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란 지역명은 당시 호남의 중심도시인 전주와 나주를 합하여 만들어진 이름이다. 한때는 마한의 역사에서 백제의 고을로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거듭하던 곳이었고, 若無湖南(약무호남) 是無國家(시무국가)란 말에서 기억하듯 이순신 장군의 호국(護國)의지(意志)에 부응하여 나라를 지켜냈던 충렬의 고장이기도 하다.

또한 전라도의 특징을 풍전세류(風前細柳)라 평하기도 한다. 풍전세류란 말은 일찌기 태조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이후에 개국공신이었던 정도전과의 대화에서 나왔던 말이다. 당시 팔도(八道)를 사자성어로 풀어보라는 왕명을 받들어 정도전은 그 지역과 사람들의 특징을 함축한 사자성어를 바친다. 원래는 바람 앞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사람들이 부드럽고 멋스러우며 풍류를 즐길 줄 안다는 뜻이었지만, 훗날 바람 앞에 흔들리듯 줏대 없고 기회주의적이며 비겁한 사람들이라는 지역폄하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의 특성이란, 시대와 삶의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달라진다. 환경은 그 속에 사는 생물의 특성을 지배하기 때문에 인간도 사는 조건의 변화 따라 품성도 심지어 얼굴 모습도 변한다는 뜻이다. 시내에 모래가 많아지면, 모래무지나 기름종개 같은 종류의 물고기가 많아지고, 모래가 사라지면 붕어가 많아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은 천하게 보이는 법이고, 부한 사람은 의젓해 보이는, 그래서 양반과 상놈은 다르다는 유전적인 착시현상도 생기는 법이다. 전라도는 이 가난과 천시의 시대를 무려 300여년을 겪어왔다. 그러나 굴종의 시대를 벗어나 지금 전라도 사람들의 특성은 다르다.

어느 지역 사람들이 전라도처럼 잘 단결하고, 강하고 사나울 것인가. 풍전세류로 평가하는 시대에서 지금 우리 앞에 보이는 전라도 사람들은 세태의 흐름에 몸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분노할 줄 알며, 자기주장이 뚜렷한 반면 어떤 사안에 부딪치면 단결하고 강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풍전세류가 아니라 혈안청경(血眼靑鯨 = 핏발 선 푸른 고래)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전라도의 특성은 지역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먼저, 무주 진안 장수 구례 곡성 지역은 지리산 근방의 산악지대다.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순박하고 예의바르며 정겨울 수가 없다. 산에서 산을 보며 사는 사람들의 특성이 고스란히 담겨져 인간다운 품성을 엿볼 수 있는 곳. 그리고 호남평야의 풍족한 산물을 접할 수 있는 곳이어서, 산악지대 사람들은 품이 넉넉하고 학문을 숭상하며 인성(人性)이 착하다.

두 번째는 김제 나주를 중심으로 하는 호남 내륙의 평야지대 사람들이다. 이곳은 지주와 소작인과 머슴들이 혼재해서 사는 곳이고, 대부분이 지주 한 명에 소속된 여러 명의 소작인 혹은 머슴들로 구성된 곳이다. 그래서 이들은 삶의 풍족함을 누리며 풍류를 즐기는 지주와 지주 밑에서 눈치 보며 구차한 목숨을 연명해가며 사는 사람들로서 풍류와 더불어 눈치와 굽신거림과 천함이 혼재된 곳이다. 그래서 호남의 평야 지대에는 1%의 잘사는 지주와 99%의 소작인들이 살았다. 지주 하나에 수백명에 이르는 소작인들과 머슴들과 가족들, 그래서 호남의 평야지대엔 인구 비례 상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호남의 특성을 좌우하는 경향으로 인식되기도 한 것이다. 상민들이 많았기 때문에 상민의 생활과 품성과 특성에서 전라도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산업화 시대에 이들이 서울로 도시로 나갔기에, 이들을 통해 전라도를 부정적으로 인식한 국민들이 많았으리라 추측된다. 가난한 소작인들이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올라갔을 때, 서울 사람들은 그들의 추하고 가난한 모습에 그동안 밥상머리 교육에서 배운 전라도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재확인하였을 것이다. 더구나 가난한 그들이 도시 소외계층으로 전락하면서, 생활의 고단함으로 인해 술 마시고 싸우는 모습에서 더욱 부정적인 모습은 확산되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안가 사람들이다. 이들의 특성은 무척 거칠다. 바다를 터전으로 사는 사람들은 거친 파도와 싸우며 살기에 기세 자체가 드세고 거칠다. 바다에 나가서 죽어서 오거나 살아서 오는 두 가지 상황을 맞이하며 살아왔기에 해안가 사람들에겐 인간관계란 중간항이 없다. 적이냐 친구냐 둘 중 하나지, 어정쩡한 인간관계는 없다는 뜻이다.

아마 대한민국 사람들은 전라도 어떤 지역의 사람들을 접하느냐에 따라 색다른 성향을 접해봤을 것이다. 분명 평야지대에 사는 다수의 소작인과 머슴 혹은 종들을 접한 사람들은 그들이 비겁하고, 뒷통수 잘 치는 음울한 사람들로 기억할 것이다. 지주의 눈치를 보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어찌 당당하게 살 것인가. 굽실거려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그들은 체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주장을 감추고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로 진화해온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 성향이 남의 밑에 사는 사람들의 특성임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목포나 여수 등 해안가 도시 사람들을 만난 사람들은 그들의 거센 기질과 폭력성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닷가 사람들은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에 적과 친구만을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무랄 수 없다. 특히 이들은 배신을 당했을 경우, 용서하지 않는다. 자유민주국가에서 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일 것이라는 평등의식에서 천대와 멸시라는 배신을 맛본 전라도인의 분노는 컸다. 분노가 그만큼 컸던 것은 질곡의 우울 속에서 살아온 상민들이 보이는 폭풍우 치는 바다 같은 성격이라 할 것이다. 이들의 분노는 오늘날 전라도 사람들의 보이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산을 터전으로 사는 전라도 사람들은 참으로 순박하고 예의바른 사람들이다. 산의 품성을 닮아 다툴 줄 모르고, 아끼고 근검하기에 이 지역 전라도 사람들은 성정이 너그러워 오래 사는 장수(長壽)마을로 이름 높다. 그러나 이분들도 전라도 사람이라는 천대에서 자유로운 분들이 아니었다. 싸잡아서 이 지역 사람들도 멸시의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호남차별이라는 오래된 반(反)지역정서의 희생이 되어, 우울과 분노로 한을 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차별의 연원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가 아니라, 무려 230년 전 영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1955년 중앙대 학보에 실린 글도 호남인에 대한 비하(卑下)나 거부 의식이 참으로 오래된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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