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奸臣), 충신(忠臣), 명신(名臣)의 차이

한국 정치인들만큼 멋대가리 없고 막무가내 뻔뻔이들이 또 있으랴. 어디 정치인들뿐이겠는가. 관료나 재벌은 물론 조그만 권력이나 외제차라도 몰 형편이 되면 예외 없이 싸가지가 없어진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고 눈을 째려보고 있어 도무지 말 붙일 엄두가 나지 않는단다. 언제나 경계심 가득한 화난 얼굴이라 너무 살벌해서 무섭다고들 하는데, 기실 한국인들 속으로는 그만큼 불안하고 자신없어함을 모르고서 하는 말일 것이다.

만고에 변치 않는 밑천 안 드는 기술 중 최고가 아부다. 사람들은 이 아부를 간신배나 소인배들이나 하는 천박한 짓으로 폄하하지만, 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인간이 맨몸으로 할 수 있는 기술 중 최고의 고난도이자 가장 미학적인 것이다. 그러니 아부는 멍청해선 못한다. 어쭙잖은 아부로는 오히려 망신당한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그 단골이다.

이 아부가 없으면 인간사회가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아부 없는 관계가 제대로 유지되겠는가. 우리는 우선 가족들끼리 매일매일 아부하고 산다. 사랑한다, 예쁘다, 멋있다, 착하다, 잘했다 등등 온갖 아부를 입에 달고 산다. 회사는 물론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인사는 아부의 첫걸음이다. 당연히 아부할 줄 모르는 인간을 두고 우리는 가족성,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칭찬이니 격려니 하는 것도 실은 아부에 다름 아니다.

아부(阿附)는 최고의 소통술

일반적으로 윗사람에게 하면 아첨(阿諂)이고 아랫사람에게 하면 칭찬이라고 하지만 방향만 다를 뿐 둘 다 아부다. 위로만 아부하는 신하를 간신(奸臣)이라 한다. 그러나 진짜 현명한 자는 위아래 구분 없이 아부를 잘 한다.

예전에는 이런 인물이 정치를 하면 명신(名臣)이라 불리었다. 헌데 충신은 아부할 줄 모른다. 명신과 충신의 차이는 바로 이 아부하는 능력의 유무에 달려 있다. 자고로 충신은 많아도 명신이 적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조선왕조가 그랬다.

명군(名君)은 명신이 만든다. 충신이 아무리 많아도 명군이 될 수가 없다. 오히려 충신이 많이 나왔다는 것은 그만큼 왕이 형편없었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이순신, 유승룡 등 많은 충신들을 배출한 선조가 명군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황희 없는 세종, 김종필 없는 박정희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아무리 지고지순한 충절을 지녔다 해도 백성의 소리에 귀를 열어주는 않는 충신을 명신이라 불러주지는 않는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아부, 특히 아첨을 잘 못하지만, 기실 아첨은 멍청한 사람은 잘 못한다. 흔히 우리가 간신이라 해서 손가락질 하지만, 이들은 모두 머리가 비상한 사람들이다. 순발력과 재치, 눈치, 임기응변이 보통 사람들은 흉내조차 내기 힘들 정도로 뛰어나다.

당연히 지식도 많아야 한다. 간신 역시 목숨을 내걸고 아첨하는 꾼이다. 시기하는 수많은 적들을 경계해야 하고 아차 잘못 혓바닥 놀렸다간 황천길로 직행하기 때문이다. 흡사 시퍼런 작두날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충신은 고집만 있으면 할 수 있다. 굳이 머리 굴릴 필요가 없고 아래 위 눈치 볼 것도 없다. 목이 달아난다 해도 고집을 꺾지 않고 버티기만 하면 된다. 나라가 망하거나 말거나 충신은 충신이다. 해서 충신 중에 나라 말아먹은 자가 하나 둘이 아니다. 간신만 나라를 망치는 것이 아니다.

미련한 자도 충신은 될 수 있지만 결코 간신은 될 수 없다. 간신은 명신이 될 수 있지만 충신은 절대 명신이 되지 못한다. 아부의 기술이 있고 없음에 달려있다. 미련한 아부로는 떡고물 정도는 챙길 수 있지만 뛰어난 아부는 권력을 쥔다.

