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정문 아우님께

작금에 벌어지는 논객연합의 갈등을 보면서, 우리 아우님들 가슴 아프고 당황해 하는 모습 눈에 선하네.

그러나 아닌 것은 분명히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 나를 이해해 주게. 나는 그렇게 살아왔을 뿐이고, 더 이상의 삶에 변명도 해명도 필요없음을 반드시 말해야겠지.

내가 전라도 사람으로 태어나서, 환갑을 넘는 나이까지 가장 고통스럽고 천형(天刑)처럼 여기는 것은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이었네. 고등학교를 대전에서 나왔네. 충남고등학교. 1박2일에 나오는 김준호가 내 후배더군. 그뿐인가? 전교조 두목급에도 내 후배가 있더군.

난 그 고교시절에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네. 선생님도 내 동급생들도 전라도라면 다시 한번 쳐다본다더군. 심지어 자취를 하는데, 방을 얻으려면 전라도 사람이라면 주지도 않더라고. 누나와 내가 겪은 그 슬픔은 잊혀지지가 않아. 전라도라는 이름과 지역을 감춰야 하는 시절이 내 고등학교 시절. 1971년이었네.

그 후 이 모든 것이 일제의 교육이었다는 것을 알았지. 구한말의 의병은 호남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임진왜란 당시 풍신수길의 꿈을 깬 것이 전라도였네. 그리하여 반일 감정이 가장 거셌던 곳이 전라도. 그리고 일제 치하 말기에 일어났단 광주학생의거. 일제는 알았던 게지. 아무리 식민교육을 해도 꺾을 수 없는 곳이 호남이라는 것을. 이후 일제가 심어놓은 교육 중 하나가 지역감정이었네. 일제가 물러가면서 호언장담했던 것이 민족분열이었고, 그것이 호남에 대한 지역감정이었다네.

따라서 지금 전라도 운운 하면서, 유식(有識)을 자랑하는 이들은 모두 일제의 농간에 놀아난다고 보아야겠지.

나는 전교조의 해악을 알던 2002년부터, 이 길에 들어서서 싸워왔고, 그리고 만신창이(滿身瘡痍)의 몸으로 여생(餘生)을 아내에게 부탁하고 있네. 고소만 무려 20여 차례. 매일 대문 앞에 우체통에 검찰청, 법원에서 날아오는 붉은 줄 쳐진 편지를 받아본 사람들은 내 심정을 알 것이네.

아내는 이혼을 요구하였었네. 그 후 모든 것을 아내에게 감추었고, 혹여 벌금형을 받으면, 글을 써서 상금을 받고, 그 상금으로 벌금을 해결했었네.

서울에 올라와서, 존경하는 이계성 어르신과 투타와 서희식과 김순희, 조광호 등 투사들과 전교조 해체를 위해 노력하여, 드디어 이적단체까지는 아니지만 법외노조 소송으로 오늘에 이르렀네.

그리고 2012년 비바람 회장을 만났고, 이춘상을 만났으며, 김성봉과 전국논객연합을 결성하였네. 드디어 대선에서 싸웠고, 나라를 좌익으로부터 건졌네. 그러나 김성봉은 논객들을 너무 쉽게 다루고 있었지. 정문은 이미 알고 있던 인물이었네. 아마 정문이 아니었으면, 난 김성봉과 같이 움직였을 것이야. 그만큼 정문은 진실된 사람이라는 것을 난 전교조와 싸우면서부터 알았던 셈이지.

김성봉이 애원하고 있었지만, 내가 선택한 것은 비바람 회장이었네. 단정한 글이며, 민족의 앞날에 대한 뚜렷한 소신과 인품의 단아함을 선택하였지. 지금도 그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네. 논객은 누구의 소속이 아니라, 자유인임을 잘 아는 사람 아닌가.

그러나 2015년에 들어, 나는 ‘문학이나 하면서 사는 것이 좋지 않은가’ 하는 회의에 잠겨들었네. 이미 박근혜 정부로부터는 토사구팽 당한 인물이고, 선거법 위반부터 나를 잡으려는 수많은 고소고발로부터(지금도 하나 있음) 도움이 안 되는 정권. 그리고 감방에 넣어진 우리 서희식 발명소년.

