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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조 이야기] '청개구리'
신광조 전 행정공무원/칼럼리스트 | 승인 2018.08.04 10:44

그렇게도 대학입시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공부 잔 해라'는 말을 못 하셨다.

어떻게든 자존심을 건드려 책상 앞에 앉혀보고 싶었으나, 나는 이미 학교성적 따위는 초월한 사람이었다.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 의문이 들자, 책을 놔버렸다.나는 '수학의 정석'도 '정통영어'도 10page가 넘어가면 하했다.

국어, 영어, 사회는 평소 실력으로 버텄으나 수학은 미분과 적분이 어떻게 다른지 기본개념도 몰랐다. 어머니 속을 무던히도 썪였다.

그렇게 공부 안하던 나를 위해 어머니는 여름이면 감자가 가득 들어간 멸치 국물과 풋고추로 맛을 낸 된장국을 끓여 놓으셨다.

새우젓으로 멋을 낸 호박나물도 함께.

"아가, 담임선생님께서 공부하기 싫어도 어데 가지말고 교실에 앉아 있어라 하시더라.서울대만 학교다냐, 어디가서든 열심히 하면 다 성공한단다" 그러면서 책을 살 돈을 또 주셨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책은 사봐야제" 나는 정통영어에 이어 영어의 왕도도 여러번 샀다.

이과에서 일등을 하다가 문과까지 정복한 김용관이도 자주 들먹거렸다.
용관이는 참 기가맥힌 친구였다. 대학입시를 다섯달 쯤 앞둔 시절인데도 용관이는 저녁이면 날마다 놀러 왔다.

용관이는 학교에서 보내주는 성적표에 성적이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친구였다. 학교에서는 나의 성적이 얼마나 행팬없는지를 알기라도 하라는 듯이 내 성적밑에다 전교 1등 성적을 적어났다. 

김 용관 1등, 국어 61. 영어 58. 수학 71, 물리 24/25, 김용관은 수학과 물리에 특히 강했다.
고승덕이보다 공부를 더 잘해 나도 국민학교 시절에는 천재란 소리를 심심찮게 들었지만,

용관이를 보면 천재란 저런 친구를 두고 한 말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내가 절대 보지마라는 성적표를 몰래 보고 몰래 붙여 놓으셨다.

국어 60, 영어 57, 수학 25, 물리 10/25. 국어, 영어는 공부를 내팽겨쳤음에도 탑클라스 였지만, 수학은 시험을 보다 기권하고 나와버리기 일쑤였다.

'아가, 아가. 수학은 용관이 한테 좀 배우면 안 되겠냐. 왜 둘이 입시가 코 앞인데 저녁 네 바둑만 두냐'

용관이는 고교 1학년 때 나에게 6점을 잡히고 바둑을 배우더니 3학년이 되자, 그의 뛰어난 수학적 두뇌릍 바탕으로 나를 압박해왔다.

2점 까지 쫓아오더니 돈내기가 크게 걸린 어느 날은  "정선으로 붙자" 하여 나를 열받게 만들었다. '하루 강이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요놈이 요즘 쫌 내가  정신을 다른 데 팔았더니 간이 부었군"

용관을 혼내주기로 작정하고 방내기로 크게 돈을 걸었다.  내가 경험이 얕은 용관의 헛점을 이용, 크게 승부를 걸고 대마를 포획하였다.

책 한권값을 거의 다 나의 뱀 혀에 날름 넣는 순간, 나의 특기인 덜컥 수를 놓고 말았다. 용관어머니가 용관에게 배고프면 빵사먹으라고 준 배춧잎 몇장이 내 입에 다 들어왔다가, 그만 덜컥수 한수에  한 여름밤의 꿈이 되어버렸다.

용관에게 한 수만 물려주라고 해도, 용관은" 바른 길만이 생명인 우리에게 물려주는 법이 어디있냐"고, 어머니가 용관이 본 책 사보라고 준 돈, 울 엄니가 속옷 고쟁이 팔아서 준 돈, 눈 하나 껌쩍 않고 '인마이 포켓'했다.

