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의 예산심의 권한은 어디까지 미칠까...'논란'

의회 예산심의권을 둘러싼 역사적 고찰

순천시의회 김인곤 의원이 의회내부 부조리를 폭로하면서 불거진 의회예산심의의 적정성을 두고 논란이다. 

예산삭감이 의회에게 주어진 고유권한이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예산편성 과정에 의회가 참여해 제안 등을 통해 예산편성에 관여하는 만큼 예산심의과정에서도 의회고유권한을 앞세우기 보다는 집행부와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천시 의회는 무소속인 노관규 시장과 친한 친노성향의 시의원과 반노성향의 시의원이 양분되어 있고, 특히 민주당 소속이 15명으로 전체 의원수 24명의 과반수가 훨씬 넘는 의석수를 갖고 있어 여의치 않다는 분석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과거는 어땠나...분쟁의 근원은 항상 '돈'... 순천시의회 예결위도 결국 '돈' 심의 

중앙정치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대정권도 의회내에 이같은 현상은 비일비재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심지어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조차 소위 '親李' 라고 하여 청와대의 의중을 떠받드는 세력이 의회내 존재한 반면 의회를 중심에 두고자 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과거 영국 의회민주주의 발전사를 봐도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보건대, 왕당파와 의회파간 싸움이 제일 치열했던 시기가 영국 청교도 혁명기였다. 왕권신수설을 주창했던 제임스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은 찰스 1세는  왕권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의회를 해산하고는 이후 11년 동안이나 의회를 열지 않으며 자신의 뜻대로 만든 특별법에 따라 통치하는 독재적인 모습을 보였고 결국 이를 보다 못한 군대가 들고 일어난 1642년 의회파와 왕당파간 내전이 시작된다.

그 과정에 '크롬웰'이란 의회파 장군이 나타나 왕당파를 무찌르고 찰스1세의  목을 짜르는 등 왕당파의 승승리로 막을 내리는 것 같지만, 이후 크롬웰의 지나친 독재로 막을 내리게 되고  결국  다시 찰스 2세를 불러들여 왕당파가 재집권하는 등 영국역사에서도 왕당파와 의회파간 반목과 대립이 계속해서 존재해왔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반목의 근원은 '돈'에 있었다. 지금 순천의 정원박람회 예산 목줄을 의회가 쥐고 있는 것처럼 당시에도 돈줄은 의회에 있었다.

전쟁용이던 혹은 통치용이던 아니면 향락을 즐기가 위한 용도이던 간에 군주는 돈을 필요로 했었고, 이 돈을 원활히 조달하기 위해선 귀족들과 호족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당시에는 귀족들과 호족들이 모인 집단이 바로 의회였다.왕이 재원을 원활히 조달하기 위해선 의회를 윽박지르던지 아니면 달래던지, 여하튼 왕의 재량과 능력에 달려 있었지만, 이를 둘러싼 의회내부 각 세력간에는 왕에 협조하는 세력과 반대한 세력간에 왕과의 협조여부를 두고 찬반논란이 끊이질 않았던 것이다. 

그 협조라는 게 다름아닌 세금 거출문제였다. 왕이 전쟁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선 이들 의회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예산심의' 였던 것이다. 왕이 함부로 돈을 거출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만든제도가 바로 지금의 '예산심의권' 이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우리나라 의회민주주의의에서 예산심의권을 국회에 두는 이유도 영국식 민주주의제도를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우리나라의 경우 여기에 국정감사권과 청문회를 통해 대통령의 인사권까지 사전에 검열하고 있으니, 우리 국회는 내각제의 요소가 강하게 가미돼 그 권한이 막강하다.

순천시는 국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에 불과, 재정지원은 지방의회가 아닌 중앙에 전적으로 의존 

문제는 순천시는 위에서 예를 든 영국과 대한민국처럼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정부'라는 데 있다.

