녹청자장고는 그 시대의 도공들의 창의력에 경외심을 갖게 했다.

필자는 해남녹청자가 도자기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발자취를 찾아 녹청자를 재조명하며 제2의 탄생을 위한 부활 가능성 타진과 현재 유통되고 있는 청자·백자·분청자 등과 비교해 경쟁력과 차별성을 이끌어 내 문화재로서의 가치와 도자문화 산업으로서 성장 가능성을 모색해 본다. 

또한 9~12세기까지 한반도에 분포돼 있던 전국 각 지방의 녹청자와 해남 녹청자의 비교, 인천 서구의 녹청자와 부안군의 녹청자 관리 운영, 강진군의 청자산업의 현주소도 집어보며 해남녹청자에 대한 해남군의 정책지원 등을 제안해 본다. 

녹청자 도자기의 시원

청자 철화 국화넝쿨무늬 매병.

귀중함의 사전적 해석은“가치를 정할 수 없을 만큼”을 뜻한다. 조선시대 막사발은 함부로 사용했던 그릇이지만 일본은 보물로 지정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 민초들이 국·밥·찬 등 다용도로 사용한 식기그릇인 막사발을 일본은 보물로 지정했다. 하나의 사물을 두고 평가시각이 극명한 것은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란 해석을 낳게 한다.

그런 반면 녹청자는 비색 청자를 탄생시키기까지 태토와 유약, 성형, 예술적 조형미, 표면 문양 등 비약적인 도자기술을 발전시켜온 귀중한 도자문화유산이지만 정작 청자의 명성에 밀려 이름도 없이 사라져 버린 잊혀진 도자기다. 학계는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녹청자기류가 약 9~13세기 초까지 다양한 종류의 녹갈색 도자기로 생산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해남녹청자 재현에 성공한 전라남도 도자기 명장 남강 정기봉 도예가가 발간한“해남녹청자의 특성 분석 및 재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조선시대 이후의 기록도 6건에 불과하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자기소(磁器所)가 각 1곳만 소개 돼 있고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등의 지리지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고 밝히며 이는 민수용으로 한정됐기 때문이라고 기술했다. 

당시 우리의 토기들은 중국의 선진 도자기술에도 훨씬 못 미친 저도(底度:1천도 이하)에서 구워낸 도기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해남의 도공들은 저급도기 녹청자 수준을 칼슘성분의 회유와 잿물을 섞은 유약과 고화도의 산화번조(酸化燔造:산소를 넣어서 연료를 완전히 연소시키는 방법) 및 환원번조(還元燔造:가마의 온도가 1100℃ 이상으로 올라갈 때, 땔감을 많이 넣고 산소가 유입되는 가마의 모든 구멍을 막아 불완전연소가 되게 하는 방법)로 구워낸 방법을 찾아 녹갈색을 띤 경도(硬度)로 유리질화 된 녹청자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도자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며 아름다운 비색 청자 탄생에도 영향을 준다. 때문에 녹청자는 청자에 버금가는 문화재적 가치를 부여받아도 될 훌륭한 문화재적 자산이지만 녹청자에 대한 학술적 발표나 본격적인 위상 정립 등에 관한 자료는 극히 소량에 불과하다. 이는 사료적인 자료가 부족해 어쩔 수 없는 환경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전해온 사료만으로는 녹청자를 청자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지 못한다. 

일각에서는 녹청자의 생산과 상감기법, 철화문 기법 등이 중국 도자기보다 더 앞서고 또 기술접목도 있었다는 주장을 내 놓기도 했다. 따라서 정부와 학계, 녹청자와 관련된 지자체 등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사실들을 밝혀줄 학술적 연구를 위한 행·재정적 지원이 필요해 보인다.
 
중국 비색청자 선호문화, 한국의 동조현상은 녹청자 성장의 걸림돌

중국에는 고대로부터 현재까지 우리나라의 녹청자와 유사한 녹유자기와 흑유, 비색청자 등을 생산하고 있지만 유독 비색청자의 호응도가 더 높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은 붉은색(복을 부르는 색), 황색(황제의 색), 청색(귀족, 우아함), 옥색(건강, 장수) 등이다. 물빛의 옥색은 건강에 좋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다양한 색상의 도자기들 중 옥빛과 닮은 비색 청자의 선호도가 더 높은 편이 아닌가 싶다. 당시대의 한반도에도 청자에 대한 편향 현상이 지속되다 조선조로 바뀌며 백자, 분청자기 등으로 대체 된다. 만일 중국의 도자문화가 녹유자기를 더 선호했다면 우리나라 녹청자도 더 높은 위치에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중국의 녹청자는 녹유자기라 칭하며 우리의 청자처럼 고운 점토를 사용한 양질의 고급자기인 반면 우리나라 녹청자는 약간의 모래가 섞인 사질토로 빗어낸 저급 녹청자가 대다수다. 그러나 해남군 산이지역에서 출토된 녹청자 편과 서남해안 각지의 해저에서 인양된 원형의 녹청자들 중에는 고급청자의 태토처럼 잘 정제된 점토로 성형된 기물을 갑발(匣鉢:자기를 개별로 굽기 위한 큰 통)을 이용해 생산된 고급녹청자기들도 발굴 됐다. 

