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계부채는 2015년 12월 현재 1,200조원대로서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 규모와 원리금 상환 비중이 모두 과도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선공약에서 ‘국민행복기금’을 만들어 10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했으나 2015년 말 가계부채는 1200조 원으로 늘어났다. 그 요인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은 구조조정과 허리띠를 졸라맨 빚 갚기로 기업부채와 가계부채를 줄여나갔지만 한국은 방치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는 시종일관 “자산이 가계부채보다 많기 때문에 관리 가능하다”고 애써 태연한 척 해왔으며 이것은 채권자인 금융기관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다 최근에 국제통화기금(IMF)에 이어 한국은행도 부채 관리의 시급성을 알리는 보고서를 내놨다. 한은이 국회에 제출(2015. 12. 22)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부실화가 우려되는 기업부채의 비중(21.2%)이 2008년 금융위기 수준(16.9%)을 훨씬 넘어섰다”는 것이다. 한은은 “가계와 기업의 재무건전성이 떨어지면서 금융시스템 전반의 잠재적인 위험이 증가했다”고 경고했다. 다시 말하면, 한국이 경제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가계부채의 원죄(原罪)는 ‘부채에 의한 경제성장’이라는 신(新)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다.

최근에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가계부채 문제는 금융당국이 (대책) 발표를 했고 (그 대책의) 효과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동아일보, 2015. 12. 23). 유일호 후보자가 2015년 4월 국토부 장관이었을 때 당초 7월 말 종료 예정이었던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의 연장을 주장했던 결과, 오늘의 가계부채 급증 상황을 만든 ‘원죄’를 저질렀다. 또한, 한 달 전,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이 주택공급 과잉 양상을 지적했는데도 그는 “주택공급 과잉으로 보지 않는다.”고 딴소리를 했다.

원칙적으로, 가계부채를 줄이고 부실화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부동산 가격의 상승기대를 차단하고 만기 연장(원리금 상환대출의 의무규정) 등을 통해 대출의 급격한 회수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2011년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2015년 7월 가계부채 종합관리 방안을, 동년 12월에 은행여신 심사 선진화 가이드라인을 각각 발표했다. 2016년 1월 가계부채 대책은 분할상환 목표 상향 조정, 상환능력 심사 개선, 제2 금융권 관리 강화로 요약할 수 있다. 그 핵심 내용은 기존의 단기·변동금리·일시 상환 위주인 주택 대출 관행을 장기·고정금리·분할 상환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기한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은 소기의 정책목표(가계부채의 구조개선)를 달성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가계부채(대출)의 공급자인 은행이 장기로 자금을 조달하도록 하지 않는 한, 이 같은 가계부채 구조 개선이 온전히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즉, 시중은행은 관행적으로 고정금리 대출 기간을 기껏 5년 정도밖에 운용하지 못하며, 전체 대출의 70%는 여전히 변동금리이기 때문이다.

상술하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예금금리도 함께 상승하지만 장기 고정금리로 이미 대출했던 주택대출 금리는 그대로이기 때문에 시중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다. 시중은행은 주로 1년 정기예금과 같은 단기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만약 단기금리가 큰 폭으로 오른다면 시중은행이 빌려준 금리보다 빌리는 금리가 높아 역마진이 발생하게 된다. 가계부채 구조개선 대책 덕분으로 고정금리 대출을 받은 대출자는 금리 변동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반면에, 대부자인 시중은행은 대출자 대신에 금리 변동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과거 시중은행들은 금리 변동 위험 부담을 떠안지 않으려고 관행적으로 변동금리 위주로만 주택 대출을 해왔다. 이를 시정하기 위하여, 정부가 고정금리 확대책을 시행했지만, 이젠 반대로 금리 변동에 따른 은행들의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는 것이다.

따라서 가계부채 구조를 개선하려면 정부가 은행에 장기 고정금리 조달을 증가시킬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이미 국회에서 통과된 '커버드 본드'법을 활용하여 시중은행이 ‘커버드 본드’를 자신이 보증하는 고정금리 주택대출을 기초로 유동화증권(MBS) 형태로 자본시장에서 발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장기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유도 및 독려해야 한다. 이 경우, 저리(低利)로 10년 넘게 장기간 빌리면서 고정금리의 금리 변동 위험 회피가 가능해질 수 있다. 나아가, 돈 빌리는 사람과 돈 빌려주는 기관(은행)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다. 그러나 시중은행은 ‘커버드 본드’ 사용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보수적이라서 새로운 시도를 꺼리고 있다.한국예탁결제원 前 상임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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