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의 일생

애호박은 꼭 애기들 넙떡지 같다. 유순하고 야들 야들하다. 오월이 오면 그들은 나에게 입맞춤한다.

꼭 새우젓하고 같이 온다. 양파 좀 같이 넣으면 달짝찌근해진다. 너무 순해서 양념도 조심스럽게 한다. 빨간 고추로 멋을 내보기도 한다

나는 애호박처럼 내말을 잘 듣고 부드러운 키스를 해주는 여인을 만난 적이 없다. 애호박이 여인네의 속살이라고 느낀 것은 바지락회무침 때문이다.

나는 강진군 칠량면 청자식당의 막걸리식초에 무친 바지락과 애호박의 그 기막힌 궁합을 잊지 못한다.

곁에 나온 바지락 국에도 애호박이 들어있다. 애호박은 바지락 육수를 수줍은 처녀처럼 머금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 홀로 그 식당에 들렀다가 도암 논정댁 울엄마 손맛과 너무나 똑 같았다.
울컥한 생각에 잎새주를 세병이나 마셨다.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비에 젖었고 바람에 날렸다. 꽃 비가 가슴에 내렸다.  산길에 들어갔다가 어머니가 부르던 '바윗고개'노래를 불렀다.

여름이 짙어지면 풋호박이 제 철이다. 갈치찜 고등어 찜에 들어간 호박은 해체주의가 답이다.

이제 깡다구가 생긴 풋호박은 애호박과 차원이 다르다. 한 입 두툼이 입에 물면 육즙이 침샘을 자극한다. 갈치와 어우러진 그 맛은 빨간 고추, 고구마대와 함께 춤춘다.

돼지고기와도 풋호박은 잘 어울린다. 된장국과도 무척 잘 어울린다. 돼지고기는 겨울에는 김치와 여름에는 호박과 잘 어울리니 변덕쟁이다.

풋호박에 적당히 비게가 있는 돼지고기를 좀 두툼하게 썬다. 된장기 좀 풀고 고추장도 얼큰해지라고 같이 출전시킨다.

여름에는 풋 호박도 좋지만 몸에 좋기는 호박잎이다. 젓갈 쌈장에 한 잎 싸 먹는 맛이란!

가을이다.
작년에는. 서리가 올 때까지 늙은 호박을 따지 않았다가 남김없이 도둑을 맞았다.

쥐생원도 몇 개를 갉아 놓았다. 뭐 내가 키운 것도 아니고, 서창에 사는 김씨가 거저 먹으라고 준 것인데.

몇개를 따와 아파트 배란다에 진열하니 갑자기 부자가 된 것 같다. 호박 몇개에 호들갑이냐 하겠지만, 가슴 저 편이 차오른다.

벌써 호박죽 끓는 달짝지근한 냄새가 코끝에 아른댄다. 신장이 좀 안 좋은 진석이, 철수를 불러야겠다.

옛날 백조레스토랑 여주인은 지하생활로 신장을 버렸다가 호박으로 콩팥을 다시 살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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