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을 지키기 위해 법과의‘불편한 동행’을 선택한 변호사의 세상 이야기

《불편한 동행》(출판 아논컴퍼니)은 김정호 변호사가 변호사 생활을 하며 2004년부터 2019년

까지 쓴 칼럼 58편과 저자와 함께 아름다운 동행을 꿈꾸는 사람들의 글 17편을 엮은 것이다.

김정호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전남지부 지부장으로 활동하며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출판 및 배포금지 사건’, ‘국정원 댓글 관련 모해위증사건’, ‘한상률 국세청장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 ‘미쓰비시 여자근로정신대 손해배상청구 사건’ 등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사건들의 공익 변호를 하며 느낀 법과 ‘불편한 동행’을 글로 풀어내고 있다.

“변호사라는 직업을 그만두지 않는 한 때로는 영혼을 파괴하는 고통을 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들과 불편한 동행은 변호사의 숙명이다. 좋은 변호사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라도 최소한 나쁜 변호사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내가 오늘도 누군가를 변호하는 이유고, ‘불편한 동행’을 계속하는 이유다.

법과 가장 친숙하고, 일반인이 어려워하는 법의 지위를 악용할 수도 있는 변호사가 법과의 ‘불편한 동행’이라 한 이유는 진정성과 공감능력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저자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진정성이 목적이 되는 만남만이 변호사로서, 그리고 사회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라 여기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런 삶과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탐독하고 있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사마천의 《사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고백한다. 저자는 《어린 왕자》가 말하는 ‘길들여짐’은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만 고집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주체성도 아울러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핵심으로 보고 있다. 그러한 서로간의 주체성들이 온전하게 존중받기 위해선 애정과 신뢰가 있어야 함을 《사기》의 교훈에서 끄집어낸다. 《사기》의 ‘영행열전’의 미자하에 대한 왕의 애정과 신뢰가 허물어지며 과거의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는 여도지죄(餘桃之罪) 고사를 교훈 삼아 상대방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경계하고자 한다.

“좋은 만남을 이어가려면 삶의 과정에서 스스로 ‘성찰’하는 일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중요하다. 성찰 없는 소통은 진정성이 부족하고, 소통 없는 성찰은 고집으로 흐르기 쉽다. 그래서 소통과 성찰은 우리에게 늘 어려운 숙제다.”(「소통의 어려움과 길들여짐」 중에서)

그래서 김정호 변호사는 의뢰인과 얼굴을 맞대고 하는 면담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사건 서류만으로, 언론 보도만으로 의뢰인에 대한 인간적 판단은 물론이거니와 법적 판단 역시 직접 만나기 전까진 어떤 선입견도 배제하려고 한다. 저자는 법대로만 하면 되는 법률사건에서조차 의뢰인이 아닌 사람과 사람으로 관계를 맺어야만 법의 순기능이 확산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불편한 동행》에는 법 앞에서 강자라 불리는 권력자들을 냉철한 법률적 논리로 조목조목 반박하여 승소판결을 받아내고 시대의 모순이 만들어낸 ‘장발장’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외면하지 않고 기꺼이 변호에 나서는 저자의 모습에서 변호사 김정호가 지키려는 진정성과 공감능력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정의가 몸에 배면 어떤 순간에도 정의를 따른다!

위는 영화 <브레이브 하트>를 보며 느낀 점을 표현한 문장이다(3부 영화와 인생). 지나가는 말처럼 쓰윽 써 놓은 문장이지만 저 문장이 사실 김정호 변호사의 삶과 《불편한 동행》을 관통하는 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더욱 더 민주주의에 관심이 많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전남지부 지부장으로 활동하며 저자는 한국 사회를 후퇴시키려는 권력자들에 맞선 용기 있는 소수자들을 변호하고자 애썼다.

저자는 지난 보수정권의 파렴치함과 침몰을 야기한 ‘한상률 국세청장 명예훼손죄 사건’, ‘국정원 댓글 조작사건’ 등 권력자에 의해 사유화되는 공공 시스템의 붕괴를 막아 내려한 소수자들의 편에 있었다. 그렇다고 저자가 변론 과정의 어려움과 승소 후 승리감을 무용담으로 풀어내는 것은 아니다.

