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주의(印象主義, Impressionism), 자연과 빛의 새로운 발견

19세기 초 유럽의 화단에 사진의 등장으로 미술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다. 1839년 다게르(Daguerre, 1787년~1851)의 사진전을 보고 사람들은‘회화는 이제 끝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진술이 개발된 뒤에도 사진을 이용한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를 통해 회화가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과 함께 인상주의에 영향을 준 것은 일본의 목판화 우끼요에(浮世繪)이다. 일본말로‘우끼요’는‘그 당시’를 뜻한다. 우끼요에는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8) 귀족과 서민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풍속화이다. 1867년 프랑스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일본 도자기를 감싼 포장지에 불과했던 우키요에(원색 목판그림)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주목받게 되었고, 이러한 자포니즘(Japonism) 열풍이 인상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어떤 대상을 보았을 때 포착된 느낌을 인상(印象, impression)이라 한다. 1860년 초

모네, <인상, 해돋이>, 1872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근대적 회화운동이 인상주의다. 1874년 파리 사진작가 나다르(Nadar, 1820~1910)의 작업실에서 모네, 피사로, 드가, 르노와르, 세잔 등의 젊은 화가들이 살롱이 거부한 작품으로 단체전을 열었다. 기자 루이 르루와가 모네의 <인상, 해돋이>를 보고 대충 인상만 그렸다는 비판의 말에서 인상주의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인상주의는 르네상스 시대의 조형요소인 원근법, 균형 잡힌 구도, 이상화된 인물, 명암대조법 등에서 벗어나 색채와 빛의 시각적 감각을 표현한다. 인상주의 회화의 특징은 첫째, 사물의 시각적 고유색(Local color)을 부정한다. 둘째, 팔레트(Palette)에서 혼색을 피한다. 셋째, 붓의 터치(Touch)는 색면으로 하지 않고 짧게 분할하여 사용한다. 넷째, 채색을 두껍게 발라 시각적 변화를 강조한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실내 작업실을 벗어나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의 물상에 주목한다. 그래서 그들을 외광파(外光派)라 부른다. 대표작가로는 마네(Edouard Manet, 1832~1883), 모네(Claude Monet, 1840~1926),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 시실리(Alfred Sisley, 1839~1899), 드가(Edgar Degas, 1834~1917), 르노와르(Auguste Renoir, 1841~1919) 등이 있다.

모네, 변화하는 자연을 화폭에 담다

모네는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나 노르망디 지역의 르아부르에서 성장한다. 그곳에서  화가 부댕(1824~1898)의 권유로 야외풍경을 그린다. 1859년 파리로 가 피사로, 시슬레, 르노와르 등과 교제하였고, 후에 이들은 인상파의 중심인물이 된다.

첫째, 아르장퇴유기(Argenteuil, 1872~1878): 세느강변 아르장퇴유에서 7년간 머문다.

사람들이 뱃놀이하는 정경과, 강변의 카페들, 별장들, 공장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강렬한 빛, 물위에 어른거리는 햇빛과 반사광선의 사실적 묘사로 인상주의 기법의 특징을 보여준다. 대표작으로 <인상, 해돋이>(1872), <기모노를 입은 여인>(1876)등이 있다.

둘째, 베퇴유기(Vetheuil, 1878~1881): 세느강이 흐르는 곳이 보이는 베퇴유로 옮겨 4년간 머무른다. 아내 카미유의 죽음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힘든 시기였다. <세느강의 해빙>은 세느강의 해빙의 인상을 한 순간에 포착하여 그린 그림이다. 대표작으로는 <세느강의 해빙>, <햇빛과 눈>(1881), <해바라기>(1881)등이 있다.

셋째, 지베르니기(Giverny, 1883~1926): 1881년 10월부터 머물렀던 프와시를 떠나 지베르니에서 생을 마친다. 1889년 모네는 조각가 로댕(1840~1917)과 함께 파리의 조르주 쁘띠 화랑에서의 개인전을 통해 미국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1892년 루앙 대성당 연작을 하면서 두 번째 아내 알리스 오슈데에게 쓴 편지에서 “날마다 뭔가 첨가할게 생기고,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문득 발견하기도 한다.”이렇듯 그는 빛의 미세한 부분까지 포착하여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모네는 1922년 백내장으로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26년 12월5일 폐암으로 86세에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으로는 <건초더미 연작>(1890~1891), <포플러 연작>(1891), <루앙 대성당 연작>(1852~1894), <수련 연작>(1899~1926)등이 있다

수련(Water Lilies), 빛과 수련과 물의 조화

모네는 1890년 친구인 미술 비평가 귀스타브 제프르와(Gustave Geffroy)에게 보낸 편지에서 인상주의 미학관을 읽을 수 있다. “지금은 각기 다른 효과를 내는 연작에 몰두하고 있다네.

모네, <수련>, oil on canvas, 1914~17

그런데 요즘은 해가 어찌나  빨리 뜨는지 따라잡을 수 없다네.……그림을 그릴수록 절실히 느껴지는 것은 순간성과 그림전체를 감싸는 색조, 똑같은 빛의 입사각을 얻기 위해 열심히 작업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특정한 대상을 정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화폭에 옮겨 놓고 있다.

1893년에는 지베르니에 일본풍의 다리와 연못을 만들고 수련을 키우면서 빛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연못의 모습을 화면에 담는다. 1895년 무렵부터 화면전체를 이용하는 <수련> 연작을 시작한다.

모네의 <수련>(1914~17)은 화면에 필치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독특하게 주변의 나무와 풍경은 그리지 않고 물의 표면에 비친 나무와 풍경을 담았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물에 비친 빛의 효과, 대기의 변화, 물빛 등을 표현하고 있다.

모네는 <건초더미>를 통해 현대 추상주의 아버지로 불리는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에게 영향을 주었다. <수련>등에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과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등의 추상표현주의와 연결된다. 화면 전체가 특별한 중심이 없는 방식인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 올 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의 선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모네의 인상주의가 20세기 추상주의 발전을 가져오는 방법적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회화사적 의미가 크다.

<참고하면 좋을자료>
버나드 덴버 저, 김숙 역, 『인상주의 미술가』, 시공사, 2002
윌리엄 본 총편집, 신성림 역, 『화가로 보는 서양미술사』, 북로드, 2011
제임스 H 루빈 저, 김석희 역, 『인상주의』, 한길아트, 2002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동양미학전공)

경희대교육대학원 서예문인화과정 주임교수

김찬호  digitalfe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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