영원한 훈수꾼 공자(孔子)

공자(孔子)는 아부할 줄 몰랐다. 아부가 곧 인(仁)임을 깨닫지 못했다. 인을 군자만의 덕으로 잘못 이해했고 예(禮)로만 사람의 귀천(貴賤)을 구분했다. 아부를 간신들의 전유물인양, 소인배들이나 할 천박한 짓으로 규정했다.

스스로 위대한 뜻을 펼쳐보고자 일평생 천하를 주유하며 벼슬을 구걸하였지만 어느 군주도 그를 반기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인은 물과 같이 부드러워야 하는데도 자신은 마른 대꼬챙이같이 고지식했으니 과연 그가 인을 제대로 이해하기나 했을지 의심스럽다.

중국 역사상 3대 명신으로 동시대를 살았던 제나라 재상 안자(晏子)가 공자를 문전박대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현실성이 없는 이상세계를 꿈꾸는 극단주의자로 보았던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공자는 세계 최초의 사회학자였던 셈이다. 그것도 지독한 삐딱이 진보좌파주의자였다. 어느 권력자가 그를 가까이 두려 했겠는가?

만나는 왕마다 면전에 대고 핀잔부터 해대니 아무리 옳은 소리라 한들 반감부터 먼저 생기는 걸 어쩌겠는가? 《논어》는 후세에 제자들이 그들의 스승인 공자 중심으로 기술해 놓은 책이다.

당연히 제 스승이 실수해서 망신당한 얘기를 기록했을 리 만무할 터, 기실 당시 공자에게 핀잔 당한 제왕들 얼굴 울그락불그락 했을 것이고, 그가 겨우 목숨 붙여 도망쳐 나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만약 그때 어느 어리석은 왕이 있어 그를 중용했더라면 그 나라 망치는데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은 불문가지. 그랬더라면 지금 아무도 공자를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공자가 위대한(실은 위대해진) 이유는 천만다행으로 그가 실제로 나라를 단 한 번도 경영해보지 못한 때문이다. 그러다가 훗날 공자의 이상세계를 구현한 나라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조선이 아닌가? 해서 조선이 위대했던가?

지금 대한민국의 말만 번지르르한 교수들이 저만 옳고 잘난 줄 알고 현실정치에 참여했다가 죽 쑤고 사발 깨고 쫓겨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닌가. 위로 고정된 눈치만으로 아무 생각이 필요 없는 종복 가신(家臣)과 가신지망생인 식객들이 사랑채에 그득하다.

대문밖에는 너무 똑똑한 삐딱이 훈수꾼들이 부자상갓집에 거지 몰리듯 넘친다. 실제 나라 경영을 해보지 못한 인물들이 다음 지도자감으로 부상되고 있다. 모두 공자학원 동창생들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아부의 기술에 달려 있다

요즘 우리나라 텔레비전 오락프로의 대부분은 유재석과 강호동이 다 차지하고 있다. 전자는 미소로 상대의 아양을 받아주면서 자신의 잘나지 않은 외모로 상대를 돋보이게 하는 재주가 남다르고, 후자 역시 괴상한 외모와 오버하는 몸짓으로 상대의 별것 아닌 개그에 과도하게 박장대소하여 추겨주는 미덕을 지녔다. 둘 다 추임새, 즉 아부의 달인이다.

이제 학교에선 제발이지 훈수꾼만 양성하는 선비정신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아부의 기술부터 가르쳐야 한다. 그게 서비스정신이고 소통과 리더십,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밑거름이다. 아부할 줄 모르는 인간은 배려할 줄 모르고 화합할 줄 모른다. 당연히 여유도 없고 융통성도 없다. 그러고서 공부만 잘해서 저 잘살기를 바라는가?

스티브 잡스는 논문 하나 발표한 적도 없고 직접 무슨 기술 하나 개발한 적 없다. 한국이 글로벌 시대에 도태되지 않으려면 하루빨리 근엄한 샌님 공자 자왈교(子曰敎), 입시교(入試敎)부터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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