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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호의 그림마실14, -후기인상주의, 고흐-

후기인상주의(Post-Impressions), 20세기 현대미술을 열다

후기인상주의라는 말은 영국의 예술비평가 로저 프라이(Roger Eliot Fry, 1866~1934)가 1910년 런던 그래프턴 화랑에서 기획한 ‘마네와 후기인상주의’전시 명칭에서 유래한다.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은 구, 원통, 원추라는 형태로 단순화 하였으며 피카소의 입체주의에 영향을 주었고, 폴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은 타이티 섬으로 들어가 원시로의 회귀로 야수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인상주의에서 사용하던 원색의 붓 터치를 더욱 강렬한 방식으로 나타내어 표현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세잔, 고갱, 고흐는 인상주의 영향에서 선명한 색채, 대상의 입체감을 중요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변화시켰다.

고흐, 열정의 화가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 준데르트에서 목사의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1890년 3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10여 년 동안 약 1,300여 점에 이르는 스케치와 850여점의 그림, 그리고 909통의 편지를 남긴 광기의 화가이다. 고흐는 1869년 화상을 하는 백부의 주선으로 런던, 파리, 등의 화랑에 근무 하면서 많은 작가를 만나고 박물관을 방문하여 작품 감상을 하며 성장한다. 1875년 1월 20일 자연주의 화가 밀레(Millet, 1814~1875)가 사망한다. 고흐는 소묘와 파스텔화의 경매에서 밀레의 작품들을 접할 기회를 가진다.

1876년 7년간의 점원으로 일했던 구필 상회에서 해고당하고 방황하다 부친처럼 목사가 될 것을 결심한다. 1878년 벨기에 브뤼셀 복음전도학교에 부임하여 전도사로 탄광촌에서 목회활동과 함께 틈틈이 광부들을 스케치하며 민중들의 힘든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1880년 7월 고흐는 화가로 살기를 결심하고“지독한 절망 때문에 버려두었던 크레용을 다시 들기로 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테오에게 보내면서 화가로의 출발을 알린다.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네덜란드 시기(1880~1885), 고흐는 1881년 부모 곁으로 돌아와 농부들의 일상의 모습을 스케치 한다. 이 시기 제작한 작품들은 드로잉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어두운 색조를 채색하여 농부와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1885년 아버지의 새 부임지 누에넌으로 돌아와 조금씩 안정을 되찾으며 작품제작에 몰두해 유화 200점, 데생 250점을 그린다. 이때 밀레의 작품 등을 모사하며 수많은 습작과 데생을 통해 다양한 기법을 익힌다.

1885년 4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자신이 농민화가라는 생각이 틀림없다.”고흐는 자신을 농민화가라고 생각하며 농민들의 일상의 삶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이 시기 대표작이 <감자 먹는 사람들>(1885)로 명암대조의 표현법인 테네브리즘(Tenebrism) 기법을 사용해 밝음과 어두움을 극대화시켜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을 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시기(1886~1888), 1886년 1월 서른세 살 때 안트베르펜에 머물며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고자 왕립순수미술 아카데미에 들어갔으나 권위적인 교육에 불만을 느끼고 파리로 갈 것을 결심한다. 1886년 2월 고흐는 파리에 도착한 이후 2년간 테오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한다. 당시 예술계에서 인기 있던 일본판화 우끼요에[浮世繪]에 매료되고, 테오와 함께 600점 이상의 일본화 복제품을 수집한다. <탕기 영감>(1887~1888)의 배경을 통해 일본판화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고흐, <탕기영감>, 92x75㎝, 1887~1888

코르몽(Fernand Cormon, 1845~1924)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며 테오의 소개로 드가, 쇠라, 시냐크, 고갱 등을 알게 된다. 2년 동안의 파리 체류기간 인상주의를 통해 네덜란드시절의 어두운 색조와 밀레의 화풍에서 벗어나, 외광(外光)과 점묘법(點描法)을 익히면서 색채는 밝아지고 다양한 회화적 테크닉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기 인상파와 일본판화를 접하고 색채에 관심을 보여준다.

