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주의(Suprematism), 구성이 사라지다

절대주의(絶對主義)는 진리, 가치 등의 절대성을 추구하는 이론이다. 미술에서 절대주의는 1913년 러시아의 화가 말레비치로부터 출발하며 극단적으로 단순화한 그림을 말한다. 말레비치는 1913년에서 1920년까지 추상화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까지 끌고 감으로써 추상미술에 확장성을 부여하였다.

말레비치, <태양에 대한 승리 무대 디자인과 오페라 장면>, 1913

말레비치는 1913년‘태양에 대한 승리’의 오페라 무대연출에서 구상 작업을 포기하고 단색의 절대성을 드러내는 작업을 시도하였으며 2년 후 시인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와 절대주의선언을 발표한다.

절대주의 미술의 특징은 첫째, 형식의 단순성, 둘째, 화면에 드러나는 인공적인 이미지, 셋째, 그림 자체의 사물성이다. 말레비치는 “나는 자신을 영(Zeoro)의 형태로 만들었고 무(無)에서 창조로 나아갔다. 그것이 절대주의고, 회화의 새로운 리얼리즘이고, 대상이 없는 순수한 창조다.”라고 말했다. 이는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모홀로 나기는 “미술작품을 만들기 위한 개인적인 탐닉은 대중의 행복에 아무 것도 공헌한 바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는 행위보다 그리고자 하는 내용이 중요하다는 의미로 ‘전화로 작품을 주문’하여 제작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말레비치(1878~1935), 모홀로 나기(1895~1946) 등이 있다.

말레비치, 이데아를 꿈꾸다

말레비치(Kasimir Severinovich Malevich, 1878~1935)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 미술학교와 모스크바 미술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1903년에서 1912년까지 인상주의, 야수주의, 상징주의 양식의 그림을 그렸다. 그는 1912년 파리를 방문한 후 피카소의 입체파와 미래주의 영향을 받았으며 페르낭 레제(1881~1955)풍의 기하학적 추상화를 발표하였다. 1913년 말레비치는 절대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추상형식을 만든다.

말레비치는 1913년 오페라‘태양에 대한 승리’에서 무대장치와 의상을 디자인했는데 이 경험이 회화작품에 영향을 주어 그림의 구조가 단순화된 형태를 보인다. 1919년 모스크바에서‘대상없는 미술과 절대주의’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고, 1년 후 미술가 집단인 우노비스(unovis, 새로운 미술의 개척자)를 결성한 말레비치는 절대주의와 관련된 프로젝트와 출판활동도 하였다. 1924년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그의 사상은 반혁명주의 정신을 불어넣는다는 혐의를 받았으며 절대주의를 버리고 사회주의 이념에 부합하는 사실주의적인 작품을 할 것을 강요당했다.

<말레비치 장례식(위), 병실(아래)의 모습>

1930년 말레비치의 회고전이 키예프에서 열렸으나 곧바로 폐쇄되고 탄압을 받았다. 1932년 소비에트 혁명 15주년 기념 전시회에서 그의 작품은 ‘반체제’라는 딱지가 붙은 채로 전시되는 수모를 겪었다. 당국의 철저한 통제 때문에 말년에 그는 평범하고 전통적인 그림을 그렸으며 1933년 암 진단을 받고 2년 후 사망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자기가 누울 관을 디자인 했는데 관 뚜껑을 검은 사각형과 원으로 장식했다. 대표작으로는 <검은 사각형>(1915), <흰색 위의 흰색 White on White〉(1918) 등이 있다.

 

검은 사각형, 추상으로 이끌다

말레비치, <검은 사각형>1915, Oil on Canvas, 106x106cm, 1915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The Black Square>(1915)은 절대주의 선언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는 그가 추구하는 리얼리즘이다. 우리가 인지하는 사물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달라 보인다. 그림이나 사진도 대상을 완전하게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작품에서 말레비치는 사실적인 형상들에서 사실적이지 않는 것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하면 마지막에 남는 최소한의 형상으로 흰 바탕에 검은 사각형을 표현하였다. <검은 사각형>은 미술에서 절대가 있다면 무엇일까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1915년 형태의 영(Zero)을 지향한 10명의 작가가 모인 전시회‘마지막 미래주의: 0.10’에서 작품

<마지막 미래주의 0.10 전시>, 1915

<검은 사각형>이 전시되었다. 이 전시는 순수한 조형요소가 실재하는 대상보다 우위에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검은 사각형>은 러시아 정교를 믿는 가정집에 종교적 이콘(icon)을 모시는 자리에 걸렸다. 이는 말레비치가 <검은 사각형>에 부여한 절대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콘 자리에 걸친 <검은 사각형>은 러시아정교의 성상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말레비치가 죽은 후 러시아 미술가 연맹에 안치되었을 때 그의 머리 위 벽에 십자가 대신 이 그림이 걸렸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으면서 깊은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스티브 잡스가 개발한 아이폰은 흑백의 대비를 이루는 간결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며, 단순성, 명료성, 반복성, 사물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추구한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인 절대주의 선구자인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은 바로 미니멀리즘의 효시로서 중요성을 갖고 있으며 그의 예술세계는 20세기를 지나 현재까지도 미술과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하면 좋을자료>

사이토 다카시, 홍성민 역,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가지 힘』, 뜨인돌, 2010.
윌리엄 본 총편집, 신성림 역, 『화가로 보는 서양미술사』, 북로드, 2011.
진중권,『서양미술사 모더니즘편』, 휴머니스트, 2011.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동양미학전공)

경희대교육대학원 서예문인화과정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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