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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파병' 전쟁 겪은 베트남서 북미정상 '한반도 평화' 논의
박종덕 본부장 | 승인 2019.02.06 22:06

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리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50년 전 전쟁의 폐허를 딛고 신흥성장국으로 꿈틀대는 베트남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논의를 진행한다.

역사적 정상회담이 베트남에 열리게 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미국으로선 베트남이 패전을 안긴 나라이기는 하지만 대외개방정책,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아세안 지역 핵심 국가로 부상했다는 점을 북한에 보여줄 수 있다.

미국은 1975년 4월 베트남이 공산화되자 베트남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고 베트남 전역으로 경제 제재를 확대했다. 이후 베트남이 관계 개선을 요구하자 미군 유해 송환과 실종자 문제, 캄보디아에서의 베트남군 철수 등 선행 요구조건을 내세웠다.

베트남군이 1989년 캄보디아 철수를 완료하자, 1990년 정부 간 직접대화가 시작됐다. 이듬해엔 미군 유해 송환을 위한 임시 사무소가 하노이에 설치됐고, 1992년에는 워싱턴에서 관계 정상화를 위한 고위 당국자 간 비공식 회담이 열렸다.

이를 바탕으로 1995년 1월 양국 간 연락사무소가 개설됐고, 같은 해 7월 11일 국교 정상화가 이뤄졌다. 베트남이 1986년 ‘도이머이(쇄신)’ 정책을 도입한 지 9년 만에 미국과 베트남은 역사적 화해를 했다.

미국 대통령의 방문도 이뤄졌다. 2000년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은 1975년 종전 이후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했다. 이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7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6년 베트남을 찾았다.



국제 경제로의 편입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경제 제재는 1994년 전면 해제됐고, 1995년에는 베트남이 아세안에 가입했다. 2000년에는 미국-베트남 간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2006년 실현됐다.

북한 입장에선 전통적 우방국과 유대를 강화하고, 개방과 경제 발전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북한의 롤 모델로 베트남을 꼽기도 했다.

북한과 베트남은 1950년 1월 외교 관계를 설립했다. 1957년 베트남 국부 호치민은 북한을, 1958년과 1964년 김일성 주석은 당시 북베트남을 방문하며 양국은 반미(反美)를 연결고리로 사회주의 국가 간 협력을 강화했다.

1964년 베트남에 미국이 군사 개입을 본격화한 데 이어 이듬해에 한국이 파병을 결정하자, 북한은 군인들과 물자를 보내기도 했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북한은 "최후까지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것"이란 취지의 전문을 북베트남에 보내기도 했다.

그렇지만 관계가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들어 북한의 베트남 경제 지원 감소, 통일 정책에 대한 이견 등으로 양국 관계는 다소 소원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9년 중월전쟁 때 북한이 중국 편을 든 것도 관계가 느슨해지는 배경이 됐다. 또 1992년 한국과 베트남 수교, 2005년 베트남 탈북자 대량 한국 송환 등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2007년 호치민 주석 이후 처음으로 농 득 마잉 총비서가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며 전통적인 우호협력관계를 재확인했다. 또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김일성 방문 60주년을 맞은 2018년 11월 베트남을 찾기도 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구축을 논의하는 장이 베트남에서 마련된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남북은 직접 총부리를 겨누지는 않았지만 베트남에서 적으로 맞섰다. 일각에서 베트남전을 '제 2의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4차에 걸쳐 약 31만명을 남베트남에 파병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수다. 북한은 공군 조종사들과 심리전 전문가들, 공병대를 보내고 각종 물자 등을 지원했다. 심리전의 대상은 남베트남 전선에 있는 한국 병사들이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동북쪽으로 60km 떨어진 박장 지역에는 베트남 참전 북한군 전사자 위령탑과 14구의 시신이 묻혔던 묘지가 있다. 북한군 묘지의 존재는 2000년 3월 백남순 전 북한 외무상이 방문하면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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