나는 늘 어머니에게 책을 빙자한 용돈을 탈 때, 용관의 예를 많이 들었다. 용관은 학업성적은 뛰어났지만, 사회비판의식, 연애, 야구, 싸움, 놀음, 잡기 등  이런 과목은 나에게 많이 밀렸다.

용관은 내가 고교시절 부터 연애를 잘 하기 위해 갈고 닦은 문학 음악 미술 등의 지식에 놀라워 했고 신기해 했다.  "예술의 천재야, 천재" 허기사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시와 멋진 말을 다 오려 쓴 나의 연애편지는 이광수보다 더 뛰어났다.

날이 새면 부치지도 못하고, 용관을 비롯해 독자는 겨우  2,3명에 불과했지만, 국어책에서 나오는 모든 표현기법 만연체 간결체 은유 직유 상징적 메타포어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그 편지글들이 불태워지지 않고 살아있더라면 분명히 연애편지의 교본이 되었을 것이고, 많이도 팔렸을 것이며,  연애편지가 가장 아름다운 나라 대한민국이 되었을 것이다.

용관은 나하고 놀기도 실컷 놀면서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을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그는 나에게 "나는 너보다 시험 공부만 좀 잘 하지 너에게 모든 것이 뒤떨어진다"고 괴로워했다.

용관은 나의 의식화 성공 1호 인물이다.

서울 대학교 경제학과  2학년때 교내시위에 참석했다 잡혀가 영어의 몸이 되었다. 그 순허디 순허고 착하다 착한 용관이가 의식화된 나쁜 친구 광조의 영향을 받아 험한 가시밭길을 갔다.

박원순은 그 때 멋모르고 구경나왔다가 달리기를 잘 못 해 잡혀갔다. 시골 우체국장을 하시던 용관의 아버지는 홧 병으로 일찍 가셨다. 용관은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옥수수 밭 낙원인 아이오와에 유학을 갔다 왔다.

내가 하나도 모르는 수학으로만 써진 미시경제학을 성균관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고교시절, 나는 국민학교 시절부터 깨닫은 유신 체제 유지의 허구성과 박정희의 독재 야망을 명강의로 용관에게 연애이야기와 함께  가르쳐 주었다. 용관은" 네가 DJ보다 뛰어나니 꼭 대통령이 되어라"했다.  

그리고 바둑에서 따간 돈 오천원을 내 주머니에 슬쩍  넣어 주었다. 어머니는 오랜만에 아들이 공부 잘 한 친구와 열띤 토론에 빠졌다고 집안의 모든 것을 내 오셨다.

수정과, 식혜, 사과, 배 등등.

나는 "공부의 길"로는 컴백하지 않았다. 나의 부치지 못한 연애편지는 날카로운 첫 키스보다 더욱 달콤해졌고, 읽는 소녀의 가슴을 면도날처럼 파고 들만큼 애절해졌다.

다만 부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유신을 향한 나의 공격도 거세졌다. 장기집권을 획책하는 박정희의 눈빛과 그 일당들의 도둑놈 심보가 나에게 들켰다.

교복을 입고 담장을 뛰쳐 나갔다. '광조야, 광조야. 거기 넘어가 잡히믄 너는 큰 일이다. 광조야 광조야 대학교 가서 맘대로 해라, 고등학교 때는 안 된다"

키가 나보다 두 배나 큰 이민성 선생님께 동작이 굼 뜬 나는 학교담장을 뛰어넘어 시내로 나가려다 담장을 다 넘는 순간 잡혔다.

선생님 안 잡히고 오렵니다. "유신 독재 타도하자. 언론자유 보장하라" 독립투사보다도 더 크게 외친 19 살 순정의 절규는 박정희의 심장을 강타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늘 속이 타는 듯 했다. 머리도 부쩍 하애지셨다. 옷 하나도 해입지 않고, 책을 산다는 거짓말 쟁이 아들의 용돈을 속으면서도 항상 주셨다.

된장국, 어머니가 끓여 주신 호박잎 된장국, 감자 된장국이 먹고 싶다. 시금시금한 열무김치 얹어 먹으면 몸에도 마음에도 최고의 음식이었다.

음식은 추억이고 사랑이었다.

신광조 전 행정공무원/칼럼리스트  shintmr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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