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분배와 복지에 대한 해법은 과연 있는가?

복지수요를 충당할 재원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는 가운데 본보는 한양대 경제금융대학의 임양택 교수가 '한국인에게 고함'이란 글을 통해 한국의 복지문제와 재원조달 가능성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임양택 교수는 최근 시대적 화두인 복지와 분배문제에 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 해결 가능성을 제시할 수준의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뤘고 조만간 출판을 통해 세상에 알리겠다고 전해왔다. 

▲ 임양택 교수
피히테 총장의 「독일국민에게 고함」과 단재 신채호 선생의「대한의 희망」 및 도산 안창호 선생의 「한국개조론」

저자는 무려 26년 전 「외채위기의 극복과 자립경제로의 도전」(임양택(1985), 「외채위기의 극복과 자립경제로의 도전」, 한밭출판사) 에서 베를린 대학교 총장 요한 코틀리프 피히테(Johann Gottllieb Fichte)의 「독일국민에게 고함」(1807)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 적이 있다.

「자주독립을 상실한 민족은 시대의 조류를 자유스럽게 결정할 수 있는 능력까지도 상실한 민족이다. 만약 이와 같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 민족은 시대의 운명뿐만 아니라 시대와 더불어 그 민족 자체의 운명도 외세에 의하여 좌우되고 또한 지배되고 말 것이다.」

피히테 총장은 1807년 말 프랑스 군대의 점령 하에서 국민의 결의를 촉구하고 독일민족을 격려함으로써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일컫는 서독 경제부흥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다. 또한, 서독은 막강한 경제력을 기초로 동독을 흡수하여 평화적으로 독일통일을 이루었고, 이젠 그 과도기적 갈등도 극복하고 유럽통합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당시 독일은 정치적으로 통일된 민족국가를 형성하지 못하였고 경제적으로는 겨우 산업혁명의 진입단계에 놓여 있었다. 즉, 봉건적 질서를 청산하지 못한 채 후진국이었던 것이다.

이와 반면에 독일 주변국가의 상황을 살펴보면, 영국은 이미 산업혁명의 본격적인 단계에 진입하여 세계무역을 주도하고 있었고, 네덜란드는 독일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앞서 있었고,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통하여 절대왕조가 무너지고 공화제가 들어서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영국과 네덜란드는 자국의 상품을 판매하기 위하여 독일시장을 침투하고 있었으며, 이와 동시에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독일영토를 침략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독일은 외세의 경제적 및 정치적 침략에 의하여 도저히 자생적 발전을 도모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피히테 총장의 호소는 외세에 의하여 짓눌린 독일민족에게 로맨티시즘이라는 새로운 문예사조를 불러 일으켰고 이 사조는 경제사상에도 영향을 끼침으로서 아앙 뮬러로 하여금 독일의 낭만주의적 경제학을 주창케 하였고, 이는 다시 프리드리히 리스트(Friedrich List)로 하여금 독일의 국민경제학(역사학파의 경제학)을 제창케 하였던 것이다.

피히테 총장의 「독일국민에게 고함」(1807)이 외쳐진 100년 후에 우리 「대한」에서도 피맺힌 외침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신채호 선생의 「대한의 희망」(1908), 안창호 선생의 「한국개조론」(1919), 자주독립을 위한 민족계몽운동이었던 대한자강회(1906년), 대한협회(1909년), 신민회(1907~1911), 경제적 자립을 추구하였던 국채보상운동(1907년)과 조선물산장려운동(1920년대) 등을 들 수 있다.

1908년 4월, 구한말 언론인이었던 丹齋 申采浩 선생(1880~1936,  충남 대덕에서 태어나 여순감옥에서 눈을 감기까지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가, 사학자, 언론인으로 활동했음. 중국으로 망명하여 광복회, 동창학교 등을 설립하여 국권회복운동에 힘썼으며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등을 통해 근대 민족주의 사학을 체계화했음) 은 대한협회 월보에 「대한의 희망」의 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말하노니, 20세기 이 땅에 살면서 아직도 구시대의 정신과 물질에 집착하는 민족은 실력이 강대하고 사회문명이 발달한 서방 열강들에 반드시 쇠망할지니, 대한인들아, 20세기 강대국과 겨루어 정신과 능력이 한 점 뒤지지 않는 신민국이 될지어다.

무릇 20세기의 국가경쟁은 그 원동력이 한두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국민전체에 달려있으니 국민 모두가 20세기 새 국민의 이상을 발휘하여 국가의 기초를 굳게 다지고 실력을 쌓아 세계로 문명을 넓히면 가히 동아시아 한쪽에 우뚝 서 세계무대에서 강국의 깃발을 휘날릴지니 - 아, 동포여 어찌 분발하지 않겠는가?

아아 오늘날 우리 대한에 무엇이 있는가? 국가는 있건마는 국권이 없는 나라요, 백성은 있건마는 자유가 없는 백성이요, 화폐는 있건마는 주조권이 없으며, 법률은 있건마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며, 광산이 있건마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며, 철도가 있건마는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힘쓸지어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람아, 희망에서 원력이 생기고, 원력에서 열심이 생기고, 열심에서 사업이 생기고, 사업에서 국가 생기나니, 힘쓸지어다. 우리 한국 사람아. 희망할지어다. 우리 한국 사람아.”

이와 같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민족의 완전독립노선을 추구한 한국사회사상사에서 가장 곧고 주체성 있는 선각자였다. 그는 구한말 대한을 둘러싸고 있었던 서방 열강들로부터 자주독립하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성실하게 살아야 된다고 외쳤다.

이어서, 민족의 스승이라고 불리우는 島山 安昌浩 선생은 1919년 상해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하였다.

“여러분! 우리 한국을 개조하여야 하겠소. 이 행복이 없는 한국! 이 문명화되지 못한 한국! 반드시 개조하여야 하겠소. 옛날 우리 선조들은 개조의 사업을 잘하셨소. 그런고로 그때에는 문명이 있었고 행복이 있었소마는 근대의 우리 조상들과 현대의 우리들은 개조사업을 아니하였소.

지난 일은 지난 일이거니와 이제부터 우리는 이 대한을 개조하기를 시작하여야 하겠소. 1년이나 2년 후에 차차로 시작할 일이 못되고 이제부터 곧 시작하여야 할 것이오. 만일 이 시기를 잃어버리면 천만년의 유한이 될 것이오.

여러분은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십니까? 만일 너도 한국을 사랑하고 나도 한국을 사랑할 것 같으면 너와 나와 우리가 다 합하여 한국을 개조합시다. 즉, 이 한국을 개조하여 문명한 한국을 만듭시다.”

전술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대한의 희망」(1908)과 도산 안창호 선생의 「한국개조론」(1919)이 있은 후 100년이 경과한 오늘날 과연 대한민국은 어떠한 희망을 갖고 있으며, 얼마만큼의 개혁을 해 왔는가?

아놀드 토인비 교수가 발전하는 민족에게는 발전의 시기에 앞서 자기성찰의 시기가 있었다고 말하였듯이 지금 2011년 현재, 우리는 자기발전을 위해서 겸허한 자기성찰과 철저한 자기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국가적 과제로서 다음과 같이 4가지를 들고자 한다. “임양택(1995), 「비전없는 국민은 망한다」, 매일경제신문사“을 재인용하였음

➀ 21세기 한국의 발전적 미래상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②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개발전략으로서 자원배분의 국가적 우선 순위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➂ 이 전략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정부와 기업 그리고 일반국민의 합리적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④ 이러한 개발전략과 자원배분의 우선 순위 그리고 각 경제주체의 역할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도출할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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