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설날이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하나는 어른을 찾아뵙고 올 한 해 안녕(安寧)하심을 빌면서 덕담(德談)을 듣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후손들을 만나 덕담을 들려주고 세뱃돈을 안겨주는 것이다.

나는 올 설을 그렇게 보내고, 조카 녀석을 위해서 지금 학교에 와 있다. 지금 여고2년이 되는 나의 조카는 광주 S여고에 다닌다. 녀석이 세밀한 성격에 공부에 대한 투지도 엿보여서 기대를 거는 참에, 마침 오늘 장모님이 입원해 계신 병원에서 만났다. 그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덕담 대신 공부 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로 하였다.

러시아 혁명 이후 많은 백계 러시아인들이 만주로 이주해 왔다. 니콜라이 바이코프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러시아 귀족 출신으로, 차르를 위해 싸우다가 혁명 이후 만주로 이주해 온 사람으로서, 유명한 사냥꾼이다.

바이코프는 키예프 출생으로 사관학교에 다녔으며, 1917년의 11월 혁명 때에는 백군(白軍)에 속하여 적군(赤軍)과 싸웠다. 마침내 레닌이 이끈 적군이 혁명에 성공하자 러시아를 떠나, 전부터 자연조사에 종사하던 중국 동북지방으로 망명하여, 그 곳의 원시림을 소재로 독특한 동물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대표작으로 ‘만주의 밀림’(1930) ‘위대한 왕’(1936) 등이 있다.

그 바이코프가 사냥 중에 만난, 어느 조선인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바이코프가 찬탄을 금치 못한 사람들이었다. ‘사슴사냥꾼’으로 불리우는 이들은 무기 없이 맨손으로 사슴을 사냥하는 사람들이었다. 맨손으로 그 빠른 사슴을 잡는다?

나 역시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다. 맨손으로 사슴을 산 채로 잡는다는 이 기상천외한 사냥법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바이코프가 전하는 사냥이야기를, 나는 오늘 우리 조카와 전국의 입시생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모쪼록 대입을 준비하는 모든 대한민국의 아들딸들이 이 글을 읽고, 올 대학입시에서 저마다의 소원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바이코프가 전하는 조선인 사슴사냥꾼들의 이야기는 실화(實話)다. 백두산 근처 개마고원쯤에 사는 이들은 사냥꾼이면서 동시에 야생의 사슴을 잡아서 기르는, 사슴목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었다. 야생의 사슴을 기른다는 것은 오래도록 녹용을 생산하기 위한 현명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사슴사냥꾼들이 사슴을 만나면, 그 순간부터 추적이 시작된다. 무기는 없고 오직 꽹과리와 밧줄 뿐. 그리고 끊임없이 쉬지 않고 사슴이 간 뒤를 따라가는 것이 전부였다. 모두 가벼운 차림에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듯, 가끔씩 사슴의 휴식시간에 맞추어 꽹과리를 울리고는 그저 말없이 사슴의 발자국을 따라간다는 것이었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고 수 백리를 가는 여정이라고 하였다.

때로는 백두산을 지나 만주땅 깊숙한 곳 흥안령 산맥을 지날 때도 있다고 한다. 그 먼 거리를 그들은 오직 쉬임없이 가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주일 혹은 십여 일을 넘게 가는 일도 있다고 한다. 다만 사슴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않은 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쫓아가노라면, 어느 순간 사슴은 도망가지 않고 그냥 멈추어 서있다고 한다, 어느 높은 바위산 절벽 근처에서 멍하니 서있는 사슴.

사슴으로서도 기가 막힐 것이다. 이놈의 인간들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십여 일을 쫓아오니, 어디 잠인들 자겠는가. 아니면 마음 편하니 물이라도 마시겠는가. 조금 쉴라치면, 꽹과리 소리가 들려오고, 거듭 거듭 소리에 쫓겨 달리다보면 지치고. 그렇게 쫓기다 보면 심신(心身)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가 되어 마침내 탈진상태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사슴이 멍하니, 움직일 줄 모르고 서 있는 것은 바로 극도의 심신 미약상태, 그 순간이라 한다.

밧줄을 던져 묶고 눈을 가리우면 사냥은 끝나는 것이고, 그렇게 잡아서 자신들이 경영하는 목장으로 데려가서 길러 매년 녹용을 수확한다는, 이 기막힌 사냥법이 바로 공부하는 방법이라 믿는다.

사슴과 사냥꾼의 관계는 내가 누구인가에 따라 입장과 처지가 달라진다. 만약 쫓기는 사슴이 자신이고. 공부가 사냥꾼이라면, 이 공부는 반드시 실패한다. 공부에 쫓기다 언젠가는 눈마저 멍하게 탈진한 사슴이 되어서, 너는 쓰러져 있을 것이다. 쫓기는 공부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공부는 사냥의 대상, 즉 사슴이어야 한다. 너는 사냥꾼이고 공부는 사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네가 사슴이라는 공부를 사냥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쉬임없이 확신을 가지고 쫓아가는 것뿐이다. 오래도록 아주 오래도록 끈질기게 공부가 품안에 안겨올 때까지, 공부가 더이상 도망갈 것을 포기하고 항복해 올 때까지 너는 산맥을 넘어야 한다. 그 후 입시가 끝나면, 너는 결과를 품에 안고, 네 꿈의 목장으로 가면 된다.

그리하여 쫓는 너는 여유 있고 당당해야 한다. 쫓기는 자는 불안하고 쫓아가는 자는 여유롭기 때문이다. 공부는 불안해서는 안 된다.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오랜 여정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쉴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사슴과 항상 거리를 유지해야 하듯, 공부와의 거리도 일정해야 한다. 매일매일 꾸준히 착실하게 하는 것. 그러나 게을리 하여 공부와의 거리가 멀어지면, 공부가 싫어지고 쫓아가는 의지도 약해지는 법이다. 그렇게 되면, 너는 사슴을 놓친다.

만약, 사슴과 사냥꾼의 관계가 역전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이런 학생들을 수없이 보았다. 수능을 한 달쯤 남겨둔 10월이 되면, 공부에 지치고 숨 막히는 긴장에 눌려 쓰러져 있는 아이들을 수없이 보았다. 가련하게도 공부가 사냥꾼이 되어서 자신을 사냥하도록 놔둔 것이다.

나는 나의 조카에게 이 바이코프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인고(忍苦)의 세월에 경의(敬意)를 표한다. 지치지 마라. 바로 이 시기가 너의 앞날을 좌우할 것이다. 너의 목장에 푸르른 초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수많은 사슴의 무리들이 뛰노는 날을 준비하여라. 너는 사냥꾼, 공부는 사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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