비록 비색의 고급청자에는 미치지 못 했지만 고급화된 해남녹청자는 본격적인 청자 전성기 전인 12세기 이전까지 나름의 틈새시장을 확보한 가운데 민요(民窯)로서 전국에 공급됐다. 

해남녹청자 기술수준 및 종류는 전국에서 생산된 녹청자보다 연대 앞서고 다양
 
녹청자는 9~12세기까지 서남해안을 접한 북녘의 황해도 봉천군 원산리, 인천시 서구 경서동, 경기 고양시 원흥동, 양주군 장흥면 부곡리, 시흥시 방산동, 용인시 서리 충남 공주군 사곡면 신영리, 서산시 성연면 오사리, 전북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부안군 용계리, 전남 강진군 삼흥리, 용운리, 고흥군 운대리 등에서도 생산됐으며 이외 지역에서도 생산된 흔적들이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다. 

그러나 해남녹청자는 이들 지역보다 더 앞선 8~9세기부터 생산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영암 구림도기가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기물에 유약을 입힌 시유도기의 시발지로서 해남군이 영암군과 인접한 지역의 연관성도 무관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더 세련된 기술력과 다양한 종류의 녹청자기류가 생산됐음을 출토 편(片)과 해저에서 인양된 녹청자를 통해 확인됐다. 해남녹청자의 종류로는 완(碗), 사발(鉢), 호(甁), 장고, 화형접시, 유병, 편병, 항아리, 흑유자기, 백자 등이다. 

1983년 12월 완도 약산 어두리 앞바다와 전북군산 십이동파도, 그리고 해남군 산이면 금호도 앞바다 등에서 인양된 녹청자들 중에는 철화청자장고 4점도 인양돼 당시 도자기로 악기를 생산한 기발한 발상은 생산범위의 상식을 뛰어넘는 것으로 학계에 놀랄만한 충격을 안겼다. 이 철화녹청자 장고 중 한 점은 KBS 진품명품 평가에서 희소성과 독창성, 예술적 조형미를 갖춘 도자기로서 12억 원의 최고 감정가를 받는 등 해남녹청자가 청자와 견줘도 손색이 없는 세련된 철화문 도자기로 평가되는 순간이었다.

또 철화청자는 산이면 도요지에서 최초 제작한 고려청자의 한 종류이자 색과 제작방법에선 중국 도자기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자기로 평가된다는 주장도 있다. 녹청자는 유약을 얇게 처리함에 따라 철화가 발달돼 있지만 때로는 양각과 음각, 상감으로 제작된 녹청자도 발굴됐다. 철화청자는 철 함량이 많은 황토로 도자기 표면에 문양을 그려 제작하는 방법이다. 

이에 비해 강진청자의 특징은 몸체에 문양을 그려 흙을 긁어낸 자리에 백토를 메우는 상감기법의 청자다. 비색의 강진청자가 귀족적이고 차가운 느낌이라면 산이 철화청자는 따뜻하고 서민적인 도자기로서 민수용으로 전국 보급망을 확대 했다. 

이렇듯이 도자기 생산기술의 절정기에 있는 해남지역에는 162기(화원56기, 산이 106기)의 가마터가 발굴됐다. 해남지역은 강진지역 고려청자 가마터 180여기에 버금가는 녹청자 생산시설을 갖춘 전국 두 번째로 큰 대규모 생산단지를 갖춘 것이다. 

해남녹청자는 서남해안 일대에서 생산된 녹청자들과 달리 민요에서 도자기술을 발전시켜 관요인 강진청자를 만들어 낸 주도적 역할을 해온 것으로 일부 학계는 내다보고 있다. 이는 해남녹청자 생산연대가 강진청자 생산연대 및 전국 각지의 모든 녹청자 생산지역보다 앞서 있고 해남녹청자의 쇠퇴기 이후 관요로 지정된 강진청자 생산을 위해 해남도공들이 시차를 두고 강진으로 집단 이주 했다는 설, 

그리고 160여 가마에서 해남녹청자를 생산 했던 1000여명에 달하는 도공들과 그 가족들이 사라지고 녹청자는 명맥이 끊긴 후 인근 강진에는 180여기의 청자생산 가마가 조성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더한다. 특히 해남녹청자가 당시 상감기법의 흑청자를 생산 한 것도 무관하지 않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는 측면도 있어 이에 대한 명확한 고증이 없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해남청자 꽃모양 접시

1200여년 전 해남지역은 도자기 생산의 최적지

1200여년 전 해남지역은 바다에서 내륙 곳곳으로 항해가 가능한 해상교통이 잘 발달된 지역이었다. 질 좋은 점토와 도자기를 빚을 수 있는 연료인 목재와 물 등이 풍부한 천혜의 도자기 제조에 안성맞춤형으로 발달돼 도자기 양산의 최적지로서 가동됐다. 해남지역 곳곳에는 현재도 심심치 않게 자기편들이 발견되고 있어 지표조사가 재개되면 더 많은 가마터가 발굴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해남의 녹청자 가마터는 전국최대규모의 녹청자 생산단지로 다시 한 번 도자사의 기록을 고쳐쓰게 된다. 

