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광주’ 발등에 불”, 오늘 지역신문 광남일보 ‘고 귀한’ 기자가 춘천 전주 등 다른 자치단체가  문화도시 만들기에 나섰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뽑은 기사제목이다.

나는 광주문화도시가 문화도시 간 월드컵 축구시합에서 예선 탈락하여 돌아온 줄 알았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나눔과 베품’ 정신적 질서의 고양이다. 

문화와 경제의 영역도 애매해졌지만, 문화가 경제보다 멋지다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문화는 경제와 달리 땅 따먹기 시합도 아니고 독점도 아니다.  문화가 높아질수록 이타적으로 간다. 서로 같이 가면 좋으니 고귀한 기자의 글은 많이 엉터리라고 보아야 한다.

광주 문화도시 만들기의 지향점은 백범의 ‘문화국가론’이고 ‘문화를 통한 홍익인간’ 사상의 실현이었다. 문화관광부 지역문화 정책 담당공무원의 목표는 ‘다른 데는 얼씬도 하지 말고 광주만 문화도시 만들기’에 있지 않다.
 
전 국토의 모든 도시를 문화도시화 하는 데 있다.

광주 문화도시 만들기는 필자가 21세기를 맞아 홀로 주창하였던 고독한 작업이고 외로운 싸움이었다. “‘예향 광주’라고 우리는 늘 상 부르면서, 도대체 예향이 우리에게 무슨 도움을 주고 있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우리는 진짜 예향을 만들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자기반성도 있었다. 계획 수립과정부터 너무 힘들었다. 나는 문화를 수단매체로 획기적 지역발전전략을 수립할 것을 요구했다.

지역의 문화관련 전공 교수 분들을 중심으로 30여명의전문가를 모셨지만, 광주 지역발전과 직결되는 내가 간절히 찾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연구했던 평면적인 이야기나 이론탐구에 맴돌 뿐이었다.  겨우 하나 건진 것이 이종범 교수와 주로 나누던, “점, 선, 면 확산” 지구 발전 전략이었다. 

용역 마감기간이 다 되도록 기대하던 연구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동림동 뒷산에 올라가 ‘북두칠성’을 보았다. 그리고 이 교수와 나누던 문화지구에 대한 구상을 일곱 개의 별에 담아 보았다. 

이것이 ‘7대 문화지구’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저 별은 도청 별, 저 별은 마륵동 별, 저별은 중외공원 별.

그 후 나는 북두칠성을 보다가 도청 별 하나도 제대로 문화지구로 빛나게 할 힘도 광주는 없으면서, 무슨 7개 별 까지나, 나의 생각이 무모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 때는 두 별만 살려보자, Two-Top 체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나는 2000년,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고 어렵게 탄생한 ‘문화광주 2020 Plan’을 들고 문화관광부 등 모든 관계기관 을 쫓아다니며, “광주를 시범적으로 문화도시로 만드는 데 한번 만 도와주십시오.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하면서 앵벌이 노릇을 했다.

 ‘현대미술관 분관 광주 설립’ 프로젝트 등 4,5개 사업을 제외하고는 중앙부처의 지원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일 개 과장이 뛰어다니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나도 지쳐갔다. 그러다 지역의 두 개 신문이 내 가슴에 비수를 꽂는 기사를 내보냈다. “광주시 문화도시 만들기, 빛 좋은 개살구, 말로만” 제목으로 기사를 내 보낸 것이다.

기자를 찾아가 항의를 했고, 당신들이 단 한번이라도 문화 도시 만들기가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러했느냐고 따지고 대판 싸웠다. 

그것도 광주의 대표신문이라는 언론사하고 싸우면서. 무식한 친구들하고 같이 못 놀겠다고 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자신들보다  몇 수 아래라고 여기던 신문사와 한 데 묶어 맹비난을 하는 내가 죽도록 싫었던 모양이다. 

 존경하는 시 간부님으로부터 몇 번의 화해 종용을 받았으나, 못 하겠다고 했다. 

중앙초교에 현대미술관 건립, 주요 거점 별 도서관 건립, 빛고을 시민 문화관 설립 등 몇 개의 프로젝트만 살았고 다른 사업은 예산지원도 관심도 얻지 못했다.

나는 패배를 인정했다.  미국 교육 연수를 자청해서 선언하고 광주시청을 떠났다. 미국에 있던 2002년 여름,  광주 민주당에서 메일 하나가   왔다. “당신이 했던 문화광주 2020 계획”을 2page로 요약해 급히 보내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짐작 가는 데는 있었으나, 아무 말도 않고 2장으로 큰 줄거리만 보내 주었다. 강운태 당시  민주당 시 지부장이 노무현 후보에게 공항에서 광주공원 유세 현장으로 오는 차 안에서 건의했다.
“부산은 ‘해양수도’, 대전은 ‘과학수도’, 그러면 우리 광주는 ‘문화수도’ 하나 만들어 주십시오.”
“내가 뭔지는 잘 모르겠소만 행정의 달인인 강 지부장께서 그렇게 하라면 하리다” 

노무현 후보는 특유의 카랑 카랑한 목소리로“ 존경하는 광주시민 여러분! 저는 위대한 광주시민이 하라믄 하고 하지 마라믄 안 합니다. 시키믄 시킨 대로 합니다. 여러분 께서 광주를 문화수도로 만들어 주라 카니까 제가 광주를 문화수도로 만들겠습니다. 여러분!”  

