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Baroque), 개성의 눈을 뜨다
바로크 양식은 1580년경부터 1740년까지 전통에서 벗어나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회화를 말한다. 바로크의 어원은 일그러진 진주(眞珠)를 의미하는 바루카(barrucca) 혹은 바로코(barroco)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일그러진 진주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고전적 양식의 틀에서 벗어나 과장되고 왜곡된 형태를 보여준다.

17세기는 르네상스 시대에 싹튼 근대정신이 열매를 맺어가는 시대이다. 이 시기는 르네상스의 고전주의가 구축해 놓은 형식에서 벗어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시각에 주목하였고 미술의 영역을 삶의 일상으로까지 확장시켰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탈리아의 카라바조(Caravaggio), 플랑드르의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 네덜란드의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 스페인의 벨라스케즈(Velazquez)와 프랑스의 푸생(Nicolas Poussin, 1594-1665)이 있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의 회화의 특징은 명암법이다. 명암법은 빛과 어둠의 관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기법을 말하는데 빛을 뜻하는 키아로(chiaro)와 어둠을 뜻하는 로스쿠로(oscuro)의 합성어이며 이탈리아어로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라 한다.

레오나르로 다빈치의 명암법에 스푸마토 기법이 있다면, 바로크에는 테네브리즘 기법이 있다. 테네브리즘은 어둠이라는 뜻의 라틴어 테네브라에(tenebrae)에서 유래한 용어로 극단적인 명암대비를 사용하여 극적효과를 높였으며 그 시작이 바로 카라바조이다.

카라바조, 광기(狂氣)의 예술가
카라바조(Michelangelo da Caravaggio,1571~1610)는 이탈리아 카라바조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미켈란젤로였으나 르네상스시대의 미켈란젤로와 같은 이름이어서 태어난 곳인 카라바조를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는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시작을 알린 화가이다. 1592년 로마에서 델몬테가 등의 후원자들을 만나 정물이나 성 마태오의 생애를 다룬 그림을 그렸다. <성 바오로의 개종>(1601)은 로마의 산타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에 그린 작품으로 강렬한 명암대비법을 사용하였다.

그로인해 당시 대표적인 화가의 반열에 오른다. 1602년에서 1605년 사이에 그린 제단화들은 사실적인 그림을 그려 르네상스풍의 이상화된 종교화가 아니라고 비판받아 철거 된다. 특히 <성모의 죽음>(1602-3)은 기존의 이상적인 마리아가 아닌 살찐 몸과 부은 발을 가진 지극히 평범한 마리아를 묘사하여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다.

카라바조는 어린 시절에 동생을 시작으로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마저 잃는 비극을 겪었다. 어렸을 때 겪은 가족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그의 전생애에 영향을 미쳤다. 이런 청소년기의 성장배경이 광기의 카라바조를 탄생시켰다.

그는 난폭한 성격으로 1606년 5월 사소한 말다툼으로 한 남자를 살해하게 되고 사형을 피하기 위해 도망간다. 1607년 나폴리로 가서 활동을 계속하다 몰타 섬으로 갔고 그곳에서 예루살렘의 기사단 단장의 요청으로 <세례자 요한의 참수>(1608)를 그리게 된다.

이곳에서 성 요한 기사단에 가입했으나 선배 기사와 싸움을 벌여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탈출하여 나폴리로 간다. 1610년 로마에서 그에게 사면령을 내렸다. 그는 거인 골리앗과 젊은 다윗을 자신의 모습으로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1610)을 그린다. 1610년 열병에 걸려 파란만장했던 짧은 삶을 마감한다.

카라바조는“그리스 여인을 그리느니 차라리 버림받은 집시를 그리겠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근대 사실주의 회화의 길을 개척했다.

예수를 신성으로 그리지 않고 하층계급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렸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1598년경), <의심하는 토마>(1601-2)등이 있다. 1598년과 1606년에 그려진 다윗과 골리앗의 작품을 살펴보면 다윗은 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어 엄청난 힘의 소유자인 골리앗을 때려눕힌 승리자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카라바조가 말년에 그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610)은 빛과 그늘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카라바조의 지난(至難)한 삶의 여정을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자화상, 이중성을 담다
자화상은 화가가 자신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610)은 살인 이후 나폴리에서 사면을 받고 로마로 돌아가기 전에 제작한 그림이다. 젊을 때에 자신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자화상으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카라바조,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25x101cm, 1609-1610,

소년 다윗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몸집도 거대하고 무장까지 한 장수 골리앗을 무찌른다는 성서의 이야기를 작품화 한 것으로 카라바조는 살인죄에 대한 유일한 사면권을 가진 교황에게 바치기 위해 이 작품을 준비했다고 한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1610)에서 다윗의 얼굴과 골리앗은 동일한 얼굴이다. 골리앗을 내려다보는 다윗의 눈빛은 결연한 의지라기보다는 측은해하는 눈길이다. 젊었을 적 자신의 삶에 대한 회환(悔恨)과 지금의 처지에 대한 반성의 이중적 의미가 담겨 있다. 보통의 선과 악의 구분, 정형화된 선악의 표현에서 벗어난 아이러니(irony)한 작품이다. 카라바조는 다윗이자 골리앗인 이중초상을 보여줌으로써 죄악으로 가득한 자신의 폭력적인 본성이 영원한 형벌로 이어질 것 이라는 경계를 담고 있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이상의 시‘거울’과 닮아 있다. “거울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요마는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라고 말한다. ‘진찰하고 싶다’라는 말은 자신에 대한 연민과 염원을 드러낸다.

카라바조의 골리앗을 향한 다윗의 표정 또한“거울속의 나를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와 맞닿아 있다. 두 작품 속에는 어려움 속에서 끊임없이 자아에 대한 연민과 회복에 대한 작가의 고뇌가 담겨 있다. 현실의 삶은 힘들고 정신적으로 흔들리고 타인에 의해 상처 받기도 한다. 어린 시절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해가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통해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

<참고하면 좋을자료>

김상근, 『이중성의 살인미학 카라바조』, 21세기북스출판, 2016
사이토 다카시, 홍성민 역,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 뜨인돌, 2010
윌리엄 본 총편집, 신성림 역, 『화가로 보는 서양미술사』, 북로드, 2011
제르맹 바쟁, 김미정 역, 『바로크와 로코코』, (주)시공사, 1998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동양미학전공)

경희대교육대학원 서예문인화과정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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