이렇게 큰 규모의 녹청자 단지에서 생산된 대량의 녹청자는 전국 보급을 위해 해로를 타고 운반하던 중 해상 침몰이 빈번했으며,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해저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군산 십이동파도 인근 해저에서 인양된 4만여점에 달하는 해저유물 및 완도 약산면 어두리 앞바다에서 인양된 녹청자 3만673점이 해남 산이 녹청자로 확인됨에 따라 해남의 녹청자 생산규모는 전국의 유일한 대규모 세라믹공단이었음 입증하게 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과 해남사람들은 녹청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녹청자는 우리의 도자문화를 이끌어 온 선구자적 유형문화재적 소중한 자산이지만 아직 학계와 사회적 분위기는 저급청자 그 이상의 가치를 두지 않고 있다. 

국내 지자체들 도자 문화관광산업 활발 

해남녹청자 생산시기보다 늦은 전북 부안과 인천서구는 해남녹청자 유물과 가마터보다 현저하게 적은 소량임에도 도자문화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쏟으며 교육환경 제공 및 문화관광산업으로 활용가치를 높여 나가고 있다. 강진군도 청자산업의 전국화, 세계화를 위해 매년 청자축제와 토요청자경매를 실시하며 지역경기 부양에 힘써오고 있다. 지역경기 활성화를 위해 최대한 행정력을 집중해 나가고 있는 이들 지자체에 비해 해남군은 유형문화제로도 손색이 없는 전국에서 찾기 힘든 대규모 자기생산지역이란 귀중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도자기 육성을 위한 행정지원은 아예 전무한 실정이다. 

청자·백자·분청자와 견줄 경쟁력 충분 

청자의 빛에 가려진 양질의 점토로 빗은 고급녹청자는 청자, 백자, 분청자와 견줘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도자기술의 집약체였다. 아름다운 철화문 기법과 양각·음각 기법, 상감기법, 세련된 조형미의 철화문 장고는 도자영역의 상식을 뛰어넘은 훌륭한 문화재다. 해남녹청자는 녹청자라는 독자 영역의 새 도자기로 발전시켜나갈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 1200여년 전 저급청자로 각인된 녹청자를 강진청자, 여주, 이천, 광주의 백자 등과의 경쟁력 있는 도자문화의 신소재로서 성장동력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정기봉 해남녹청자 재현 도예작가는 국내를 비롯해 일본 및 미국 등지에서 전시회를 여러 차례 갖고 있다. 그는“국내를 비롯해 일본과 미국에서 개최한 녹청자 전시장을 찾은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급녹청자 전시회를 찾는 소비자들은 의외로 친근함을 나타내며 구매력도 높다”고 말했다. 소비시장은 다양성이 존재 하며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 지만 대표적인 도자기인 청자, 백자, 분청자가 차지하고 있는 시장성도 해남녹청자의 우아하고 세련미를 갖춘 아름다운 조형미, 철화당초문, 음각, 양각, 투각, 상감기법으로 완성된 뛰어난 문화재급의 도자기를 반길 것으로 여겨진다. 

 

완도선의 해남 청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녹청자는 해남의 또 다른 볼거리, 먹거리, 일자리 창출 등을 안겨줄 전통도예문화를 산업화 할 수 있는 좋은 소재다. 다행히 해남군은 대표적인 청자요지인 강진군, 부안군 등과 함께 ‘한국의 청자요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다.

명현관 군수는 “지난해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진산리 청자요지에 대해 26년 만에 발굴 조사를 재개하는 등 해남청자의 유래를 밝히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앞으로 유네스코 등재 등을 통해 해남 청자의 가치가 더욱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혀 해남녹청자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잊혀진 해남의 문화유산을 빛나는 문화재를 만드는 것은 해남군의 몫이다. 

군은 녹청자에 대해 훌륭한 유형문화재의 가치를 지닌 보물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사업추진 의지를 보여 줘야 한다.

 

정찬남 / 칼럼리스트  jcrso@siminilbo.co.kr

<저작권자 © 데일리저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찬남 / 칼럼리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icon시선집중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진미파라곤 628호  |  문의전화 : (02) 761-8064, (061) 763-0118
발행인 : 박종덕  |   편집인 : 박종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종덕  |  등록번호 : 전남아 14  |  등록일 : 2005년 12월 16일
Copyright © 2019 데일리저널.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