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양택 교수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역사상 처음으로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의하여 'A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2011. 08. 05)되었다. 이 여파로, 세계 금융시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시 요동(搖動)치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거의 모든 자산 가격이 무너져 내렸다. 코스피 지수는 3일 만에 150포인트 이상 떨어졌고, 미국 다우지수는 1만 2000선이 붕괴됐다. 1944년 이후 세계를 지탱해온 브레턴우즈 체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잠시 회고해보면, 2001년 IT 버블(거품)이 꺼진 후, 세계의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에 새로운 거품이 부풀어졌고, 지난, 7년간 잔뜩 부풀어 오른 거품이 세계 경제의 중심인 미국의 월가에서 터졌다. 그 결과, 2008년 9월 세계 4대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Lehman Brothers)의 파산을 시작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다.

과거 경험을 반추해보면, 1937년 반짝 경기회복을 과신하여 섣부른 금융긴축을 실시했던 결과, 세계경제는 ‘더블딥’(반짝 회복 후 더 깊은 침체)’을 겪었다. 그 이후 70여년이 경과한 현재, 세계적인 ‘재정긴축 도미노’가 다시 세계 경제를 대공황의 가능성으로 위협하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Roubini) 뉴욕대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최초로 예언한데 이어서 2013년 이전에 세계 경제에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여러 폭풍이 결합된 강력한 태풍)이 닥쳐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이후 불과 2개월 만에, 세계 증시의 대폭락 사태가 닥쳤다. 이어서 루비니 교수는 미국의 재정 위기, 중국의 성장 둔화, 유럽의 채무 위기, 일본의 대지진 타격 등이 결합돼 세계의 경제성장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술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미국 정치인들은 미국시민의 심리적 패닉 상태를 치유하기 위해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할 터인데,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은 분열되어있고 재정수지 적자의 감축 문제, 국가부채 문제, 대량실업 문제를 두고 속수무책이다.

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리스의 정부 부채 위기를 유로존 국가들이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유럽국가의 정치 지도자들 간 타협이 지지부진하다. 독일은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마냥 유로채권 발행을 반대하고 있다.

그리스의 재정위기에 이어서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도 재정위기 상황에 놓여있다. 우선, 이탈리아의 국채 가격이 급락하여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연 6%를 넘어 마지노 선(線) 7%를 위협하고 있다. 만약 국채 수익률이 7%를 넘어설 정도로 국채 가격이 떨어지면 이탈리아 정부의 재정파탄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현재 이탈리아의 공공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무려 120.3% 수준이며, 프랑스의 그것은 84.7%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연간 부채 증가액은 2006년 이탈리아의 그것보다 더 많다. 영국도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친 재정 긴축은 오히려 경기침체를 야기해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당할 수 있다.

일본 경제는 아직도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 엔화 강세를 저지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2011년 3월 대지진,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原電) 사태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일본 정치는 무기력증에 빠져 있으며 혼미 상태에 놓여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만 해도 G2(미국과 중국)는 공유체제를 유지했다. 상술하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로 미국 경제가 비틀거리자 중국 정부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구체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약 17%에 달하는 4조 위안(약 800조원)짜리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실시했다. 중국의 은행 창구에서도 2009년, 2010년 약 16조 위안이 방출됐다. 이로써, 당시, 중국은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통하여 세계 경제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 이후 3년 만에 G2는 새로운 도전 앞에 섰다. 눈덩이 빚 앞에 미국과 유럽은 앞 다투어 재정긴축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다. 중국도 부동산 거품과 6%대 중반까지 치솟은 인플레를 잡느라고 재정긴축을 촉진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G20의 찰떡 공조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미국은 중국에게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 일본이 하였던 것처럼 세계 경제 회복을 위해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라고 요구하지만 중국은 오히려 당시 일본의 뼈아픈 경험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새기고 있다. 당시, 일본은 서방(미국과 유럽)의 요구에 따라 돈줄을 풀어 내수를 조금 살렸으나 풀린 돈은(부동산 및 주식시장에서의) 자산거품으로 이어졌고, 거품이 붕괴되자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으로 진입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제2라운드’에서 중국이 서방의 요구대로 선뜻 ‘구원투수’로 나설 수 없는 이유다.

서방의 요구대로 중국이 ‘구원투수’로 나서기 위해서는 또다시 내수부양 정책, 즉 금리 인하와 위안(元)화 평가절상을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 정책은 인플레를 더 부추길 뿐이다. 경기부양책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부작용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정부가 상기의 위험을 감수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중국이 ‘구원투수’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중국이 현재 약 1조1600억 달러의 미국 국채를 갖고 있으므로 글로벌 경제위기의 심화는 중국에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가장 빠르게 극복한 국가로 회자(膾炙)되지만, 이젠 다시 위기 ‘이후의 위기’(the crisis after crisis)를 맞고 있다. 우선, 무역의존도(97%)가 매우 높은 산업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제품의 해외수출이 급감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투자 및 고용이 더욱 감축되면 내수경기가 더욱 냉각될 것이다. 천문학적 액수의 가계부채(800조 원)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이 상황에서, 저자가 한국인으로서 특히 두렵게 생각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에는 '수출 호조 → 투자 및 고용 확대 → 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단절되었거나 약화됨에 따라 수출과 내수 간의 격차가 확대되었는데(최용재, 2008), 이제 또 다시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인하여 다소 선(善)순환 관계로 전환할 수 있다1)는 희망이 소멸될 가능성이다. 이 경우, 한국의 소득분배 불균등과 양극화는 더욱 더 심화될 것이고, 그러한 사회갈등은 현재의 소모적 정치논쟁을 더욱더 가열시킬 것이다.

