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아닌 자신의 기득권 유지에만 도움이 될 수도

 강남좌파론의 최대 맹점은 세력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생활은 부자이면서 의식은 좌파’라고 정리할 수 있겠으나, 구체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사안이 점점 더 복잡해진다. 부자라고 다 같은 부자가 아니며 좌파라고 다 같은 좌파가 아니며,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고 나섰다가 실제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며,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힘을 쓰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부자의 대명사인 중국 대기업 CEO들부터 이야기하자. 중국은 공산당과 연이 없으면 기업을 성공시키기 불가능한 나라이다. 중국이 등소평 이후 개방형 시장경제를 도입하긴 했으나, 본질적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수정해 왔기 때문에 완전한 시장경제 체제를 구축하지는 못했다. 토지만 해도 중국에서는 정부가 소유하여 임대하고 있다. 최근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서는 임대가 만기된 토지 및 건축물까지 지방정부가 무상으로 회수하겠다는 공문이 발송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 출신 대기업 CEO들이야말로 진짜 강남좌파

이런 정도의 체제에서는 대기업 오너나 CEO의 경우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기업의 퇴출이 용이한 완전 시장경쟁보다는 공산당 당원들의 인맥 속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현재의 체제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중국 공산당 전당대회 참가자(인민대표) 중 국유 및 민간기업 CEO가 30%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을 붉은 자본가라 부른다. 바로 중국식 강남좌파이다. 공식 공산당 당원이니 이미지가 아닌 진짜 부자 좌파이다.

반면 완전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미국의 상황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최근 부자증세를 주장해 화제를 모은 워렌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이 부자좌파 논란의 핵심인물이다. 버핏은 지난해 납세 금액은 소득의 17.4%에 불과해 자신의 직원들이 내는 세금 33~41%에 비해 훨씬 적었다며 오바마 대통령의 부자증세를 지지했다.

그러나 버핏의 주장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오바마 대통령이 고려하는 부자는 연간 소득이 개인 기준 20만달러 이상이거나 부부 합산 25만달러가 넘는 소위 '십만장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핏의 주장대로 오바마식 부자에 대한 증세가 이뤄지면 실제 세금이 늘어나는 사람의 90%는 '백만장자'가 아닌 한국으로 보면 중상층 정도라는 것이다. 세금폭탄을 두들겨 맞아야할 이들 ‘십만장자’들의 눈에는 버핏이야말로 한국식 강남좌파의 위선자로 보일 것이다.

버핏은 500억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중 370억 달러의 기부를 약속했고, 더구나 이중 310억원은 자신의 가족들이 운영하는 재단이 아닌 미국 재계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빌게이츠 재단에 기부할 것을 약속했다.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는 관행에 비춰볼 때 버핏의 기부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버핏은 “돈을 잘 버는 능력 만큼 잘 쓰는 능력도 중요한 데, 게이츠가 나보다 돈을 쓰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기부의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워렌버핏과 빌게이츠는 전 세계적으로 부자들의 기부서약 모임을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주로 독일 기업가들이 비판에 나섰다. 독일 함부르크의 거부 페터 크래머는 슈피겔지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는 기부액의 대부분이 세금공제되기 때문에 부자들은 기부를할 것인지, 세금을 낼 것인지를 놓고 선택을 하게 된다”면서 “부자들이 막대한 돈을 세금을 내지 않고 자선단체에 기부할 경우 그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정부가 아닌 극소수의 부자들이 결정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누가 그 부자들에게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주었느냐”고 반문했다.

실제로 버핏은 자신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매년 너의 재단에 기부하는 재산이 상속세나 증여세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법적인 조치를 다하라"고 쓰여져 있다. 상속세 폐지 거부와 부자증세를 찬성하는 버핏이 탈세를 위해 기부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돈을 누가 잘 쓰느냐의 기준에서 버핏은 정부가 아닌 민간 자율을 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가 최근 부자증세를 주장하는 것도, 미국의 재정위기 극복을 위한 하나의 대안인 것이지, 증세를 하여 정부 복지를 확대하자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빌게이츠와 워렌버핏의 재단사업, 복지정책마저 극소수 거부들이 좌지우지 할 수 있어

