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뇌는 물이 빠져나가는 모래밭이었다.

한번 들어오면 엉겨붙는 찰 흙인 내 두뇌와는 달랐다.
아들 어머니를 몇 번이고 의심했다.

한국에서는 해 볼 수가 없었다.
산수시험을 보다가 반도 못 풀면 종이 쳤다.
아들은 외우는 것을 싫어했고 거부했다.

아들이 공부에 이상한 조짐을 보인것은 호수가 만개나 되는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 수학영재 뽑기에 출전한 뒤였다.

당신 주변에 있는 트윈 시티 호수 숫자와 그 면적을 한번 계산해보시요? 하는 문제였던 것 같다.

사회는 30점, 수학은 50점만을 한국에서 받았던 아들은 놀랍게도  매쓰매틱스 genius란 평가를 미국에서는 받았다.

한국으로 돌아 온 아들은 금호고 체육교사의 학생체벌에 맞서 학교와 맞서 싸운 투사가 되더니 학업포기를 선언했다.

이런 비 민주적, 비 인권의 학교는 더 이상 다닐 수 없다는 것이다. 어렵사리 설득하여 한겨레가 주관하는 교환학생으로  미국 시골로 고교를 보냈다.

큰 세파드를 집안에 8마리나 키우는 양 어머니는 청소고 설겆이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분이셨다.

 몸 무게는 3자리인데도 아이스크림을 세 양푼씩 드셨다.

공부는 가장 재주없는 사람들이 할 수 없이 하는 재미없는 일임을 아들에게 수없이 강조했다. 

트럼프와 포커에 재주를 보인 아들을 라스베가스 인근 포커 딜러 양성학교에 보내려고 했다.

마음씨가 한량없이 좋은 양 어머니는 아들이 축산에도 소질을 보인다고  직업학교 여러 곳 브로셔를 보내왔다.

아들은 전문대학 컬리지에 진학했다.

샌프란시스코 해변에 동성애자들의 천국인 학교에.
저변층을 대상으로 지역 사회 복지운동가를 양성하는 과정인가로 진로를 정한 듯이 보였다.

누군가가 아들이 무슨 대학을 다니는지, 전공은 무엇인지를 물어보면 얼버부렸다.

"아들이 원래 공부에 소질이 없어서"

좀 걱정이 되기는 했다.

한국은 좋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점점 어려워져 갔다. 미국은 지역마다 마이너 인종을 배려하는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하니 그런 곳을 뚫어보라 조언했다.

영어도 딸에 비해 신통치 않던 아들은 영어도 아이들 걸음마 배우듯 아장아장 걸어갔다.

글 쓰기는 영 젬병이고  미적분등 수식만을 좋아했다.

그러다가 놀라운 일이 터졌다. 그 해 겨울 미국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나 다 합격했는 데 어데로 가야하지" 미국에도 일류병이 있다. 대학교다.
사립인 브라운 대학과 미시간 주립대학 3학년 편입시험에 둘 다 합격하였다는 것이다.

자신이 경제학에 좀 재능이 있다고 판단한 아들은 유명대학 경제학과에 편입하기 위해 코피를 세 바가지나 흘리고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는 것이다.

커리지에서 A학점을 안 주는 교수를 설득하기 위해 일주일이나 쫓아 다녔다고 한다.
김 용 UN 어디 기관 총재가 나왔다는 브라운 학교가 좋은 줕은 나도 알았다.

"아빠가 돈어 없다. 한 푼이라도 학자금 싼 데로 가라"
"둘 다 비싸, 미국에서 좋은 대학은 다 비싸."
"그래도 한 푼이라도 싼 데로, 그런데 장학금은 없냐"
"문과에서 한국 학생들 장학금 주는 시절은 끝났어. 미국에서도 한국 유학생들은 어느 정도 경제적 기반이 있다고 보아. 중국 애들도 장학금 줄여가는데.

가나, 방글라데시 이런애들은 주지."

학벌 프리미엄이 최고라는 브라운을 뒤로 하고, 한푼이라도 아껴보려고 간 학교가 이용섭 광주시장이 유학간 U of M 이다.