잊어버리고 있던 노무현 대통령을 문화수도를 안할 수 없게 큼 만든 시장은 박광태 시장이다.
“대통령 님, 광주시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의 그 날 공원에서 한 약속과 선물을. 녹음까지 해 놨습니다.”

“그래요, 챙겨봐야 쓰겄소. 잊어 묵도 않고 징 헙소, 참 거시기하요” 

노대통령은 안 헐라고 발버둥치는 이창동 장관 등 문화관광부 측을 윽박지르기도 하고 구슬리기도 해서 문화의 도시 광주 사업의 문을 열어 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광주문화도시 만들기는 국책사업으로 채택되었고 어찌됐든 광주시가 국가로부터 가장 많은 지원을 받은 국가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첫 단추부터 잘 못 꿰어졌다고 본다. 

이종범교수와 나는 철저한 실사구시 파다. 그래서 광주문화 도시 만들기를 ‘문화경제주의’의 구현에 두었다. 예술이 갖는 특성인 “투시력, 새로운 접근, 원형력, 생명력”을 최대한 살려 창조력과 상상력이 풍부해진 광주 사회를 만들어,

문화와 경제의 경계를 허물기도 하고 또 통합하기도 하면서 문화예술을 지역발전의 동력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문화예술이 갖고 있는 여러 기능과 가치 중에서  당대의 시점, 당대의 여건에 가장 필요한 것들이 발휘될 때만이 최대의 효용이 있다”는 나의 지론 때문이었다.

박물관을 전공한 분이 지휘하게 된 계획은 당초 나의 구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으나, 실제 실행단계에서는 문화를 비교 연구하고 정리 보전하는 학문 연구기관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이종범 교수와 나는 어떤 발언권도 갖지 못했고, 가끔 60여 억의 국비를 들여 수많은 용역을 수행하는 연구원들에게 자문해주는 정도가 전부였다. 

나는 그 후의 수많은 문화도시 만들기 일들이 ‘국립 아시아 문화의 전당’을 짓는 하드웨어 구축 일을 빼고는 “숙제하기, 제시간에 일 마치기, 과업 완수, 책잡히지 않기” 등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감을 지울 수가 없었다.

광주시의 소극적, 문제나 없기 식의 태도를 보면서 “무엇하러 내가 이런 발상을 하였던가.” 땅을 치고 후회했다. 문광부도 정말 광주문화도시 만들기를 하고 싶은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것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자기 고향도 아닌데 누가 미치겠는가.

‘문화예술’이란게, 참 묘한 특성이 있어서 미친 자가 없이는 잘 안 된다. 적어도 김동호 부산 영화제 지휘자 정도는 나와야 된다.

나는 광주문화도시 만들기가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갈 길을 못 찾고 헤매고 있는 것은 광주를 문화도시로 만들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가진 자가 없었기 때문으로 본다. 이런 고차원의  복잡한 일이 되면 ‘미치지 않고는 미치지 못한다.’

광주 문화도시 만들기가 제대로 궤도를 타서 좀 이루어졌으면 여러 도시들에게 많은 지혜를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광주 문화도시 만들기는 아직까지 보여 준 것도, 보여 줄 것도 없다.

춘천, 전주, 창원 등이 문화도시 만들기에 본격 뛰어들 참인가 보다. 세계 어느 도시든 경제적으로만 부유한 도시는 그리 태깔이 안 난다. 도시가 폼을 재려면 문화도시이어야 한다.

그러니 어느 누가 문화도시에 욕심을 안 내겠는가.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고 춘천이나 전주가 광주보다 현실적으로 더 문화를 지역 발전 촉진 요소로 잘 쓸 가능성이 높다. 

두 도시다 문화적으로 저력이 있는 곳이다. 창원도 만만치 않다.

광남일보 고귀한 기자 생각과는 달리, 문화는 누가 하라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하지 마라고해서 안 되는 것도 아니다. 전형적인 내발적 지역발전의 급소이다.

간절하고 정직하고 진정성을 담아 앞으로 걸어 나갈 때만이 문화가 사람들을, 도시를 이롭게 하여 준다. 한 때 광주도 문화산업의 비중이 커졌다고, ‘문화가 광주를 밥 먹여준다’는 천박한 논리가 유행한 적이 있다.

문화는 그리 쉽고 만만한 것이 아니다. 

가수가 2019년도에 히트곡 2개를 만들어 돈을 벌겠다는 각오가 과연 말이나 되는가. 물론 문화예술이 경제적 재화창출이나 경제적 가치를 증대하는 데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질 것이고,
기회도 많아질 것이다.

우선 시민을 행복하게 하는데 문화예술이 널리 쓰여야 한다. 시민들이 문화 예술적 삶을 즐기고, 도시 전체를 문화 예술적 분위기가 흐르게 만들고, 젊은 예술인이 몰려오고, 그러면 문화산업도 발전되고 돈도 벌게 될 것이다. 

 다른 산업과 달리 의도적, 계획적으로 문화산업을 육성 발전시키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다.

일단 돈을 벌려는 노력은 차라리 관광이 낫다. 문화예술과 관광은 서로 주고받기도 한다. 제발, 지역 언론이나  광주시 정책 담당자들은 문화예술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좀 있었으면 한다.

문화예술이 어쩔 때는 경제적 속성이 있다가 어쩔 때는 경제와 상당히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문화예술은 본인이 깊이 그 세계에 천착하지 않고는 이해가 매우 어렵다.

정부는 할 만큼 해줬다. 이제부터는 광주의 문제다. 

미친 듯이 광주를 문화예술도시로 만들 마음이 없으면, 문화의 전당을 차라리 창원에 옮겨 주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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