그래서, 언젠가 나는 문학이나 하련다고 말한 적이 있지? 그런데, 평소 나를 도와주던 고영주 변호사님이 몰매를 당하고 계시기에, 할 수 없이 다시 싸우기 시작했네. 그 일이 내 맹세를 깨고 말았던 것이지.

그리고 비바람 회장.

자네가 알다시피, 우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우익 논객들일세. 나를 아는 호남인들도 이 논객연합에 대단한 기대를 걸고 있고, 여기에서 희망을 갖고 지역에서 싸우고 있는 줄 아네.

비바람 회장의 글을 검색해보면, ‘박근혜 호남을 포기하라’는 글이 있을 거네. 난 그 글을 보고 절망했네. 그리고 절라도 절라도라는 글.

지역감정에 관한 글은 웬만한 어린아이도 아니하는 내용. 더구나 법적으로도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된 사항 아닌가. 내가 비바람 회장의 그 글을 읽고, 단 댓글이 바로 ‘ 내가 논객연합에 너무 오래 있었구나 ’ 였네.

만약 우리 논객연합이 지역감정이나 유발시키는 단체라고 한다면, 그건 일베와 다를 것이 없네. 내 생각으로는 우리 보수우익은 여기서 어느 누구도 범할 수 없는 드높은 민족의 꿈을 말하고, 그 꿈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믿네.

국민검사님이 오해하셨더구만. 난 회장단이 가르치려는 내용이, 호남 비하에 대한 절제와 차단을 말하였음이네. 오해는 문맥의 의미를 잘못 해석했음이라고 전해주게.

전라도를 비난할 때는 일반화시키지 말라는 내 주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전라도를 욕하면, 거기엔 내 아내와 아들 딸. 그리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강당에서 가슴에 손을 얹고 있는 내 제자들. 그 애들은 이제 13. 14살의 아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주게나.

내가 전라도 사람으로 전라도의 잘못됨을 욕할 수는 있지만, 이유없이 내 아내와 내 자식들과 내 어린 제자들이 ‘처음엔 간을 빼줄 듯하다가, 돌아서면 뒷통수 치는 사람들’이어야 하는가?

지중해 아우님, 지네도

그 애들 가슴에 전라도라는 못을 박고 싶으신가?

이제 고영주 변호사님에 대한 의리도 끝났고, 올 겨울 서희식 위원장을 만나고 나면, 난 전에 말한 것처럼 문학의 세계로 들어갈 거네.

아우님,

우리 논객연합은 진보좌파가 근접할 수 없는 높은 이상과 투지가 있어야 하네. 여기에서 대한민국의 이론이 정립되어야 하고, 이 논리를 바탕으로 종북주사파와 그 추종자들과 싸우는 것이지. 논리에서 지면, 정당성이 사라지고, 정당성이 사라지면, 반드시 국민들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 그것을 역사는 ‘명분’이라 하지 않던가.

난 허무(虛無), 그리고 삶의 끝을 잘 아는 사람이네.

내게 주어진 것은 하늘이 나에게 준 문필의 힘.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글을 쓰고, 하늘이 허락하는 때까지 이곳 전라도에서 살 것이네. 그동안 이 험난한 삶을 살아오면서, 그래도 난 7개 문학쟝르를 정복한 사람일세. 시와 동화, 그리고 수필. 혹시 이야기를 만나면 소설을 쓰고, 이 소설을 무대에 올리고 싶으면 희곡과 시나리오를 쓰고, 세상에서 가장 이름다운 사람들을 찾아서 동시를 써서 우리 손자를 가르치고.

그리고

내 고향에 6월이 오면,

복분자 향기 가득한 들판을 바라보며,

우리 지중해 아우님을 위해 술 한 잔을 들겠네.

혹시 정문이 생각나면, 두 잔을 들지도 모르지.

 

2016. 1. 5일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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