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들은 대개 진보적인 사고를 갖게 마련이다. 특히 혈기방장한 젊은 피는 격정적이고 순혈(純血)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청춘은 아름다운 것이고, 청춘은 과거에 머무르기를 싫어하여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진보를 추구한다.

그들은 정당도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을 좇는다. 그리하여 현실에 안주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스스로 갇혀있기를 싫어한다. 자유로운 생각, 자유로운 느낌, 자유로운 감정, 자유로운 대화를 좋아한다. 그들의 세계는 다양한 자유가 있고 정형(定型)의 틀에 살기 싫어하는 분방(奔放)한 젊음이 있다.

젊음은 자기들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과거의 집을 허용하지 않는다. 꿈꾸는 침실을 위해 어버이가 살았던 집을 고치고 물려받은 고정(固定)된 형태의 기득권을 포기한다. 그러기에 집은 새롭게 고쳐지고, 세상은 이로 인해 한발씩 앞을 향해 개선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젊음은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고, 변화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젊음에 의해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다. 혹자는 이런 젊음과 젊음이 추구하는 진보를 절대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노년(老年)을 싫어하고, 수구와 보수를 죄악시한다.

“수구(守舊)는 죄악이다.”

그러나 수구(守舊)는 죄악이 아니다. 오히려 젊음을 완성시켜주는 변증적인 반(反)이다. 정(正)이 젊음이라면, 반(反)은 노년이다. 그리하여 합(合)은 조화로움일 것이다. 조화(調和)란, 젊은 격정이 만드는 날카로움을 다듬어주고, 청춘의 위태로움을 지지(支持)해 주는 지팡이일 것이다. 시행착오를 오랜 경험으로 가르쳐 주고, 젊음이 가보지 못한 앞길을 불 밝혀 이끌어주는 아버지. 술도 묵을수록 향기로운 법이고, 옛것일수록 아름다운 것이 전통이다. 그러므로 수구(守舊)는 등불이며 전통이며 아버지이며 보수(保守)인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 좌익들은 이 젊은이들을 지지자로 만들기 위해 온통 진보로, 개혁으로 유인하고 있다. 색깔론은 통일을 반대하는 보수수구세력의 음모라고 하고, 심지어 공무원노조까지 허용하여 대한민국에 통제불능의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다.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기업을 노동을 착취하는 부르주아로 단정하여 죄악시하여 기업의 창업의지를 좌절시키고 있고, 이런 사정을 피해 기업은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좌익들은 노동자 천국을 만들어 불량노조를 지원하고 있고, 세상은 도덕성을 상실한 노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그리하여 노사간의 대립이 격화되어 견디다 못한 기업들은 직장을 폐쇄하고 있다. 있던 일자리마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진보를 좇던 우리 젊은이들은 10년 이래 취직을 못하고 있다. 그들이 목 놓아 부르짖으며 지지하던 진보주의자들이 그들의 일자리마저 없애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자, 공무원 시험으로 몰리는 현상을 그들은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들이 수구(守舊)라고, 보수(保守)라고 손가락질하며 비난하던 아버지들이 그동안 그들의 직장을 만들어주고 있었음을 이제는 알게 되었을까. 심지어 좌익들은 부자들의 것을 빼앗아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한다. 자유민주 세상에서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젊은이들은 알고 있는지.

바로 이런 자들이 사회주의, 나아가 공산주의자들이라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무엇 하나 제대로 알고 좌익들의 진보타령을 듣고 있는지. 삼성과 현대의 일년 매출액이 북한 GDP보다 몇 배 더 많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그 삼성과 현대가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이 나라 국민들을 먹여 살리고 있음을 알고 있는지.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알고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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