워렌버핏과 빌게이츠가 추구하는 대로 전 세계의 부자들 모두가 상속보다는 재단을 설립하여 민간복지 사업을 시작한다면 복지정책마저 소수의 거부들이 좌지우지하게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워렌버핏의 ‘돈을 잘 쓰는 능력’에 대한 기준으로 보자면, 버핏의 기부행위는 복지영역에서조차 정부보다는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는, 대한민국 좌파적 관점에서, 바로 신자유주의의 연장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빌게이츠는 빈곤퇴치 대상 국가를 에티피아로 결정했다. 왜 같은 극빈국인 라오스나 캄보디아가 아니라 에티오피아인지는 민주적 의사결정구조가 아닌 빌 게이츠 자신의 판단일 뿐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 등을 비판한 페터크래머 등 독일기업가들은 정당하게 상속을 하여 거액의 상속세금을 내고, 그렇게 거둔 세금을 독일 의회에서 사용처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다고 주장한다. 양자택일을 하라면 미국의 워렌버핏보다는 독일의 페터크래머가 좌파 노선에 더 가깝지 않을까.

중국의 공산당 CEO들과 미국의 워렌버핏, 빌 게이츠 등의 드러난 행태만 놓고 보면 강남좌파처럼 인식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중국과 미국의 체제 유지를 위한 각기 다른 방안을 찾고 있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계급과 신분을 뛰어넘었다고 볼 수 없다.

한국언론에서 논의되는 강남좌파론은 대기업 오너가 아닌 포괄적인 전문직 고소득층을 의미하는 듯하다. 특히 강남좌파의 상징인 조국 교수는 공무원 신분인 서울대 교수이다. 서울대를 포함한 국립대 교수들 내에서는 치열한 학문적 경쟁이 없어, 누구든 한번 임용만 되면 사실 상 평생 직장이 보장된다. 이러한 경쟁이 봉쇄된 체제가 지속되면 공고한 기득권층이 배출된다. 그로 인해 그 밑에서 아무리 실력을 키워나가도 생계유지조차 어려운 수많은 비정규직 시간 강사, 즉 피기득권층이 형성된다. 이들이 바라는 건 정정당당히 실력경쟁을 하여 정의와 공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다.

조국 교수가 강남좌파 이미지 내세우는 것 자체가 거대한 반칙

사회디자인연구소의 김대호 소장 역시 “실력이 같다고 할지라도 서울대 교수 조국과 울산대 교수 조국의 권위와 매력의 차이를 상상해 보고, 시간 강사 조국과 전임교수 조국의 처우의 차이를 상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방대교수나 시간강사가 서울대 교수나 전임교수에 비해 실력이 처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라고 문제점을 짚기도 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복지 등 전방위적으로 발언하는 조국 교수는 대학 내의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

이외에도 전체적으로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은 진입장벽을 높이 쌓고, 가급적 경쟁이 없도록 하여 시장 퇴출을 어렵게 하려는 경향을 갖기 마련이다. 대기업 노조, 방송사 노조 등의 행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물론 한 개인의 정치적 의식에 대해서는 다른 요인들이 워낙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 마디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부유층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건 좋은 게 아니냐”는 시혜의식이다. 강남좌파라 자청하는 인물들이 내놓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대안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자신들의 기득권을 더 공공히 하며, 피기득권층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것들이라면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 점에서 조국 교수 등이 앞장서서 강남좌파론을 부각시키는 것 자체가 거대한 반칙에 가깝다.

이미지와 신분 내세우지 말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아라

대한민국에 각종 다양한 전문분야의 지식인들이 있음에도,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자신이 영남출신에, 강남에 거주한다는 점을 밝히면서, ‘강남좌파’를 하나의 브랜드화하여 서울대 교수 신분과 자신의 외모마저 무기 삼아 정치권과 언론에서 주목받는 스타로 발돋움 했다는 것, 이것을 최소한 ‘공정’과 ‘정의’라고 부를 수는 없지 않겠냐는 것이다. 정도의 차이일 뿐 중국 공산당 출신 대기업 CEO들이 좌파라고 해서, 이들에 대해 가난한 사람들이 고마와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강남좌파든, 강북우파든 신분이 아니라, 누가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만들어 내냐는 것이다. 이를 위한 연구는 게을리 하면서 자꾸 ‘강남좌파’ 이미지만 내세우니, 강남좌파야말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좌파진영에 침투해 들어간 스파이들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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