잠시 지난 IMF경제위기 당시를 회고해보면, 1997년에는 5개월 사이 외국인 투자자들이 서울시장에서 214억달러를 단번에 빼내갔고, 2008년 가을에는 4개월 동안 695억 달러를 찾아 떠났다. 그때마다 환율은 폭등하였고 달러 고갈사태에 빠지는 외환파동을 겪었다. 한국은 1997년에는 IMF·세계은행(IBRD)·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모두 302억 달러, 2008년에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서 163억 5000만 달러를 긴급 구제금융으로 받은 덕분에 가까스로 국가부도 위기를 넘겼다.

다행히,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은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로 확산된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외환보유액은 2011년 7월 말 현재 3,100억 달러로, 리먼사태 직전인 2008년 8월 말(2,432억 달러)보다 668억 달러 많다. 단기 외채 비중도 2008년 9월 말의 79%에서 2011년 3월 말 49%로 낮아졌다.

총외채 3,819억 달러(2011년 3월 말) 중에서 단기 외채가 1,467억 달러로 38%가 넘어 이 중 절반만 외채상환의 독촉에 시달려도 곧장 외환위기가 닥칠 수 있다. 따라서 무역의존도가 97%에 달하는 국가가 무역금융 용도로 사용할 단기 외채의 도입은 불가피하겠지만, 국가경제의 안위(安慰)를 감안하여 정부는 기업의 단기외채 비중을 더 줄여나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FRB·일본은행 등과 '통화스와프(swap)협정'을 다시 체결하여 외화자금을 긴급 수혈(輸血)받을 비상수단도 강구해 놓을 필요가 있다.

한편, 환율파동에 따른 물가 및 금리동향을 점검 및 전망해보면 다음과 같다. 물가가 치솟는데, 오름세를 유지하던 원화가치가 약세로 방향을 틀었다. 원화강세로서 수입물가상승을 억제해주던 버팀목이 사라진 셈이다. 당초 물가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려던 움직임도 경기위축을 우려하여 동결 쪽으로 선회했다.

전술한 경제위기의 상황에서, 경제부처간의 상황인식도 완전히 다르다. 수출을 주관하는 지식경제부는 환율로 물가를 잡겠다는 것은 순진무구한 발상이라며 정부의 시장 개입을 주문했다. 그러나 외환정책을 책임지는 기획재정부는 물가안정을 위해 원화 강세를 사실상 용인해왔으나 원화가치가 1주일 새 40원 가까이 하락함에 따라 수입물가의 상승으로 인한 국내 물가상승을 우려하고 있다. 만약 원화가치 하락을 인위적으로 막다 보면 한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수출이 감소할 수 있다. 무역의존도(97%)가 높아 수출이 감소하면 실업률이 증가한다.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한국은행도 진퇴양난이다. 2011년 7월경 가파른 물가상승세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은 기정사실 분위기였으나 김중수 총재는 국회에 출석(2011. 08. 09)하여 최근 급변하는 금융시장 상황을 고려해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판단하겠다고 당초의 입장을 선회했다.

결과적으로, 주어진 상황에서,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재정정책뿐이다. 경기침체 때는 정부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미 천정부지로 오르는 물가 때문에 더 이상의 재정지출을 증대할 수도 없다. 이러한 가운데 고물가-저성장의 스태그플레이션은 ‘냄새 없는 독가스’로 한국의 사회를 엄습하고 있다.

전술한 국내·외 경제파동이 한국의 정치·사회에 미칠 파장은 다음과 같이 전망된다. 세계 경제의 더블딥(double-dip)이 가시화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 빈곤층과 중산층의 고통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결국, 2012년 총선 및 대선에서는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확충과 산업 경쟁력의 회복에 의한 지속적 성장이라는 2가지 목표를 달성할 방안을 제시하며 설득력 있게 호소하는 정당이 승리할 것이다.

 

1) 그 증거로서, 최근에 재화의 수출 증가가 설비투자 개선에 양(+)의 유의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김명식·황문우, 2005 ; 최용재, 2008). 특히 2010년에는 수출 비중이 높은 업종(전기장비, 자동차, 화학 등)이 상대적으로 높은 설비투자 실적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수출 비중이 높을수록 종업원 수의 증가율도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수출 비중이 70% 이상인 기업에서 종업원 수 증가율(2009년 대비 2010년)이 8.2~11.9%을 보인 반면, 60% 이하에서는 0.4~6.1%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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