저자 역시 힘 있는 자들과 배치되는 사건의 변론에 나서야 하는 두려움을 솔직하게 토로한다. 어렵게 사건에 대한 조언을 토로하는 후배(「국정원 댓글 관련 모해위증사건」)에게 적당히 타협하라고 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우리는 어렸을 때 정직과 양심을 가슴에 품었고 정의로운 꿈을 꾸며 자랐다”며 끝내 변론에 나선다. 승소 후 어떤 명예와 돈보다 의뢰인이 매년 가을 보내오는 땅콩 한 상자에 담긴 뿌듯함과 사람에 대한 진정성에 감사하는 변호사이다. (「한상률 국세청장에 대한 명예훼손사건」)

특히 저자는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사건’ 승소 이후에도 가속화되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왜곡과 폄훼적 망언에 대해 법률적 대응뿐 아니라 각종 TV토론회에 출연하여 역사적 진실 부인 행위에 대한 처벌조항을 신설하는 관련 법률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 시행되고 있는 역사부정죄 도입이 필요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대고 있다. 호남 과 5·18유공자 등에 대해 허위사실에 기초해서 혐오표현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 이에 더해 단순히 역사적 진실에 반하는 것만이 아닌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살상행위를 부인하고 있다는 점, 따라서 다시는 이런 반인륜적 행위를 허용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5·18망언과 표현의 자유」)

《불편한 동행》에는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사건’에서부터 지난 2019년 2월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망언파동까지 5·18민주화운동 역사 왜곡 행위에 직접 관련이 있는 글만 6편이 된다. 이는 저자가 5·18민주화운동을 비롯하여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사건’ 등 정의롭지 못한 사건에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우지 않는 이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 사회의 건전한 상식과 자정력을 담보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달라도 아주 다르다!

보통 법률계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낸 책은 주로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나 미제 범죄를 파헤치는 사건들이 주를 이룬다. 그럼으로써 법의 엄격함과 아이러니,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심리와 독자들이 정서적 교감을 갖게 만드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김정호 변호사의 《불편한 동행》에 등장하는 사건의 주인공들은 모두가 피의자들이다.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언론에서도 매도당한 사건의 피의자들을 변호하며 겪은 이야기들이 많다. 사건의 정확한 진실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겐 피의자란 사실만으로 편견을 갖게 될 변론과정에서 평범한 시민이자 변호사로서 갈등, 그리고 피의자가 그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상황에 대한 공감, 그러한 의뢰인에 대한 공감이 법률적 판단을 흐려선 안 된다는 법조계 사람으로서 소명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진정성과 공감성을 최우선으로 삼는 저자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책에 수록된 내용 중 호남 최초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친모 영아살해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선변호인으로 사건을 맡은 저자는 처음 이 사건을 언론을 통해 접했을 때 자신의 딸과 같은 해, 같은 달 태어난 아이를 죽인 엄마에 대한 선입견에서 이 사회가 낳은 구조적 모순으로 구원받지 못한 어린 미혼모에 대한 공감으로 바뀌는 과정은 심금을 울린다. 그렇다고 저자가 피고인의 무죄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딱 하나 피고인이 검찰이 중형으로 구형하고 언론에서 매도한 비정한 엄마가 아닌, 가족도 집도 마땅한 벌이도 없이 아이를 키워야 했던 엄마의 비참한 상황을 봐 달라는 호소였다.

“배심원 여러분께서 생각하시는 최선과 피고인 처지에서 했던 최선은 그 상황이 상당히 다릅니다. 생활비에서 아이의 학원비나 옷값으로 100만 원을 떼 놓는 경우와 아이를 데려오려고 100만 원의 빚을 내는 경우는 다릅니다. 달라도 아주 다릅니다.” (「호남지역 최초 국민참여재판 사건(최후변론)」)

김정호 변호사의《불편한 동행》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성찰과 소통에는 저자가 삶을 살아가며 가장 중요시하는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가, 제2부 변론경험담에는 변호사 생활을 하며 만난 사건에서 드러나는 세상살이의 속물성과 진정성이, 제3부 영화와 인생에는 영화에 빗대 저자가 꿈꾸는 법과 인생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또 제4부 법과 사회에 대한 성찰에서는 우리 사회가 지켜야 할 정의와 법의 관계를, 제5부 여행과 책을 통한 소통에는 만리장성과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만의 시각이 드러나는 글이, 제6부 아름다운 동행에는 저자의 ‘불편한 동행’ 에 기꺼이 함께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갈수록 파편화되고 이해타산의 인간관계만이 우선시되는 우리 사회에 변호사 이전에 한 사람의 보통 시민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저자의 글들은 매순간 속물성과 진정성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얻어낼 것이다.

 

저작권자 © 데일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