아들은 늦 공부가 터졌다. 공부에 느닷없이 허천병이 든 듯 했다.
시험 답안지에 교수가 당신을 경탄한다는 글을 많이 써 줬다고 나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줬다.
Amazing,  Wonderful, Genius!

공부도 처절하게 하였나보다.

많은 책위로 핏물이 배여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터지던 코피는 성인이 되어서도 멈출 줄을 몰랐다.

미시간의 학비는 만만치 않았다.
주립대학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ivy 리그와 자존심 경쟁하듯 학비를 많이 받았다.
아르바이트도 좀 하는 눈치였지만, 워낙 학점 경쟁이 치열해 매달릴 수도 없었다.

아내는 교사의 경험을 살려 과외학원을 밤늦게 까지 운영하며 년 1억원 가까운 아들의 학비를 부치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다가 군 의무도 마치고,   군에 있는 동안 학비도 좀 장만해 놓을 겸 아들에게 귀국 명령을 내렸다. 군 운전병인 아들은 늘 군부대 동료들과 술 마시기에 술 사주기에  열중인 듯 했다.

그 와중에 나는 너무나 지역발전 일이 하고 싶어 자치단체장 선거에 덜컥 나섰다. 
안철수의 "생각" 책 한 권을 읽고 황야의 이리떼들이 득실거리는 선거판에 나선 것이다.

한 없이 어린 양 나는 안철수가 합당을 해버리자 길 잃고 헤매는 불쌍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선거공천에 낙방을 먹고 포기하려했으나, 한 여인네가 나를 공천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한 사실을 알아냈다.

반 정의하고 싸우는 일이라면, 죽음하고도 바꿀 각오가 되어있는 삶을 살아온 나는, 여인네의 만행에 맞서 승산이 별로 없는 무소속 출마를 불사했다.

아내는 말없이 나가 아파트를 저당잡혔다. 딸은 휴학을 하고 내려왔고 아들은 우여곡절 끝에 제대를 하고 합류했다. 감성이 풍부한 딸은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을 울렸다.

"일 잘하고 청렴한 우리 아버지를 일하게 해주십시요" 안명섭 선배님과 2인 1조가 되어 눈물 없이는 들 을 수 없는 유세를 하며 골목 골목을 누볐다.

아들은 냉정했다. 승산이 없음을 직감한 듯 했다.
그러다 선거과정에서 아들이 상당한 분석 능력이 있음을 발견했다.

상대방 후보의 헛점을 분석하는 글을 한번 써오랬더니, 국회의원 국정감사 자료보다 더 치밀한 보고서를 써 왔다.

기아자동차 차를 서구민에게 10%싸게 공급하겠다는 상대 후보 공약에는 분개를 했다.
지역기업을 사랑하기는 커녕 망치러 작정한 자라고 나에게 화를 냈다.
내 공약 마저도 실현가능성에 조금만 빈틈이 보이면 나에게 마구마구 화를 냈다.

아빠가 되면 서구가 발전하고 서구민에게 좋을 일이 많이 생기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잘 되지 않는 것이라고 애 늙은이 같은 소리를 김빠지게 했다.

돈도 있는데로 다 쓰고 노름 꾼 눈 뒤집히든 쓰고
마누라는 못 부르는 노래도 어디론가 불려나가 앵긴대로 부르고
딸은 연설하다 쓰러지고
모든 걸 다 걸어 보았지만 처음 부터 될 승부가 아니었다.

눈물겨운 투쟁이 악에 바친 사투가 27%득표였다.
사전투표 현장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투표하러온 사람들 대다수가 3분도 안되어 시장, 구청장 등 6명의  후보자를 찍어 놓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린다는 것이다.

무조건, 무조건 2번이었다. 무소속으로는 막대기도 꺾기 힘들었다.

후에 민선 6기 광주시민 선거 투표 행태 조사보고서를 보았는데, 무려 52%의 시민이 후보가 누구인줄도 모르고 2 번 민주당만 보고 찍고 나왔다는 것이다.

나로서는 참패였지만 주변에서는 많이 얻었다고 위로 했다. 집안은 초토화되었다.