현재 순천뿐만아니라 우리나라 지방정부의 재원은  중앙정부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실제로 지방에서 추진하는 각종 대규모 사업은 국비보조 없이는 사실상 실현할 수가 없다. 거의 모든 세금은 전부 국고로 귀속되고 중앙정부에 의존해 있고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요구하는  국비보조금에 대해 심의를 통해 교부하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20%도 안되는 순천시가 추진하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 같은 국제행사에 중앙정부 재정지원의 필요성은 말할 나위도 없다.

즉, 지방정부는 정원박람회와 같은 행사를 치르는 데 필요한 돈을 조달하기 위해선 지방의회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도움이 절실한 것이다.

실제로 중앙정부로부터 거액의 예산지원이 필요한 순천시의 정원박람회와 같은 사업의 경우, 사전에 사업계획서 제출을 통해 산림청으로부터 사업승인을 받고 다시 기획재정부로부터 예산심의를 받아야 한다.

기획재정부가 순천시의 이런 사업계획에 동의하고 예산지원을 결정했다면, 이는 적어도 국비부문에 관해선 중앙정부로부터 충분한 사업타당성을 인정받고 예산심의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중앙정부의 국비에 상응한 지방비 투자부문에 대한 시의회의 협조 문제다.정확한 예산수립이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투입될 지방비를 산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의회와 긴밀한 사전협조를 통해 동의를 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관련 순천시의회는 순천시 집행부가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업에 대해 사전에 의회에서 투자심의를 받도록 관련 조례를 제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실적으로 지방정부 수장의 가장 큰 역할은 의회와의 사전협조를 통해 중앙정부로부터 얼마나 예산을 잘 확보하느냐이며, 지방수장에 대한 업무 능력에 대한 평가 역시 이런 의회의 지지를 이끌어낼 협상력과 재원확보 능력에 촛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보건대, 지방의회의 예산심의 기능은 정확히 '지방세' 에 국한해야 한다. 지방의회가 지방세 부분에 대해선 심의할 권한이 있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비와 지방비가 혼재된 경우 국비부문에 대해 과연 어느 선까지 심의해야 할지 좀 더 숙고해야 한다.

순천시와 의회간의 반목의 근원에는 '지방의회' 의 이런 본질적기능과 한계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결론적으로 순천시의 상황은 영국 의회민주주의 발전사에 나오는 그런 상황과 엄연한 차이가 있다.순천시의회가 '예산심의를 하는 것은 의회고유의 권한' 이라는 주장의 이면에는 이런 지방의회의 본질적역할을 구별하지 못한 무지가 자리잡고 있다.

"정원박람회는 사전에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심의 거쳐, 지방의회 예산심의 보다는 국정감사 대상"

순천정원박람회와 같은 국비사업을 두고 예산 확보하는 과정에 하등의 역할을 하지 않은 지방의원들이 집행부가 어렵사리 가져온 국비를 예산심의라는 명목으로 지나치게 관여해 삭감조치를 통해 제때 예산집행을 못하게 하는 것은 온당치 않고 월권에 해당되며 일종의 '무임승차'나 다름없다.

따라서  엄밀히 보건대, 국비지원금에 대한 예산 심의권한은 예산확보 과정에서 관여한 국회 해당 상임위에서 국정감사를 통해 사후에 감사하는 것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타당하다.

실제로 국회가 실시하는 국정감사 대상은 중앙정부의 돈이 투입되는 지방정부가 포함돼 있다. F1대회 역시 그런차원에서 국정감사 대상이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역시 그런 차원에서 국정감사에 포함돼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행부가 애써 따놓은 국비를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은 지방의회 의원들이 김인곤 의원의 주장처럼 정상적인 예산심의 기능을 넘어 사심(私心)이 개입돼 일방적인 예산 삭감조치를 단행하는 것은 누가 봐도 납득하기 힘들다.

지방의회가 국비를 따오는데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기여했다면, 당연히 예산심의를 통해 삭감할 권한에 대해 시비를 걸 사람은 없겠지만 실제 지방의원들이 그런 역할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순천시 홍보팀 관계자는 "집행부가 정원박람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중앙정부를 쫒아다니며 노력하는데, 의원들이 그런 집행부의 노력과 성과를 집행부 길들이기 차원에서 예산을 삭감시키는 등의 횡포를 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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