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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조 이야기]"장성 남면...울 아부지의 마지막 꿈이 서리던 곳!"

제 아버님은 80년 9월 장성남면국민학교를 마지막으로 교장선생님을 그만 두셨습니다.
저는 그 때 군대 생활을 하고있었는데, "오월광주"를 겪으며 아버님은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휴가를 나와 뵈면, "전두환, 고 놈 참 고약한 놈이네" 하시며 연신 담배를 피우셨습니다.
그러시다 정년을 5년이나 앞두고 사표를 내고 오셔버렸습니다.

어머님이 아버지를 평생 "웬수"로 부르고, 동아일보 신문까지 끊어버리는 전사로 만든 장본인은 아버님 바로 당신이십니다.
아버님은 늘 너무나도 중요한 일을 늘 혼자  너무 쉽게 결행하셨습니다.

'대학교 다니는 자식들을 둘이나 두고, 이게 뭔짓이요, 뭔짓! 전두환이가 월급도 좀 올려주고 인자 포도시 살만 한께 애기들 놔두고 전두환이 밉다고 사표를 써부러요."

해남 두륜산 밑 논밭 많은 지주 아들로 자란 아버님은 광주 서중학교를 극작가 차범석, 임피부과 임선호 선생님 등이랑 같이 다녔습니다.

동창 중에 6.25때 월북하였던 한 분이 일본을 거쳐 광주에 오신 적이 있습니다
아버님은 임선호 피부과 원장등 친구들을 급히 모아 몇 날 몇 일을 술자리를 마련하더군요.

중학교 1학년인 저는 저 분이 "혹시 간첩"아닐까 생각했습니다만, 신고같은 짓은 안했습니다.
"중학교 때 차범석이 보다, 글을 더 잘 쓴 친구야. 훌륭한 친구지. 아직도 문학소년이더라.
사회주의는 마음을 오염시키지 않는 특징이 있나 봐.

일본에도, 북한에도, 한국에도 있을 수 없는 딱한 신세가 되어버렸어. 친구들이랑 몇날 몇 일 대책을 논의중이다"

자존심이 무척 강한 아버님은 평생 남에게 부탁을 한 번도 안 한것 같습니다.
할아버지가 세운 북일초등학교의 교장선생 추천으로 서중학교에 진학하시고, 할머님의 군대 안보내려는 작전으로 사범학교로 가더니, 군대도 면제받고 고향 국민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인 교사들이 해방으로 물러나고 스물 세살태부터 교장만 하셨고 평생 교장만 했습니다.
북평학교를 비롯, 해남 마산, 남창, 이진, 달도 등 아주 경치좋고 시골스러운 학교만 전전하셨습니다.

교직에 있는 후배분들께서,  선배분이 너무 광주집과 멀리 떨어진 해남시골에만 계신다고 옮겨주신 학교가 화순에서 벽지 수당이 나오는 이서국민학교입니다.

눈이 쌓이면 차가 끊어져,  토요일 오후면  무등산을 넘어 백운동 까치고개 집에 까지 걸어오셨습니다. 화순에서 조금 있다,  아버님을 따르던 후배 인사 장학사분이 또 옮겨주신 학교가 장성 남면 서 국민학교입니다.

말이 거의 없으셨습니다.

매일 부쳐져 오는 동아일보를 읽거나 세계 사상전집, 그렇지 않으면 해남의 향토사를 연구하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저의 학생운동으로 압박도 좀 받은 눈치였지만, 저에게 무어라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 

6.25전후의 아픈 사회상을 이야기하며 "사회운동을 하더라도, 미움을 버리고 사랑의 마음을 잃어서는 안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국민학교 교육이 독서, 체육, 음악, 미술 중심으로 가아 한다고 생각하셨나봅니다.
그 어려운 학교살림 형편에도 불구하고 운동부를 만들어 집에 있는 쌀을 다 퍼갔습니다.

학교 운동부가 소년체전 예선이라도 통과하면 못 먹는 술을 드시며, 자식 서울대학교 합격한 것 만큼이나 기뻐하셨습니다.

 먼 훗날 학교 관사에 홀로 지내다 젊은 시절의 늦은 겨울 밤 쓴 "문학노트"를 한번 봤는데, 백석, 청록파, 김동인 등의 글을 읽고 난 느낌을 국민학생 독후감 쓰듯 써 놓으셨더군요.

제가 고교시절부터 학과 공부하고는 아예 담을 쌓아 일고에서 왠만하면 간다는 서울대학교를 못가고, 부잣집 자식들이 다닌다는 연세대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돈도 경제고 아무 관심이 없고 고교야구 시합소식에나 관심이 있는" 아버님의 경제적 무관심에 맞서, 자식 교육 욕심하나로 평생 옷 하나 안 사입고 몸빼입고 악착같이 살면서  계돈을 부은 강진도암 논정댁 울 엄마의 공헌이 큽니다.

