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출마로 주목받는 무소속의 대명사 박찬종 전 의원

 
▲ 1995년 혈혈단신 무소속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박찬종 전 의원  

안철수 교수의 서울시장 출마설이 나돌면서, 1995년 단기필마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권까지 근접했던 박찬종 전 의원의 사례와 비교되고 있다. 박찬종 전 의원은 당시 시종일관 지지율 1위를 지켰으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조직적 지원을 받은 조순 후보에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다. 안철수 지지층에서는 벌써부터 박찬종 전 의원 사례를 비교분석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박찬종 전 의원의 사례는 안철수씨의 진로는 물론 향후 제 3지대 정치세력의 성패 가능성까지 내다볼 수 있는 사안이다.

“지방자치제는 탈중앙정치를 의미하는 만큼 중앙 각 정파의 다툼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울시정을 비롯한 지방행정에는 이념대립이 아니라 정책선택과 아이디어만 필요할 뿐입니다.현재 소위 「3김」의 생각과 언행은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봅니다. 따라서 무소속후보가 지방행정을 잘 이끄는데 더욱 적당하다고 봅니다. 일본에서도 지방자치단체장의 80%가 무소속 아닙니까”

박찬종 전 의원이 1995년 4월 3일 서울시장 무소속 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박찬종 전 의원은 무소속 후보로 나서 돌풍을 일으켰다. 선거 약 한달 전인 경향신문사와 대륙연구소 공동여론조사팀이 95년 5월 12일 밤과 13일에 걸쳐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원식 전 총리(15.4%, 당시 민자당) 조순 전부총리(17.1%, 당시 민주당)를 크게 앞서는 31.4%로 단독 질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선거가 진행될수록, 조직력에서 앞서는 민주당 등에서 무차별 인신공격을 퍼부으며, 점차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선거 막판,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가 민주당의 조순 후보를 지지하면서 호남과 충청표가 결집, 결국 대세는 역전되고 말았다.

박찬종, 시종 지지율 1위 달리다, 조직력 극복하지 못해 석패

박찬종 전 의원은 97년 집권세력이든 DJP연합과 맞선 형국이 된 것이다. 당시 민주당은 집요할 정도로 박찬종 전 의원의 민자당 입당설을 흘렸다. 무소속 시민후보론으로 출마한 박찬종 전 의원에게 민자당 입당설은 치명적이었다. 이는 만약 안철수 교수가 무소속 후보로 나오더라도, 민주당과 한나라당 양 당에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벤치마킹할 수 있는 공격 수단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결국 최종적으로 민주당의 조순 후보가 41.5%, 박찬종 후보가 32.9%, 민자당의 정원식 후보가 20.3%로, 조순 후보가 당선되었다. 혈혈단신의 무소속 도전이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다는 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런 박찬종 전 의원은 안철수씨의 무소속 시장 도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미디어워치와 빅뉴스는 박찬종 전 의원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박찬종 전 의원은 이미 트위터에 안철수 교수에 대해 “무소속이라면 나서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문) 안철수 교수가 무소속으로 서울시장 출마를 고민한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답) 헌법 상 지방자치단체는 구체적인 금지 조항만 없을 뿐이지 정당이 개입하면 안 된다. 지자체에 정당이 개입하니까, 굳이 싸울 필요도 없는 것을 놓고 정치투쟁판이 되지 않는가. 이번 오세훈 시장의 주민투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점에서 안철수 교수와 같이 명망있는 분이 무소속 시민후보로 나선다면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문) 1995년 서울시장 선거에 무소속 출마했을 때의 상황을 안 물어볼 수가 없다. 시종일관 지지율 1위를 달리다 막판에 역전패했는데.

답) 당시 민자당의 정원식 후보의 표가 너무 안 나왔다. 여러 후보가 나오면 20% 안팎의 득표율로도 당선될 수 있는데, 여당 후보의 표가 안 나오다 보니 표 분산이 안 되었다. 만약 정원식 후보가 30%대의 득표만 했어도 당선이 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김대중의 민주당과 김종필의 자민련이 막판에 연합하면서 호남과 충청의 조직표가 움직였다.

문) 어떻게 해서 무소속 출마를 단행하게 되었나?

답) 예나 지금이나 지자체에는 정당이 개입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1995년 초에 당시 김대중 총재 측의 문희상 의원이 찾아와서 “민주당 공천 받으면, 조직, 자금 걱정없이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래서 “김대중 선생도 일본 상황을 다 아실 텐데, 일본은 정당이 무소속 후보를 지지하여 지자체 선거를 치르지 않느냐”며, 내가 무소속으로 나서면 민주당이 지지해주면 되지 않냐고 제안했다. 실제로 일본 도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의 경우도 무소속으로 3선을 했는데, 자민당, 공명당 등등의 정당이 지지한다. 후보 포스터를 보면 조그맣게지지 정당이 적혀있다.

자민련의 김종필 총재 측에서도 김용채 의원이 찾아와서 자민련 공천을 받으라 해서 같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또한 선거 전략상으로 내가 민주당이나 자민련으로 입당하면, 중도 지지층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문) 만약 당시 무소속으로 서울시장 후보에 당선되었다면 정치권에 어떤 긍정적 변화가 있었겠는가?

답) 일단 정치권에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YS 다음에 젊은 세대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지방자치가 실질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정당이 지자체에 개입하는 게 관례가 되어, 지방행정을 놓고 사사건건 정쟁만 벌어지고 있다. 나는 당시 당선되었다면, 지방의원들을 모두 무보수 명예직으로 전환하여, 실질적으로 지역 현실을 잘 아는 일반 주민들이 토론하면서 지자체를 운영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DJ, YS, JP 없는 지금이라면, 무소속 도전 해볼만 하다

문) 최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후보 매수 건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교육감 선거제도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답) 서울시와 경기도는 약 천만 명의 인구가 산다. 교육감 선거의 투표율을 보라. 변별력이 전혀 없다. 이런 자리까지 다 선거를 할 필요가 있는가. 지혜를 모아서 선출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문) 안철수 교수가 만약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답) 1995년에는 YS, DJ, JP 등의 권력이 살아있을 때였다. 지금은 그런 상황은 아니다. 안철수씨가 어느 정도 사명감을 갖고 출마를 고민하는지 모르나, 누군가 명망있는 분이 나가면, 기성 정당에 불신을 가진 중도층의 유권자 표심이 움직일 수 있다. 국민들도 이제 알 만큼 알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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