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보수(保守)를 보물(寶物) 대한민국을 지키는 보수(寶守)라 명명한 바 있습니다. 이

글은 2012년 1월10일에 쓴 칼럼입니다. 오늘날 가짜보수에 대한 정황이 어쩌면 이리도 같겠습니까? 저는 썩은 보수는 도려내고, 대한민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보수로 다시 재편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수(保守)는 지고무쌍한(至高無雙)한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가 아니다. 애국의 표상(表象)도 아니요, 절대의 가치도 아니다.

필자(筆者)는 사회 전반에서, 혹은 가까운 삶의 거리에서 아직도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불통을 본다. 가엾은 일이지만, 그들이 보수라 칭할 때는 소름이 돋는다. 우물 안 개구리거나, 이제 인생을 다 살아버린 폐인(廢人) 아니면 설명할 방법이 없다.

아직도 제자리에서 제자리를 고집하며, 내려올 줄 모르고 남의 위에 앉아 호령할 줄만 아는 못난 어리석음. 목에 힘이나 주면 그게 제일인 줄 아는, 거드름 피우며 행세하는 전직 고관(高官)들.

강기갑 등 좌익들 보는 앞에서는 좌빨이라 욕하면서, 남 보지 않는 곳에서는 같이 술잔을 나누며 희희낙락하는 국회의원과 관료들. 진실을 위해 자리를 비워주거나, 후인(後人)들을 위해 양보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필자(筆者)는 참 많이도 보았다.

이 같은 사람들은 여차하면 남을 가르치려는 들지만, 정작 본인은 배우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이 우스꽝스러운 고집불통을 어찌하랴만, 비유를 하자면 추워 죽어도 산에 나무하러 가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요즘 이름 하여 이름만 화려한 보수(保守)라 일컫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보수는 절대의 가치가 아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아직도 거짓 보수의 틀을 고집하는 사람들로 인해 보수는 기득권층이라는 비난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변화를 거부하는 고고하고 잘난 그들과 우리는 같은 보수가 아니다.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가 아니다. 우리는 변화를 당연시 하고, 무엇보다 조국 대한민국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이와 빈부(貧富)를 불문하고, 언제든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면 우리는 변화할 수 있고 죽을 수도 있다. 언제든 보수라는 이름쯤은 버려도 좋다.

필자(筆者)는 보수를 이용하면서, 중도의 이름으로 정권을 잡은 이명박을 기억하고 있다. 그 이명박이 보수를 내버린 사실도 지금까지 인지(認知)하고 있다. 적의 적은 아군(我軍)이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은 박근혜를 죽이려 하였고, 박근혜는 이명박의 적(敵)이었다. 그러므로 보수의 적(敵), 이명박이 적(敵)으로 삼은 박근혜는 우리의 아군(我軍)이었다.

진실로 보수답지 아니하는,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보수 한번 해보지 아니한, 보수도 그 무엇도 아닌 자들이 보수를 표방하는 웃기는 현실을 보면서, 이제 보수(保守)의 개념을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현실은 산에 가서 나무도 해야 하고 장사를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지만, 양반입네 혹은 잘난 놈입네 하면서 좌파들과 전면에서 싸우기를 거부하는 그 앙상한 모습. 죽었으면 죽었지, 상놈들 하는 짓은 못하겠다는 옹고집. 체면을 내세우면서 영양결핍으로 죽어가는 그 모습을 무엇이라 해야 옳겠는가만, 요즘도 자칭 보수(保守)라 내세우는 자들 속에는 그런 무리들이 너무도 많다.

입으로만 애국이지, 실상은 명분에 목을 매면서도 호의호식(好衣好食)을 즐기는 이중인격으로 사는 무리들을 나는 무척 많이도 보았다. 입만 살고 몸은 선민(選民)의식으로 감싼, 소위 선택받은 사람들로 살아가는 무리들이었다. 그런 자들은 변할 까닭이 없다.

더구나 그들은 못 배우고 학벌 낮은, 밑바닥 가난한 사람들을 경멸한다. 필자(筆者) 같이 산에 가서 나무를 하고 손에 흙 묻히며 사는 평민을 눈 아래로 본다. 평소에는 애국 운운하면서 핏대를 올리지만, 정작 종북좌파들이 길거리에서 눈을 부라리면 도망가는 자들이 또한 그들이다. 소위 천한 것들과 어떻게 싸우느냐는 것이 핑계지만, 그런 행동 자체가 비겁이다.

종북좌파들은 오물을 뒤집어써도 씩 웃으면서 벌떡 일어나지만, 이들은 고귀한 존재라서 애초부터 몸으로 싸울 생각은 없다. 애국보다는 제 몸이 더 소중한 사람들이다.

이 같은 자들이 요즘은 혁신과 변화를 거부하면서 자칭 보수를 말하고 있다. 제 몸 변하는 것은 싫다는 뜻이다. 그리고 온갖 험담을 일으키면서 보수의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권 주변을 떠돌면서 이권(利權)을 향해 움직이는 더러운 보수들이며, 몸은 국회의원이라지만 아부와 아첨으로 제 몸을 보호하면서 오직 자기 먹이만을 바라보고 자기 먹을 것만을 생각하는 정상모리배들이다.

스스로 죽을 줄 아는 자들이 진정한 보수다. 화랑 관창부터 이순신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사랑했던 인물 중 어느 누구 하나라도 보수(保守) 아닌 분들이 없다. 이순신 장군은 진보(進步)가 아니다. 안창호, 김구, 안중근, 유관순 열사도 진보(進步)가 아니다. 이분들은 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조선이든 대한민국이든 태어나고 성장한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분들이다.

진보는 사기(詐欺)다. 진보는 반역(反逆)을 꿈꾼다. 진보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 대한민국에 대한 모반(謀叛)을 꿈꾼다.

그러나 면암 최익현, 김좌진, 홍범도, 박정희, 백선엽 장군과 같은 선열들은 요즘의 진보주의자들처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인민공화국을 꿈꾸지 아니하였다. 공산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며, 어떤 이념보다도 나라와 민족, 내 형제와 이웃들을 먼저 생각한 위인들이다. 그러므로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위대한 선열들은 진정한 보수주의자였다 할 것이다.

따라서 더러운 보수는 애국선열들을 욕보여서는 안 된다. 진보주의자(종북좌파)들은 그 점을 비웃는다. 종북좌파는 스스로 죽을 줄 안다. 그래서 비록 그 주장들이 새빨간 거짓일지라도 사람들에게 통하는 강렬한 메시지가 있다. 그러나 더러운 보수는 죽지 않고 손가락질만 한다.

그러므로 그 손가락, 검지 하나로 짝퉁보수는 대한민국의 진정한 보수를 조롱하지 말라. 나머지 네 손가락은 제 몸을 가리키고 있음을 한번 더 깨달아 보아라. 너희 한 손가락을 제외한 네 손가락은 국민 다수이다. 국민 다수는 말없이 너희를 가리키고 있다. 그리하여 비난을 받아야 할 더러운 몸뚱아리가 진정 제 몸인 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썩은 보수(保守)를 죽여서, 우리의 보물(寶物) 대한민국을 지키는 보수(寶守)를 살리려 하는 참뜻을 이해하여야 한다. 영웅 박정희 대통령의 조국애를 되살려 최상의 무궁화꽃을 피우려 함을, 죽어있는 보수(保守)여 기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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