아버님은 인덕은 쌓았는지, 제가 행정고시에  합격 한 후 혼담이 오가면, 그 쪽 집에서 저에 대한 관심보다는 "신교장 자제라면 안보고도 보내야지라"고 많이 하셨다 더군요.

그날도 늦 겨울 마지막 눈이 왔습니다. 장성은 눈이 많이 오더군요.

아버님 고집은 황소고집입니다. "씨득 소" 입니다.

어머님의 눈물겨운 호소에도 불구하고, 붓글씨로  한 번 쓴 사표는 불변이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남이 아무도 안 허는 일을 왜 하요?"
"내가 안 하믄 누군가 한 사람은 내야 한 단 말이네. 전두환이도 싫고"
"그게 왜 당신이 되어야 하냐고, 병신, 등신"
욕에 가까운 어머님의 성화에도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 학교에서 마련해 준 명예퇴임 식장에서 아버님은 밤새 혼자 쓰신 퇴임사를 읽다 잠깐 눈물을 보이시더군요.

김양중을 알게 된 이후, 평생 취미이자 소일거리이던 야구 중계를 안 듣던 묘한 일이 벌어진건 당신이 80대 중반이 지나서부터 입니다.

왜 안들으세요.? 야구 중계를.
"이제, 한국 야구는 잘 모르겠어. 기억이 안나. 대신 일본야구는 기억이 나서 듣고 있다."

아버님은 서서히 젊은 시절을 제외하고는 기억을 잃어가고 계셨습니다.
그 대신 어린 시절 배웠던 일본말 기억은 또렷하게 간직하고 계셨습니다.

마지막 효도로 생각하고 목욕을 자주 모시고 갔는데 앙상한 엉덩이와 다리가 제 가슴을 때렸습니다. 한 참을 손주와 손녀의 이름을 헤깔려하며, 급기야는 제 동생과 저도 구분을 잘 못 하셨습니다.

며느리에게는 정을 많이 주었는지. "솔이 애미, 솔이 애미"하시며 많이 찾으시더군요.

퇴직 이후 아버님을 구박만 하시던 어머님도 당신이 좋아하시던 동백이 지던 날 떠나가셨습니다. 아버님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병원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가끔 병원의 간호원과 일하는 분들을 소집시켜 종례를 하셨습니다.
요양시설 종사자로 지녀야 할 마음자세를 강조하시고 최근의 잘 못된 점들을 지적하셨습니다.
종례도 뜸해지고 짝 잃은 외기러기처럼 반년을 보내시던 아버님도 어머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어제는 "자연 방사 닭 키워 국민들에게 유정란 매일 2개씩  먹이기 운동"2호점으로 유력시 되는 장성 남면의 한 복숭아 과수원에 갔습니다.

장성 축령산 사과 과수원 토종닭 키우기에 이은 제 2탄입니다.
닭이 달콤한 복숭아를 다 조사먹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우려만 빼고는, 내년 초부터는 복숭아 과수원에서 크고 자란 닭, 도계 란의 향긋함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습니나.

그러다, 장성 남면에 끝없이 펼쳐진 감나무 밭을 보다가 심장을 두드리는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나. 이 감나무 과수원에 닭을 키우자.

이 넓은 감나무 과수원이 골치 덩어리다. 감 거저 따가라해도 따 갈 사람이 없다.
그렇다면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이 버림받은 감나무 과수원에 생명을 불어 넣자.

떨어진 감, 그리고 감식초를 먹고 자란 닭과 그들의 자식 달걀! 얼마나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인가. 광주에 대부분 사신다는 땅 주인들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노인분들 일자리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달걀도 먹고 닭고기도 먹고 감자 고구마 옥수수 양파 보리 수수도 심어 먹자.

랄랄라 랄랄라.

나로 인해 광주시민들이 좋은 먹거리를 갖게된단다. 건강해진단다. 
기아타이거스도 달걀도 먹고 닭도 먹어 챔피언을 다시 찾는단다.
노인분들도 행복해하고 울 아부지처럼 치매에 안 걸린단다.

장성 남면, 울 아부지의 마지막 꿈이 서리던 곳!

난 그 곳의 버려진  감나무 농장을 닭들의 천국으로 만들어,내가 사랑하는 이 많은 분들에게 행복을 전달할 꿈에 젖어 비오듯이 땀을 흘렸다.

랄랄라 랄랄라.

감나무 과수원이 넓기도넓다. 여기도. 감나무 밭, 저기도 감나무 밭.
노인 일자리 100개, 청년 일자리 20개는 문제도 없겠다.

신광조  shintmr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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