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계엄군에 의해 17건의 성폭행 사건이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외에도 연행·구금된 피해자와 일반시민에 대한 성추행, 성고문 등 여성인권침해행위도 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5·18 당시 성폭력 사건이 정부 차원에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여성가족부, 국방부가 구성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은 31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공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5월, 80년 5·18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의 증언이 나온 이후 공동조사단은 6월부터 10월말까지 ▲피해 접수·면담 ▲광주시 보상심의자료 검토 ▲5·18 관련 자료 분석 등의 방법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 학생·주부·임산부 등 피해자 다양

공동조사단이 조사한 결과 성폭행 피해 사례는 중복 사례를 제외하고 17건이 확인됐다. 피해자 나이는 10대~30대였으며, 직업은 학생, 주부, 생업 종사 등 다양했다.

피해일은 5·18 초기인 19일~21일경이 대다수였고, 장소는 초기 광주시내(금남로, 장동, 황금동 등)에서 중후반 광주외곽지역(광주교도소 인근, 상무대 인근)으로 변화했다.

피해자들은 총으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군복을 착용한 다수(2명 이상)의 군인들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했다.

당시 계엄군의 상황일지를 통해 확인한 병력배치 및 부대이동 경로와 유사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높은 것으로 판단했다.

연행·구금된 여성 피해자의 경우 수사과정에서 성고문을 비롯한 각종 폭력행위에 노출되기도 했다.

속옷 차림의 여성을 대검으로 희롱하거나 성고문을 하는 등 내용이 있었고, 일부 여성피해자의 유방과 성기에 칼, 꼬챙이 등 뾰족하고 날이 있는 물건으로 생긴 상처인 자창(刺創) 관련 기록도 발견됐다.

또 학생과 임산부 등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도 다수 확인됐다.

◇ 피해자들 트라우마 호소

피해자들은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해 기억 속에 갇혀 제대로 치유 받지 못한 채 당시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고통을 호소했다.

이들은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 “정신과 치료도 받아봤지만 성폭행 당한 것이 잊혀지지 않는다”, “육체적 고통보다 성폭행당한 정신적인 상처가 더 크다”고 당시 기억을 지우지 못했다.

지금처럼 미투운동(Me Too·나도 당했다)이 일어나기 전인 당시의 사회적 시선과 문화 때문에 아픔을 혼자 억눌러야 하는 피해자들도 있었다.

한 피해자는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스무 살 그 꽃다운 나이에 인생이 멈춰버렸다"고 말했다.

공동조사단은 피해자 면담과정에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5·18에 대한 이해와 상담 경험을 동시에 가진 전문가를 조사관과 함께 파견해 지원하도록 했다.

또한, 피해자가 원하는 경우 전문 트라우마 치유기관에 심리치료를 연계했다.

◇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자료 이관

공동조사단은 그간 활동을 바탕으로 피해자 명예회복과 지원, 가해자(또는 소속부대) 조사, 향후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과정에 있어 다음과 같은 사항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피해자 명예회복 및 지원 관련 △국가의 공식적 사과 표명 및 재발방지 약속 △국가폭력 피해자 치유를 위한 국가수준의 ‘국가폭력 트라우마센터’ 건립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지지 분위기 조성 △보상 심의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별도의 구제절차 마련 등이다.

가해자(또는 소속부대) 조사와 관련해 △5ㆍ18 당시 참여 군인의 양심고백 여건 마련 △현장 지휘관 등에 대한 추가 조사 등이 필요하다.

이 밖에 △5ㆍ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상 조사범위에 성폭력을 명시하는 법 개정과 △5ㆍ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내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별도의 소위원회 설치 등의 검토 및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속한 출범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동조사단은 이번 조사결과가 담긴 관련 자료일체를 향후 출범 예정인 ‘5ㆍ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이관해 성폭력을 비롯한 여성인권침해행위와 관련된 추가 조사가 진행되도록 할 방침이다.

공동조사단은 위원회 출범 전까지는 광주광역시 통합신고센터(062-613-5386)에서 신고접수를 받는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여가부는 피해자 면담조사와 상담 지원을 지속할 예정이다.

공동조사단장인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과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은 “이번 조사는 그간 사회적 논의의 범주에서 소외됐던 5·18 관련 여성인권 침해행위에 대해 국가차원에서 처음으로 진상을 조사하고 확인했다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과 조사관 등에 의한 여성 성폭행이 자행됐다는 것이 정부의 조사결과로 확인됐다”며 “5.18 성폭행 사건은 국가폭력이다. 정부는 진상조사에 협조하고 정부차원의 공식사과와 피해자 치유, 명예회복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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