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산다는 것, 머리로 산다는 것”
 

행여 오랜 세월 부어 탄 곗돈을 꾸어줘야 될 일이 있거든, 머리로 사는 사람한테는 주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화장실 들어 갈 때와 화장실 나올 때 마음이 머리로 사는 사람은 많이 다르다. 

가슴으로 사는 사람은 출세도 느리고 요령머리도 부족하고 갑갑하다. 보증을 잘 못 서  쪽박을 찬 사람을 보면 가슴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  바보들이 많다.

머리로 산 사람은 ‘잔 머리’가 많고, 가슴으로 사는 사람은 ‘잔 情’이 많다.

머리로 사는 사람은 저는 좋고 남이 피곤하고,  가슴으로 사는 사람은 남은 좋고 자신은 피곤하다. 

적당히 섞이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하기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을 섞어서 산다. 한 가지로만 살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잔머리를 잘 굴려 사는 것에 맛들이면 점차 머리만 써서 사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문제다.
점점, 점점 가슴으로 사는 것하고는 멀어지려고 한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 갈수록 머리로 살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머리로부터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는 장구한 세월과 엄청난 노력과 각성이 없이는 어렵다. 

대신 가슴에서 머리로 올라가는 것은 시간문제고 쉽게도 그리 가버린다,

주자가 말하는 인간이 지녀야 할 좋은 마음 四端 즉 仁, 義, 禮, 智에서 우러나는 惻隱之心, 羞惡지심, 辭讓지심, 是非지심 중 가장 먼저  動하는 것은 惻隱之心이다.

시비지심만 좀 빼고 수오지심과 사양지심도 가슴에서 비롯된다.
사단의 발로는 측은지심으로부터 시작되니, 좋은 세상은 가슴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은 의미심장한 말이다.  

‘차가운 두뇌, 뜨거운 가슴’을 요구하던 서양도 최근 인재를 가슴이 뜨거운 감성형 인간으로 보고 있다. 

이기일원론의 입장이나 관점에서 보면 가슴이 머리를 지배하는 세상이 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문제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 유독 한국은 더, 가슴은 없고 머리로만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출세하고 돈도 많이 벌고, 세속적인 기준만 놓고 보면 잘 나간다는 것이다. 

머리로 사는 사람들은 눈치가 비상하다. 자신에게 무엇이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 줄을 본능적으로 잘 알고 발달되어 있다. 눈알도 잘 굴린다. 눈도 가늘게 찢어진 유형이 많다.
사랑도 계산을 하며 철저히 주판을 튕기고 난방비도 안주고 즐긴다. 포커도 잘 친다.  개평도 잘 안준다. 

잘 나가다가 최근 홍역을 치루고 있는 이재명도 김부선이라는 임자를 잘 못 만나 재수 없이 뭣을 밟았지, 그의 잔머리 실력은 워낙 출중해 김혜경이한테 잘 들키지도 않는다. 

머리로 사는 이들은 머리로 사는 들끼리 잘 통한다. 
서로 끌어주고 땡겨 주고 ‘연빙 부루스’다. 

가슴으로 사는 이에게는 역겹지만, 그들끼리는 그렇지도 않은가보다. 

가슴으로 사는 이들을 ‘바보 같은 친구들’이라고 업신여기고 흉보기까지 한다.

최근 광주시청 공직 사회에서 오직 잔머리로만 출세하여 꽤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후배를 보면서,

 머리로 사는 자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은 막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신은 출세했다고 희희낙락거리지만 세상에는 나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 친구들은 자신의 속내를 들키는 않는 비범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순진한 사람들은 다 이용해먹는 비상함이 있다.

 인간관계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지만 순진한 이들은 잘 모른다. 그가 점수매기고 있는 인간의 하수들은 그의 이러한 간교함을 모르는 데 비극이 있다.

눈치를 잘 보고, 기존 질서나 법률 제도를 잘 이용하고, 사회의 여론, 비판 등에도 민감하며 그가 공략하는 대상이다. 
 기자 등 힘 있는 자들에게 친목을 돈독히 하며 능란하게 처신한다.  

거의 대부분 출세를 한다. 세상이 상당히 예리한 눈을 갖지 않는 한, 이들을 수상히 여긴 경우는 별로 없다. 나쁜 짓을 하고도 감사에 걸리는 법도 없다.  

공무원으로서 해야 할 본연의 사업도 생색이 안 나거나, 하는 것이 힘들거나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보이면, 

난관을 뚫고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을 기필코 해내기는커녕 구실을 적당히 만들어 지원된 국비까지 반납해서 일을 없애버린 경우도 봤다. 

이런 친구들이 끝까지는 잘 안되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정의인데, 성공의 기간은 대부분 길고 끝까지 타인을 다 속이고 성공한 경우도 많다. 

가끔 들키기도 하고 가면이 벗겨지는 경우도 있으나 오히려 적다.

가슴으로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 손해만보고 사는 경우가 많으나 추억은 많다. 머리로 사는 사람들은 반대다. 

추억이 별로 없는 사람들은 돈과 지위를 쟁취했다하더라도, 그의 생애가 겉으로는 찬란했다하더라도, 가슴에 새겨진 마음의 보석상자는 없는 사람이다.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기름칠 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구십을 살았다하더라도 단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제한된 수명을 가지고 오래 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나날이 적고 착한 일을 하고, 때로 살아온 자기가 인연 맺은 사람과 추억과 과거를 간직하는 데 있다. 

이것 하나가 가슴으로 사는 사람들의 보람인 데 잃는 것이 너무 많아, ‘가슴으로 사라’고만 못하겠다.

머리와 가슴, 둘을 섞어서 사라고 하면 좋은 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머리 좋은 친구들은 필경 머리로만 살아 분다.

최근 자존심하나 때문에 수오지심을 느껴 목숨을 던져버린 노 회찬과 그의 죽음을 애도한 류 시민의 눈물 나는 글을 보면서 세상은 그래도 가슴으로 살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 회찬이 가슴으로 살지 않고 조금이라도 잔머리를 굴리고 살았더라면, 어느 누가 그의 죽음을 가슴 아파 하겠는가. 

머리 좋고 책을 한 수레나 읽었다는 류 시민이 글을 가슴으로 쓰지 않고 머리로 썼더라면 이 더운 복날, 내가 눈물을 한 바가지나 흘렸겠는가.  

사랑보다 더 슬픈 게 情이다. 정은 가슴에서 나온다.

電線이 아니라도 情의 흐름은 언제 어느 데서고 닿을 수 있다. 
노 회찬, 류 시민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살았기에, 그들과 나는 깊게 연결되었다.

노회찬의 冥福을 빈다. 그 곳 나라에서 우리 드보르작 첼로협주곡 들으며, 류 시민이 클래식 음악도 가르쳐주고 가슴으로 한번 정겹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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