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내를 위해 지은 한옥 신풍재 최태룡 대표의 인생살이 스토리

수원 화성행궁 골목길에 위치한 신풍재 주인 최태룡 대표(左)와 수원에서 문화재보존 활동을 하는 유지민 대표(右)가 만났다.

수원 화성 행궁 정문 바로 옆길 골목길에 위치한 신풍재(新風齋).

기자가 찾은 그날은 미세먼지가 서울 하늘을 덮은 날이었다. 미세먼지를 피해 인근 시골이라도 피난 가야할 판인데, 오후 2시경 화성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연락이왔다.

"지금 수원 화성에 있는데 시간되면 얼굴이나 보자구"

잠실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50여분을 가다보니 어느덧 수원 화성행궁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멀리 행궁앞에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든이가 오늘 만날 분이다.

고향인 전남 순천에서부터 인연을 맺은지 7년째다.

그동안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는 순천에서의 고통과 좌절 때문에 최근에는 술에 취한 날이 많다고 한다. 

'유지민' 이란 이름으로 개명할만큼 나름 고통이 있었지만, 그래도 얼굴표정은 항상 밝다. 근심 보다는 희망을 갖는 이만이 지닐 수 있는 표정이다.  

최근에는 수원 지역 문화재보존과 활용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해서 그런지, 지역 문화재 관련 인사들과 이런 저런 활동을 한다는데, 앞으로의 그의 인생행보가 참으로 주목된다.

바로 옆 위치한 수제맥주 집으로 끌려가듯 곧장 따라갔다.

신풍재 주인 최태룡 대표와 수원에서 문화재보존 활동을 하는 유지민 대표

화성행궁 박물관장을 지낸 분의 사모님이 운영중인 한옥 집이었다.

원래 헐기로 한 한옥을 구입해 리모델링한 탓인지 고풍스런 분위기가 두 사람을 사로잡았다. 자그마한 한옥을 매입해 수제맥주를 판매한 집이라 술집이라기보다는 고풍스런 찻집에 가까웠다. 

오랜만에 만나 맥주 한잔을 들이키고 화성행궁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잠시 특강을 들었다.

이어 두 세잔을 연거푸 들이키고 나니 찻집 벽에 걸린 시계바늘이 어느덧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잠시 차 한잔을 주문해 마신뒤 다시 수원의 유명한 통닭 집으로 이동했다. 최근 대박난 영화 '극한직업'의 촬영장소가 이곳 근처라고 했다.

수원하면 원래 수원갈비가 유명한데 최근에는 통닭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아무튼 수원통닭 집이 즐비한 인근 술집으로 이동해 통닭을 안주삼아 생맥주 파티를 벌였다. 그 자리엔 우표수집가도 동석했다.

우표수집이 돈 된다는 것도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이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직업과 취미를 지닌 사람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안주삼아 술을 먹다보니 어느덧 저녁 9시가 되가고 있었다.

신풍재 2층 다락방. 편백 소나무로 꾸며놓은 아담한 사랑방이다. .

지인이 숙박을 권유해 화성행궁 골목길에 위치한 신풍재를 찾은 시각이 저녁 9시경 이었다.

아담한 한옥 대문을 한참 두드리자 나온 이는 키가 크고 훤철하고 잘생긴 외모의 신풍재 주인이었다.

2013년쯤 원래 살던 집을 리모델링해 아내와 같이 집을 지었다.

그때 아내가 폐암말기 선고를 받아 6개월밖에 못산다해서 새로 리모델링해 전통 한옥집으로 지었다고 한다.

황토와 소나무로 짓다보니 시멘트가 아예 없는 전통적인 한옥이다.

"삼성의료원에서 6개월밖에 못산다는 아내가 6년을 더 살고 2017년 6월 좋은 세상으로 갔다"

주인의 설명에는 암으로 아내를 잃어버린 안타까운 사연이 배어 있었다.

아내가 좋은 세상으로 가고 홀로 살기에는 집도 너무 커서 2층을 새로 만들어 민박집을 꾸몄다고 한다.

거실에는 테이블 외에도 술과 음료가 가득찬 냉장고와 가지런히 정리된 찻잔, 샌드위치 토스트기가 설치된 것을 보니 게스트하우스 개념의 민박집이다.

여행객들을 위한  간단한 아침 식사는 물론이고 저녁 술자리도 즐길수 있게 나름 펜션 분위기를 만들어놨다. 

1층에 2개, 2층에는 다락방 형태의 방을 3개나 꾸며놨고 황토를 이용해 집을 지었다고 한다. 황토로 집을 지은 이유를 묻자 지금은 좋은 세상으로 간 아픈 아내를 위한 병치료용 때문이었다고 한다. 

잠시 1층과 2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집 내부를 둘러보니 아픈 아내를 위해 정성껏 지은 한옥집이다보니 통나무나 건축 자재가 보통이 아니다는게 느껴졌다.

어느덧 70 나이를 넘긴 그에게서 잠시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의 정이 묻어나오면서 그의 지난 인생살이가 귓가에 들려왔다.

한때 중국에서 공장을 2개나 운영하면서 사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던 그가 갑자기 IMF로 알거지가 되다시피해서 중국을 빠져나오면서 선택한 직업이 보따리 상이었다.

중국에서 사업에 실패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배에서 바다에 뛰어내릴까하다 배위의 보따리상들이 보였고, 그들에게서 희망을 보았다. 화장품과 학용품을 보따리에 담아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무역을 하는 그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살린 것이다.

신풍재 한옥 2층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한옥집이라서 그런지 온통 은은한 향나무와 편백냄새가 품어져 나왔다.

평택과 중국을 오가며 보따리 무역을 한 게 직업이 됐다. 돈도 꽤 만졌다고 한다.

그리고 평택에 '경기도평택항소무역연합회' 라는 명칭의 사단법인도 설립해 이사장에 취임도 해 지금은 '이사장 최태룡' 이라는 직함도 지녔다.

평일에는 주로 이곳 신풍재에 머물다 일주일 1-2번 평택항 사무소에 가서 밀린 일을 보곤한다.

암으로 잃어버린 아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그는 얘기 도중 상념에 젖기도 했다.

그런 그가 그나마 위로를 받은 것은 신풍재를 찾은 낯선 여행객들이다. 

그들로부터 이런 저런 사연과 얘기로 세상사를 나누다보면 신풍재는 여행객들의 쉼터이자 인생 사랑방이 된다.

그리고 하루 일상이 지나가고 아팠거나 슬픈 과거는 잊혀진다.

그와 얘기도중 신풍재를 소개하는 글을 써주기로 했다.

신풍재를 안내한 지인 유 대표는 어느덧 술에 취해 곯아 떨어졌고, 거실에 홀로 남은 그와 2시간이 넘게 인생과 세상사를 논하고 11시가 넘어 숙박을 뿌리치고 다시 서울로 향했다.

신풍재!

병든 아내를 위해 지은 예쁜 한옥으로 아내를 잃은 슬픈 사연과 아름다운 추억이 담긴 그곳에 다음 기회가 되면 아내와 하룻밤 머물고 싶다. [문의:031-242-5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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