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1일 해남군문예회관에서 있었던 ‘어란 노래 음반 발표회’ 무대에 선 구순의 박승룡 옹(중앙)

지난해 10월 1일 18시 해남군문예회관에서 ‘어란 노래 음반 발표회’에 이어 ‘제1회 어란여인 가요제’가 오는 29일 송지면 어란리 마을회관에서 열린다.

어란애의 작곡가 정의송 씨가 직접 참가하는 이번 가요제는 20여년 가까이 어란여인 발굴과 현창사업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박승룡 옹의 결실이자 어란여인 현창의 본격적인 시발이라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倭軍將 菅正陰 於蘭鎭 進軍(왜군장 관정음 어란진 진군)
慶長丁酉 小西巡 倭菅正陰 將兵屯(경장정유 소서순 왜관정음 장병 둔)
舞姬妖惑 於蘭鎭 旅抱情緣 間諜罠(무희요혹 어란진 여포정연 간첩민)

왜군 장수 칸 마사가게 어란진 진군하다

경장(일본 연호) 정유년 고니시 유기나가 순회하고
왜 칸 마사가게의 장병 주둔했다.

무희의 요염에 유혹되어 어란진에서,
여수旅愁에 겨워 정을 맺은 것이 간첩의 그물에 걸렸다.

이번 어란여인가요제와 관련한 어란여인을 노래한 이 시(詩)는 일제 강점기 해남에서 일본순사를 지냈던 사와무라 하찌만다로(澤村八幡太郞)의 유고집에 실린 것으로 이로부터 시작된 어란여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일본군은 1592년 4월 14일에 병선 700여 척에 나누어 타고 오전 8시 오우라항을 떠나 오후 5시에 부산 앞바다에 도착하여 그날로 부산포에 침입하는데 이렇게 임진왜란은 시작되었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1597년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하지만 임진왜란은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 포함한다. 이 왜란을 일본에서는 ‘분로쿠 케이초(文祿慶長)의 역(役)’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役)’으로 부른다.

세계 해전사에 길이 빛나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은 정유년 1597년 9월16일 오전부터 초저녁까지 해남 울돌목에서 133척의 왜선을 겨우 12척의 배로 완벽하게 물리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이를 따른 의로운 전라도 민초들이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은 승리였다.

명량대첩 이튿날인 1597년 9월17일 해남 어란 마을 앞바다에 한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이를 본 한 어부가 여인의 시신을 근처 소나무 밑에 묻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 여인의 무덤 앞에 석등을 세우고 불을 밝히고 넋을 위로 하였다. 지금도 매년 정월 초하루가 되면 동네주민 모두가 정성스러운 제사를 지내고 있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해남 어란진에 정박한 일본군 장수 ‘간 마사가게’는 이순신 장군이 보낸 간첩 즉, 자신의 애인 ‘어란’에게 명량해로의 출정기일을 발설하게 되고 어란은 김중걸을 통해 이순신 측에 전달되었으며 첩보를 받은 이순신은 곧바로 명량해전을 준비하여 결국 12대133의 싸움에서 이기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결국 명량해전의 승인은 ‘어란’여인의 정보가 큰 비중을 차지 한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문헌을 살펴보면, 명량해전 이틀 전인 1597년 9월 14일자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어란진에서 있었던 일로 김중걸이 왜에 붙잡혀 왜선에 감금될 때 ‘김해인’ 이라는 여인이 결박을 풀어주며 기밀을 제공했다‘며 첩보전에 관한 내용을 밝혔고, 조선왕조실록에 ‘선조 30년(1597년) 이순신은 왜선 중에서 여인으로부터 정보를 탐지하여 곧장 장계하였다’는 기록은 이를 확실히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

각설하고 이번 어란여인 가요제에 거는 기대가 크다.

'어란애’

작사 박승룡, 김문규
작곡 정의송
노래 정의송

 

매봉에 초생달이 떠오른 밤이면
여낭터에 산새소리 고요히 우네

가슴속에 한가득 오직 내나라
님의 곧은 그 절개 어이 헛되리

파도치는 물결위에 고이고이 떠가라
청순한 님의 향기 천년만년 흘러 흘러라

갈매섬 저녁노을 붉게불든 밤이면
만호바다 격랑소리 메아리 치네

끊어오른 분노를 바다에 던진
님의 곧은 그 충정 어이 헛되리

넘실대는 물결위에 고이고이 떠가라
님을 향한 모종소리 온누리에 울려 퍼지네

(후렴)청순한 님의 향기 천년만년 흘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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