프랑스 아를 시기(1888~1889), 1888년 2월 서른 다섯에 테오의 배려로 프랑스 남부 아를에 정착한다. 고흐가 아를에서 지내는 동안의 생활비는 테오가 부담했으며, 1872년 12월13일부터 1890년까지 쓴 821통의 편지 가운데 668통이 이 시기에 씌어졌다. 유동적인 색채 분할, 붓 자국이 그대로 드러나는 강한 필선, 단순화되고 강도 높은 색채를 사용해 강렬한 화풍을 보여준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73x92cm, 1889

고흐는 육체적 피로와 경제적 위협, 자신의 세계를 찾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1888년 10월 테오의 요청으로 고갱이 합류하고 고갱과의 갈등으로 빚어진‘귓불 자르기 사건’으로 발작을 일으킨다. 이 시기 대표작으로는 <해바라기>(1888), <씨 뿌리는 사람(1888)>등이 있다.

프랑스 셍레미 시기(1889~1890), 고흐는 1889년 5월 8일 자신감의 상실과 분열의 공포로 스스로 셍레미 부속 정신병원에 들어간다. 담당의사 레이의 도움으로 약 1년간 불안과 공포 속에서 150점에 달하는 작품을 그린다. <별이 빛나는 밤에>(1889)에서 격렬하게 물결치는 역동적인 선을 통해 그의 감정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고흐에게 형태와 색채는 자연의 인상을 넘어 분열된 마음의 상태를 보여준다.

프랑스 오베르 쉬아즈 시기(1890), 고흐는 1890년 5월20일 발작이 계속해서 일어나 파리 근교의 시골로 옮겨 의사 폴 가셰(1829~1909)의 보호를 받으며 그림 그리기에 전념한다. 오베르에서 보낸 두 달 동안 야외에서 고흐는 80점의 작품을 그린다. 7월 27일 가슴에 총탄을 맞고 7월29일 생을 마감한다. 이 시기 대표작으로는 , <가셰 박사의 초상>,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 <뿌리> 등이 있다.

까마귀가 나는 밀밭, 삶과 죽음의 경계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은 짙은 윤곽선 차가운 색채인 녹색과 파란색과 대조적으로 따뜻한 노랑색을 사용하고 있으며 격렬하고 유동적인 움직임이 세 갈래의 길 사이로 평원에 흐드러지게 흔들거리는 황금빛 들판이 펼쳐져 있으며 수평선 멀리 하늘은 짙은 코발트색 위로 까마귀가 날고 있다.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1890

이 작품은 역동적으로 흔들리는 황금색 밀밭과 까마귀가 날고 있는 어두운 하늘의 정경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밤과 낮의 두 상황이 한 화면에 공존하게 하는 ‘개념의 양극화(Conceptual bipolarity)’로 초현실주의 전조(前兆)를 보여준다. 고흐는 말한다. “밭에 씨를 뿌리는 자가 곡식을 거두는 것처럼, 영혼에 씨를 뿌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으리라.”, “어린 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하고 부드러운 어떤 것을 나타내며, 잠들어 있는 어린아이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과 흡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글에서 볼 수 있듯이 밀밭은 바로 생명력이자 순수를 상징한다.

“나는 밀과 사람이 같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다. 사람이 땅에 심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결국 맷돌에 갈려 빵이 되어 버릴 것을. 불행과 행복의 차이다! 둘 다 죽음이나 소멸같이 유용하고 필요한 것이지……매우 상대적이다. 그리고 삶 또한 똑같다.”1890년 7월 29일 고흐는 죽음을 맞는다. 고흐는 작품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말을 건네며 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오늘날 현대미술의 바탕은 바로 후기 인상주의 세잔, 고갱, 고흐이다. 세잔은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를 일으켰고, 고갱은 원시주의를 이끌어 냈고, 고흐는 표현주의를 일으켰다.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동양미학전공)

경희대교육대학원 서예문인화과정 주임교수

<참고하면 좋을자료>

크리스토프 베첼, 홍진경 역, 『미술의 역사』, 예경, 2006
마리 엘렌 당페라 외, 신성림 역, 『반 고흐』, 창해, 2001
윌리엄 본 총편집, 신성림 역, 『화가로 보는 서양미술사』, 북로드, 2011

김찬호  digitalfe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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