남는 것은 빚과 신세밖에 없었다.
담배값도 목욕비도 없는데, 안 갚았다는 빚 독촉은 계속 날마다 날라왔다.
집안의 가훈이 "선거판에 뛰어들지 말라!"가 여러 집 있다는 것도 그 때 알았다.

아들은 못 마친 학업을 위해 미국에 가야 했으나 땡전 한 푼 없었다. 엄두가 안 났다.

손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선거로 못 살게 한 동생에게 메일로 다시 손을 벌렸다.
동생의 도움으로 아들을 비행기 태워 미국에 겨우 보냈다.

아파트 대출을 최대한으로 해 납부금을 보내고 또 동생에게 갚을 수 있을 지도 모를 돈을 꾸어 아들을 졸업시켰다.

이 때 미국에서,  아들은 아들나름으로 고생을 하였나 보다.

어느 날 "아빠, 이 세상에서 내가 팁을 가장 많이 받아낼 줄 아는 능력자야. 남녀노소, 인종 별로 공략법이 달라. 옷을 어떻게 받아 걸어주어야 하는지, 또 팁은 타이밍의 예술이야."

다른 종사자보다 3,4배는 더 받는 비상한 재주가 나에게 있다니까."
"그러면 왜 돈은 부쳐달라 했냐?"
"나도 돈 쓸 만큼은 써야지, 유학생 사이에서 자린고비 소리들으면 장래성이 있겠어. 인생은 투자야 투자. 아버지가 선거에 떨어 진 것도 평소에 투자를 안 했기 때문이야. 인생은 공짜가 없다고."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 주지 않았다." 그런 노래부르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술 많이 사 줘. 
공짜 점심이 없는 세상이라니까"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은 했지만, 취업은 쉬운게 아니었다.
아이비리그 명문대학 졸업 유학생만 해도, 한국에 쎄고 쎘다.

아들은 박현주 같은 사람에게 관심이 많았다.
나같은 가슴이 뜨거운 좌파의 헛점을 날카롭게 파고 들었다. 

자신이 게임이론에 일가견이 있음을 넌지시 자랑하면서 
분위기가 묘한 비엔날레 여자감독 신정아 와 스캔들을 뿌린 변 누구도 찾아가 만나곤 했다.

이 놈이 나하고는 전혀 다르게 돈 놀이, 현대판 사채업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마지막 라운드라고 했다.  7라운드. 골드만 삭스 최종 라운드에 올라간 것이다.

며칠 전 싱가포르에서 걸려온 화상전화 면접 6라운드를 통과한 후, 최종 라운드 2명중 한명 선택에  오른 것이다.

오랜만에 싱가포르에 다녀온 아들은 회사대표의 간곡한 위로의 편지를 받는 것을 끝으로 골드만삭스행에 실패했다.

정말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당신때문에 우리 임직원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이번을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는 레터가 집으로 전달됐다. 일주일이 지난 후, 피골이 상접해진 아들은  다시 또 혹독한  면접시험 과정을 거치느라  파 김치가 되었다.

6라운드를 마친 뒤, 며칠 후 회사대표로 부터 직접 전화가 왔다. 뉴욕 쪽 사투리가 많이 섞인 발음이라 알아먹기 힘들어 아들에게 얼른 전화를 바꾸어 줘 버렸다.

내가 한 말은 "Wait a moment!"밖에 없었다.
"당신과 우리는 한 가족이 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어디서 들어본듯한 JP Morgan,  아들이 들어간 회사다. 
초봉이 공무원 30년 내 연봉의 두배는 된 듯하다.

일은 무지무지하게 부려묵으면서, 대우는 자긍심과 자부심을 안 잃도록 최선으로 대해준다.
나와는 달리 올빼미 형인 아들은 새벽에 못 일어난다.

지금도 애미는 6시면  아들을 지각하지 않게 서울의 모범택시를 부르고 아들을 깨운다.
이야기가 이상하게 가 부렀다.

원래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워진 경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팀문화를 과감히 도입하자는 것이 글을 쓰려는 의도였다.

어쩔 수 없다. 다음에 쓰는 수밖에.

여인의 미모도 절정이 지나면 꺾이듯
더위도 지가 한 철이지 별 수 없을 것 입니다.

더위에 지지말고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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